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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12. (금)

내국세

조세심판원, 과세관청 재의요구권 추진에 '독립성 흔들'

지난 2008년 독립성 강화 설립 취지에 역행하는 의원입법 발의

과세관청의 위법·부당한 과세처분에 맞서 납세자의 불복청구를 심리해 온 조세심판원의 독립성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점증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추경호 의원(새누리당)이 조세심판관회의에서 인용된 심판결정건에 대해 과세관청에게 재의요구권을 부여하는 한편, 심리과정에서도 과세관청에게 의견진술권을 부여토록 하는 등 국세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28일 대표발의하면서 비롯됐다.

 

이에앞서 정부는 지난 2008년 舊재정경제부 산하 국세심판원을 국무총리 소속 조세심판원으로 새롭게 재편·발족시켰으며, 이에 대한 배경으로 심판결정의 독립성 강화를 내세웠다.

 

추 의원은 그러나, 조세심판원의 독립성이 강화됨에 따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이 주도하는 조세정책의 수립 또는 국세행정의 운영에 일관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동일한 사안 또는 쟁점에 대한 조세심판원의 인용결정이 행정부내 유권해석 또는 법원의 판결과 다른 경우 국세행정의 통일성 및 신뢰성을 훼손시키는 한편, 과세관청은 물론 납세자에게도 혼란을 초래하거나 조세공평에 반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이를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보았다.

 

이에따라 조세심판관회의 개최시 납세자의 의견진술이 없더라도 과세관청 단독으로 의견진술을 할 수 있도록 의견진술권을 부여하고, 조세심판관 회의에서 인용결정된 심판청구 사건이라도 과세관청이 재의를 요구하면 조세심판원장은 30일 이내 반드시 조세심판관합동회의에 상정토록 국기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처분청의 재의요구 사유로는 △법원의 판결 또는 기획재정부장관의 유권해석과 배치되는 경우 △법령해석에 관한 새로운 쟁점으로 법원의 판결을 받아 볼 필요가 있는 경우 △동일 또는 유사한 쟁점의 사건이 다수 존재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금액 이상 사건으로 국세행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등으로 적시해, 사실상 과세관청의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재의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해당 개정법률안에는 추경호 의원을 비롯해 박준영 의원(국민의당), 김용태, 최교일, 박명재, 이학재, 이종배, 곽대훈, 김광림, 곽상도, 조경태, 이현재 의원(이상 새누리당) 등 12명이 발의했다.

 

그러나 조세학계 및 세정가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조세심판원의 설립취지는 물론,  심판관회의 및 합동심판관회의에 대한 운영절차 및 납세자에 미치는 파급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과세관청의 입장만을 좇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적으로 조세심판제도 자체가 행정심판의 일종으로, 타 행정심판 어디에서도 행정청의 불복을 허용한 사례가 없는 등 법과 제도상에 없는 기형적인 제도를 국세기본법에 명시하자는 것 자체가 논리성에서 결여됐다는 비판이다.

 

조세학계 한 관계자는 “조세심판제도는 과세관청의 위법·부당한 처분을 받은 납세자가 법원의 판단을 받기 전에 행정청에 자기시정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재결청기구인 조세심판원을 상대로 과세관청에 재의요구권을 부여할 경우 국가행정조직의 지휘·명령체계가 부합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세심판원의 설립취지가 기획재정부 및 국세청으로부터의 독립성 강화임을 감안하자면, 심판원 최대의 설립 이념을 뒤로한 채 국고주의로의 회귀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세정가에서도 반대의견이 거세게 일고 있다.

 

재의요구권의 주된 배경인 조세심판관회의의 일관성과 관련해선 지금도 국세행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조세심판관회의를 거친 이후 다시금 조세심판관합동회의에 상정하고 있는 등 과세관청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세무대리업계에서는 과세관청에 재의요구권을 부여할 경우 납세자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 경우 양측의 재의요구로 인해 신속한 심판결정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조세심판원 관계자 또한 “조세심판원장의 경우 과세관청이 재의를 요구하면 합동회의에 상정해야 하는 등 심판결정에 대한 처분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반면 조세심판원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심판원 또 다른 관계자는 “심판청구 결정서를 받은 처분청이 2주 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심판결정에 대한 법적불안정성이 지속되는 한편, 심판결정에 대한 납세자의 신뢰성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타 행정심판에서도 운영하지 않고 있는 행정청의 재의요구권을 법제화하기 보다는 조세심판원 내부적으로 융통성있게 운영해 나가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의견이 조세학계와 세정가에서 힘을 받고 있다.

 

한편, 과세관청의 의견진술권을 보장하는데 대해선 지난 2015년 국세기본법 개정당시 처분청의 의견진술권 일부 제한규정의 입법취지에 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와관련, 현재에도 심판관회의시 납세자의 의견진술이 있을 경우 과세관청에서도 대등하게 의견진술을 할 수 있으나, 납세자의 의견진술이 없을 경우에는 과세관청에게는 의견진술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처분청이 청구인보다 과세정보의 수집·검색권한 및 세무조사의 권한 등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으므로 처분청의 의견진술 남용을 제한할 필요에 의해 2015년 국기법 개정당시 의견진술권 일부 제한규정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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