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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25. (목)

주류

주류업계 '巨商' 보해양조 林廣幸 회장 타계

청주면허 반납·매실주 개발등 장신정신 고수한 주류업계 1세대



임광행 회장

보해양조주식회사의 창업주 임광행 회장이 지난 6일 새벽 2시께 노환으로 목포시 대안동 자택에서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가 있는 목포 자택에는 6일부터 지역의 재계ㆍ관계를 비롯한 많은 인사가 찾아와 호남지역 경제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기리고 명복을 빌었다.

무안에서 태어난 임회장은 '50년 목포의 양조장을 인수해 보해양조를 창업한 후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보해산업 보해주정 보해식품 보해매원 보해상호저축은행 등을 설립해 중견 기업군을 이뤘으며 목포상공회의소 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남부의장, 목포대학교 이사장을 지내며 사회사업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또한 보해장학회를 통한 인재양성과 사회봉사에 앞장서 왔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김랑녀(78)씨와 임건우(보해양조ㆍ대표이사), 임성우(보해주정ㆍ대표이사), 임현우(보해식품ㆍ대표이사)씨 등 3남3녀.

장례는 9일 오전 9시 목포시 대안동 보해양조 본사에서 회사장으로 치렀으며 장지는 무안군 삼향면 맥포리 선영. 연락처는 회사 (061)243-3141~7.

지난 6일 타계한 보해양조 임광행 회장은 양조산업에 투신한 이후 장인정신과 원칙을 고수하는 고집으로 주류산업 발전의 외길을 걸어온 국내 주류업계 1세대의 큰 별.

25세인 '43년 김ㆍ소금ㆍ술 등을 취급하는 잡화점 광림상회를 설립하고 해방후 나주의 한 양조장과 계약을 맺고 술 도매를 하던 임회장은 '50년 양조장을 인수해 보해양조를 설립, 본격적인 양조업에 투신하게 된다.

그후 '68년에는 불경기를 이기지 못해 보해가 법정관리에 넘어가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기도 했으나 '76.12월 법정관리가 종료될 때까지 임회장은 넥타이를 한번도 매지 않고 작업복 차림으로 회사살리기에 전념했다. 이러한 임회장과 보해 임직원들의 노력에 지역민들은 '보해소주 팔아주기' 운동을 벌여 이에 감동한 채권단이 채무상환을 연기해 주기도 했다. 임회장은 이러한 지역민의 애정을 잊지 않고 목포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아 지역현안 해결에 앞장서 보답을 했다.

임회장이 50여년간 보해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결단을 내린 것은 청주면허를 반납하고 매실주를 개발한 것이다. 당시 꽤 괜찮은 수익을 가져다 주던 청주제조면허를 반납하기란 쉽지 않았다.  임직원들의 반대도 적지 않았지만 양곡이 부족한 때에 쌀로 술을 빚는다는 점이 싫고 우리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우리의 술을 개발하고 싶었던 임회장은 결단을 내려 '77년부터 본격적인 매실주 개발에 나섰다. 그후 88서울올림픽때 공개한 보해의 10년산 매실주는 큰 호평을 받았으며 '90년부터 시판하기 시작한 매취순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물량이 딸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매취순은 출시 10년이 넘는 현재도 장수히트상품으로 남아 있다.

또한 무사카린 소주를 개발, 보해를 전국적인 기업으로 각인시켰으며 저도소주, 무첨가물 소주, 프리미엄 소주 등도 임회장의 손을 거쳐 나왔으며 프리미엄 소주인 '김삿갓'은 전국 애주가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한편 임회장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목포상업전수학교를 2년만에 그만두게 된 안타까움에서 청소년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보해장학회를 운영, 지금까지 21억여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그러나 매우 검소했던 임회장은 목포소주공장 한켠의 사택에서 50년동안 개조도 하지 않고 살았으며 최근 공장부지를 상가단지로 개발하면서 상가에 거처를 마련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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