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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3.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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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점]朴대통령, '민심 엄중' 판단에 靑개편 앞당겨

박근혜 대통령이 30일 당초 다음주 초로 예상됐던 청와대 참모진 개편을 앞당겨 실시한 것은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성난 민심을 서둘러 수습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의 '하야',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이 들불처럼 번지는 등 정권의 명운이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교체 대상자를 미리 밝히고 후임자가 정해진 자리만이라도 우선 발표하는 형식으로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과 안종범 정책조정·김재원 정무·우병우 민정·김성우 홍보수석 등 수석비서관급 이상 5명의 사표를 받아들였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정호성·안봉근·이재만 비서관의 사표도 수리했다.

지난 28일 밤 수석비서관 전원에게 사표 제출을 지시한 지 이틀 만이다. 같은날 비서관 3인방도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비서실장도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다음날인 지난 26일 사표를 제출한 상태였다.

당초 청와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인적쇄신을 위한 심사숙고에 들어간 뒤로 주말 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참모진 개편 시기가 이번주 초로 미뤄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당장 청와대 참모진 전면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만 후임자 인선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날 최재경 신임 민정수석과 배성례 신임 홍보수석 등 2명의 후임자만 정해진 상황에서도 수석급 이상 5명의 사표 수리 사실을 발표했다.

청와대 인사는 통상적으로 후임자가 정해지면 그때 발표해 왔는데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고 엄중했다는 반증이다. 인사 발표 시간도 언론사 마감 시간을 고려해 오후 2시를 넘기는 일이 많지 않았지만 이날은 오후 5시15분께 발표가 이뤄졌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인사발표 내용을 전하면서 "박 대통령은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각계의 인적쇄신 요구에 신속히 부응하기 위해 대통령비서실 인사를 단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는 사태 수습과 정국 정상화의 첫 걸음으로 평가받는 인적쇄신을 더 이상 끌 경우 민심 이반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여당마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저녁 서울 청계천 광장에서는 주최측 추산 2만여명(경찰 추산 9000여명)의 시민이 모여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 시위를 연 데 이어 오는 12일에는 15만명 규모의 대규모 민중총궐기 대회까지 예고된 상황이다.

청와대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도 박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는 양상이다. 청와대는 전날에 이어 이틀째 진행된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임의제출이 원칙'이라는 입장을 고수, 내부 진입은 막았지만 수사에 필요한 핵심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검찰 주장이 제기되면서 여론을 악화시켰다.

이런 가운데 야당에 이어 여당까지 이날 전면적 쇄신을 넘어 '거국내각' 구성을 요구하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최씨가 이날 자진귀국하면서 관련 의혹 규명을 위한 검찰 수사에 가속도가 붙게 된 것도 박 대통령이 인적쇄신을 앞당긴 요인으로 보인다.

우병우 민정수석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그리고 자신의 정계 입문에서부터 보좌를 받아 수족(手足)과도 같았던 문고리 3인방 등 야당의 경질 요구가 거셌던 인사들의 사표를 모두 수리한 것도 박 대통령의 위기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측근들을 도려내는 '읍참마속'을 보여주지 않고서는 이번 상황을 헤쳐나갈 도리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청와대 관계자도 "3명의 비서관이 그만둔 것은 어쨌든 대통령이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한 결과가 아닌가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이 비서실장과 김재원 정무수석, 김성우 홍보수석의 사표도 받아들였다. 이들은 최씨 사태와는 직접적 관련은 없었지만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개편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일찌감치 예상돼 왔다.

이를 통해 전반적으로는 여론의 요구에 호응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참모진 개편 규모가 당초 예상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나온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기존 예상을 뛰어넘지 못하는 인사 규모로는 성난 민심을 추스리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정 대변인도 청와대 참모진 전면개편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전원이 사표를 제출했지만 국정 상황을 고려해 이 중 비서실장과 정책조정·정무·민정·홍보수석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한 10명의 수석 중 이번 개편안에 포함되지 않은 김규현 외교안보수석, 강석훈 경제수석, 현대원 미래전략수석, 김용승 교육문화수석, 김현숙 고용복지수석, 정진철 인사수석 등 6명은 사실상 유임됐다.

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산업 구조조정 및 주요 기업들의 부진으로 안보·경제의 이중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면개편은 국정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는 고민의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전면적 국정쇄신의 '심사숙고'에 따른 결과물로는 미흡하고 시기도 너무 늦어 '만시지탄'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아직까지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비서실장과 정책조정수석, 정무수석, 그리고 문고리 3인방 사표수리로 공석이된 총무·부속·국정홍보비서관 인사에서 민심을 충족시켜 줄 인물을 찾지 못한다면 민심수습 효과도 반감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후임자가 정해지는대로 후속 인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적쇄신 카드에 더해 박 대통령이 추가 수습책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황교안 국무총리 교체를 비롯한 개각과 '책임총리제' 도입이 거론된다. 인사에 있어 헌법상 권리를 보장받는 책임총리제를 도입해 중폭 이상의 개각을 단행함으로써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이은 후속 인적쇄신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야는 책임총리제에서 한발 더 나아간 거국내각을 요구하고 있어 박 대통령의 고민도 커지는 모습이다. 거국내각은 여야가 합의한 총리와 국무위원들로 아예 내각을 새로 꾸리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박 대통령에게는 '권력축소'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카드로 평가된다. 청와대 관계자도 "거국중립내각의 취지 자체는 대통령의 '다각적 방향의 심사숙고'에 포함돼 우리도 숙고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거국중립내각은 '정치내각'이나 '야당내각'으로 될 우려도 많고, 그것 자체가 국민들을 위해서 좋은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또 한번 대국민사과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있다. 지난 25일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신속히 대국민사과에 나섰지만 들끓는 여론이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경우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 등의 형식을 통해 박 대통령이 보다 자세하고 진솔하게 최씨 의혹 전반을 직접 국민들 앞에서 설명하면서 사과와 더불어 국정쇄신에 대한 의지도 표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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