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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20. (토)

통일대박론

김유찬<홍익대 교수>

정통수권자가 통일대박에 대해 언급하자 정부의 모든 부서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민관을 아우르는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겠다고 하자 이 위원회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찾느라 부산스럽다. 독일의 메르켈 수상도 통일은 대박이라고 추임새를 넣어줬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그리고 북한은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정면비난으로 나서고 있다.

 

통일은 대박인가? 어떠한 방식으로 통일하더라도 엄청난 비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단상태의 지속으로 우리가 부담하고 있는 경제, 정치, 사회적 비용이 앞으로도 끝없이 계속 지불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통일은 분명 압도적으로 나은 대안이다. 대박이라는 단어를 이 시점에 꼭 동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통일이 큰 행운이라는 말은 내용적으로 틀림이 없으며 오히려 너무 당연한 말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의 준비나 정책이 과연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은 통일을 과연 조금이라도 더 가능하게 해주거나 그 시점을 당겨주는데 기여를 하고 있는가?

 

통일 과정에서 독일은 2차 대전 전승국 4국의 동의가 필요했다. 우리도 통일은 당사자들의 의사에 의해 가능해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남․북한의 문제는 6자회담의 틀안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나라들의 동의를 구하면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다. 때문에 조바심을 갖지 말고 긴 안목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며 통일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독일의 통일정책은 사민당 소속인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나 기민당의 콜 수상은 이를 유지․계승하고 마침내 통일을 이룩해 냈다. 독일의 통일을 모델로 삼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 점을 명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동방정책은 동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면서 대결보다는 평화를 최우선으로 삼는 정책이었다. 동독에 대해 서독은 특히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통일 이전의 시기는 미․소간의 냉전시기였으나 그 틀 안에서도 서독은 동독정부에 대한 비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점이 중요하다. 왜?

 

서독 정부의 본질적 관심은 동독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민족인 동독지역 주민들의 안위에 있었던 것이다. 동방정책은 동독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얻고자 하며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지, 동독정부에게 보내는 유화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독의 정부는 동독정부를 자극하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바에 대해 지원하면서 서로의 방송 청취를 허용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동독의 주민들은 서독의 자유와 사회보장제도, 서독의 체제를 신뢰하고 열망하게 된다.

 

동독 주민들간에 형성된 서독체제에 대한 이 강력한 열망이 사실상 독일 통일의 실제적인 계기와 동력이 됐다. 동독 정부의 주민들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게 되고 고르바쵸프의 소련 정부도 냉전체제 유지가 사회주의 경제 내부의 문제로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여전히 동․서독의 통일에는 그 밖의 2차 대전 전승국들인 미국, 영국, 프랑스의 동의가 필요했다. 미국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중요 보루인 동독의 해체 그 자체를 반기므로 독일의 통일을 지원했으나 유럽의 경쟁자인 영국과 프랑스에게 통일독일은 위협이며 양차대전의 악몽을 다시 되새기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정치인인 대처수상과 미테랑 대통령은 독일의 통일에 동의하게 된다. 바로 서독체제에 대한 동독주민들의 열망의 정도를 파악한 이 정치가들은 이 열망에 반하는 시도가 나중에 자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리라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독일의 통일에서 배울 점은 통일은 북한 정부와 시소게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동포인 북한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우리 대한민국이 얻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이나 일본을 포함한 6자 회담의 국가들이 우리의 통일에 기꺼이 동의하겠는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이 동의 안해도 북한의 주민들이 남한에 귀속되기를 강하게 원한다면 독일의 경우처럼 주변 국가들이 이를 저지할 방법이 별로 없다.

 

북한 정권이 불안해지면 북한주민들이 대한민국의 체제와 정부를 신뢰하고 우리를 택할까?  아니면 중국을 택할 것인가?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을 선택하게 하려면 우리 체제가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체제가 돼야 한다. 이 나라의 개개인들이 자유스럽고, 법치주의는 개인의 부와 권력에 상관없이 지켜지고, 경제성장의 과실이 기업가에게 독식되지 않고 근로자에게 일자리와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나라가 아니라면 북한주민들이 무엇을 보고 대한민국에 열망하겠는가? 이런 나라가 되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분단비용을 지불하며 살게 될 것이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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