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4.04.25. (목)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그리고 주식실명제

안창남 <강남대 교수>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 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이 5월2일 마침내 개정됐다. 누구든지 불법재산의 은닉, 자금세탁행위, 공중협박 자금조달행위, 강제집행의 면탈 및 그 밖의 탈법행위를 목적을 위해 타인의 실명으로 거래한 경우에는, 금융기관은 물론 불법 차명거래 당사자에게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실명이 확인된 계좌에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예금)은 명의자 소유로 추정하도록 했다. 21년만의 개정이다.

 

특히 종전에는 금융기관만 형식적으로 처벌했던 것을 이번에는 차명거래 관련자 모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추정규정까지 추가해서, 일단 명의자 돈으로 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개정작업이 늦어도 한참 늦었다. 세법은 2013년부터 차명예금에 대해 증여추정 규정을 두고 있다.

 

사실 금융실명법은 1993년 8월 시행 당시부터 차명거래를 허용하고 있어서 반쪽짜리 실명법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왔었다. 물론 당시 사회수준이나 투명성 등을 감안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생각은 하지만, 보다 강력하게 차명거래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현재의 처벌기준 등)가 있었더라면 우리나라 사회가 훨씬 투명하고 공정해졌으리라 생각한다.

 

차명거래의 폐해는 심각하다. 예를 들면, A와 B가 사전약정(B명의로 예금을 하되 A가 돌려달라고 할 때는 B가 바로 돌려준다는 약속)을 하고 A가 B명의로 은행에 10억원을 예금해 둔 경우 돈의 주인은 누구인가? 금융실명법과 판례는 A의 돈이라고 한다. 따라서 A는 탈세거래 대금을 B명의로 예금해 과세관청의 세무조사를 회피할 수 있었다.

 

또한 B에게 증여세 부과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파렴치한 행위를 바로 잡아줘야 하는 대법원조차도 법조문을 문언적으로 해석하는데 급급해 차명거래를 정상적인 거래와 달리 취급하지 않았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대법원이 국익이나 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사법적 상상력이 부족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금융거래는 모두 실명거래일까? 아직도 멀었다. 물론 탈법을 목적으로 한 차명거래 당사자를 모두 5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한다고 했으니 그 규정이 무서워서 차명거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탈법행위만을 처벌하도록 돼 있어서, 적법행위를 가장한 탈법행위가 기생할 공간은 아직도 있다. 이른 바 관행상 차명거래(예:동창회, 계모임, 동호회 등)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금을 포탈하고자 하는 자들은 머리가 영리하고 유능한 변호사 등을 앞장세워 세법의 빈 공간을 교묘하게 헤집고 다니면서 그들의 탈법행위를 적법행위라고 주장하는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다.

 

민사법적으로도 차명계좌의 돈은 여전히 A의 돈이라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사전약정에 따라 언제든지 A가 B에게 10억원에 대해 반환청구를 할 경우에는 B는 돌려줘야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증여세 부과도 할 수 없다. 추정규정이므로 B가 자기 돈이 아니라 A돈이라고 입증하면 그만인 것이다. 결국 이번에 개정된 금융실명법은 종전보다는 처벌규정이 강화는 됐지만, 그 처벌을 감수하고라도 차명거래를 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무용지물이라는 얘기다.

 

한편 이와 유사한 법제로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이 있다. 부동산 명의신탁은 무효로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해당 부동산 가액의 100분의 30의 범위 안에서 과징금도 부과된다. 아울러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즉 A와 B가 사전약정을 하고, B명의로 토지를 등기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이 거래는 무효가 된다. 따라서 해당 토지의 소유권은 다시 A로 되돌아와야 한다. A에게로 반환되기 전에 B가 딴 마음(?)을 먹고 C에게 양도를 했을 경우에는 어떨까? 일단 그 거래는 유효하다. 이른바 선의의 제3자 거래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B에게 사전약정을 근거로 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

 

즉 기본적으로 토지의 주인이 A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부동산실명법도 2% 부족한 법이다. 어찌됐든지 부동산실명법과 금융실명법은, 아쉬운 점이 있지만, 나름대로 처벌규정이 강화됐다는 점에서는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의 공통점은 (해당 법률의 처벌규정+세법상 증여추정규정)이다. 즉, 차명거래에 대해 해당 법률에서 처벌규정을 두고 있고, 세법은 증여추정규정을 둬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회에 또다른 실명제가 필요한 분야가 있다. 주식의 명의신탁이다. 이는 세법상 과점주주를 회피하거나 증여세나 상속세를 포탈하는 수단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일반인의 투자패턴이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이동된 지는 꽤 오래전 일이다.

 

이에 대해 세법은, 앞뒤 사정을 보지 않고, 이를 증여의제로 봐 과세하고 있다. 주식차명거래에 대해서는 부동산실명법이나 금융실명법과는 달리 주식명의신탁에 대한 일반 법도 그리고 처벌규정도 없다.

 

사실 이와 같은 세법의 증여의제 규정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생각해 보자.  A가 B에게 주식을 명의신탁했는데, 세법은 이를 증여했다고 보고 있다. 아니 A가 B에게 증여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는가. 이른바 실질과세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래서 징벌적 조항이라는 비판이 있다. 징벌은 세법 목적이 아니다. 형법의 영역이다. 그리고 사기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포탈한 행위는 조세범처벌법으로 처벌할 따름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명의신탁행위는 이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주식명의신탁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살펴본 부동산실명법이나 금융실명법처럼, 명의신탁을 한 자에 대해서는 징역 5년이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주식실명법(가칭)을 제정하고 세법의 증여의제 규정은 증여추정규정으로 전환하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그러나 고의적인 탈세목적으로 차명거래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부상 명의자를 해당 재산의 실소유자로 봐 증여세를 부과하고, 반환청구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규정의 도입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야 성실한 납세자와 불성실한 납세자 사이의 조세공평부담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번 금융실명법의 개정에 21년이나 걸렸다. 거꾸로 얘기하면, 우리나라 사회가 그만큼 투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제정신이 있다면 누가 자기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해놓으려고 할 것인가. 없어져야 될 거래유형이다. 이런 게 없는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한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