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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26. (금)

글로벌 자본세와 자본의 이동성

김유찬 <홍익대 교수>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Piketty의 저서(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양차대전 이후 세계가 누린 경제 번영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것이며 이 시기의 높은 경제성장률은 정부가 나서서 높은 세율로 자본의 수익률을 낮췄기 때문이라는 가능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 자본에 대한 호혜적 저율과세의 시기가 다시 돌아오고 마침내 세계 경제는 곤두박질하고 있으니 글로벌 자본세를 통해 자본의 수익률을 낮춰 줘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본세를 통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그의 문제의식은 자본이라는 생산요소는 이동성이 강하니 개별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낮은 세율로 과세할 수밖에 없다는 주류경제학의 입장과 통하는 것이다. 자본에 대한 고율과세가 국가들 간에 합의되기가 어렵기에 해결책이 아니라고 보는 주류경제학의 입장과 다른 점은 Piketty가 이를 해결책으로 본다는 점이다. Tobin이 제안한 외환거래세가 결국 합의되지 못한 역사를 생각하면 Piketty의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에는 공감하더라도 그의 글로벌 자본세를 통한 해법이 나라들 간에 합의된다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간을 투입하지도,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고 획득되는 자본소득이나 그 원천이 되는 자산에 대해 과세하는 것은 분명 공정한 조세정책이다. 자본소득은 근로소득보다 높거나 최소한 같은 세율로 과세돼야 하고, 자산도 소득과 마찬가지로 납세자의 경제적 능력을 잘 대변해 주는 지표이므로 응능과세에 입각한 세율이 적용돼야 한다. 이러한 공정한 조세정책이 실현되기 위해 국가들간의 합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글로벌 경제 하에서 개별 국가들의 자본은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으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믿음에 기초해 법인에 대한 과세는 다른 나라로 자본의 유출을 야기하고 결과적으로 자본 소유자보다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위태롭게 한다는 논리가 언로를 장악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법인에 대한 과세가 개인에 대한 과세보다 현저하게 약하게 시행되면서 국가는 꼭 필요한 공공서비스 공급에 필요한 재정이 부족하게 된다. 이 논리가 자본의 국제적 움직임에 법인세율이 큰 영향력을 가진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초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성 자체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라는 점이다. 과연 자본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움직이는가?  

 

많은 연구들이 자본의 이동성에 기초해 논리를 전개하고 있으나 정작 자본의 이동성 자체에 대한 연구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가 뚜렷하다. Feldstein/Horioka(Domestic Saving and International Capital Flows, Economic Journal 90, June, 1980)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연구들은 국제간의 자본의 이동성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국내 저축과 국내투자간의 상관관계를 다뤘다. 이 상관관계를 표시해 주는 SRC 지수(savings retention coefficient)는 한 국가 내에서 증가된 저축 중 국내에 투자되는 부분의 비중을 말하며 폐쇄된 경제에서 그 지표는 1이 된다. 국내 저축의 증가는 100% 국내 투자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본이동이 완전하게 자유로운 개방경제에서는 0에 가까운 수치가 나오는데 이는 저축과 투자 모두 국경을 넘나들면서 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본이동성이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개별국가의 SRC 지수는 대체로 해당 국가의 세계자본스톡에서의 비중에 해당하고 전체로서는 0.1보다 낮아야 할 것으로 봤으나 연구의 결과는 SRC 지수가 0.89로 나타났고 기본모형의 다양한 확장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어지는 연구들에서 자본시장 규모가 큰 나라들에 비해 작은 나라들에게서, 개발도상국에서, 그리고 EU 같이 통합이 진전된 나라들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지수가 나타났으나 큰 줄거리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는 연구자들에게도 뜻밖의 수치로서 대부분의 투자가 국내 저축을 재원으로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결과인 것이며 자본이동성이 통상 아주 높은 걸로 알려져 있고, 여기에 기초해 경제정책, 특히 자본에 대한 과세의 수준을, 결정하는 지난 수십년간의 국제적인 경향과는 크게 충돌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다른 해석을 시도하는 많은 연구가 행해졌다. 국제간 자본이동은 자유로우나 통화위험이나 정보획득비용, 정치적 위험 등이 존재하기에 개별 투자자들이 국내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해석이 제시됐다. 다른 제도적 요인으로서 법인소득과세와 개인소득과세의 불완전한 통합체계에서 외국세액에 대한 공제의 문제, 미국의 연금펀드나 보험회사들이 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적 투자를 막는 제도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는 것들도 거론됐다. 결과적으로 해외 주식과 국내증권, 채권 간의 관계는 아주 불완전한 대체재 관계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반론은 저축과 투자의 상관관계가 큰 것은 자본이동에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큰 폭의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려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국내 저축과 국내 투자 간의 간격이 경상수지 흑자나 적자 형태로 나타나는데 환율과 무역수지의 급격한 변동을 막기 위한 자본 유출입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국내 저축과 국내 투자간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고 저축과 투자의 높은 상관관계를 형성하게 함으로서 결과적으로 SRC 지수가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높은 SRC 지수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의 이동성에 제약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러한 유형의 해석이 논리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을 잘 곰씹어보면 결과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자본의 실제적인 국제간 이동을 불필요하게 만들거나 어렵게 만드는 여러 차원의 제도적․정책적․개별투자자별 제약이 아직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자본이동에 제약이 없다는 것과 실제적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주장이다. SRC 지수 자체는 제도적 요인을 설명하기 보다는 실제로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며 여러 연구들에서 공통적인 분석의 결과는 SRC 지수가 0(완전한 국제 자본유동성이 있을 때의 수치) 보다는 월등하게 컸다는 점이다.

 

이 SRC 지수가 시간과 더불어 낮아지고 있다는 연구들도 제시됐다. Harberger 같은 학자들은 1980년의 국제자본시장은 완전히 유동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작은 나라, 신흥개도국에서,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피할 수 없는 글로벌화와 함께 세계적으로 자본유동성은 지속적으로 커갈 것이라는 점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의 국제자본시장의 모습은 또 다를 것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허용한 소국 개방경제 국가들은 그 호된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을 것인가? 앞으로도 자본이동 자유도가 증가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기에 글로벌 자본세가 아닌, 개별 국가들의 독자적인 자본소득 및 자산에 대한 과세 강화를 통해 공정한 조세정책을 추구하고, 복지 지출을 가능하게 하며, 국가재정을 건실하게 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게 존재한다고 본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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