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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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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결산]'고척 참사' 한국 야구의 성장통이길 바란다

안방에서 처음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는 2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충격적 결말과 함께 대한민국 야구사에 또 하나의 흑역사로 남게 됐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이번 대표팀은 프로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한 이래 1승2패, 역대 가장 초라한 성적표를 쥐었다.

코칭스태프를 비롯해 선수들 누구 하나 이번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수 구성에 어려움이 있었다.', '시즌을 앞둔 시점에 몸상태를 100%로 끌어올리기 힘들었다.' 등의 핑계는 결과를 더욱 참담하게 만들 뿐이다.

비록 현역 메이저리거 가운데 오승환(세인트루이스) 만이 유일하게 합류했고, 부상을 이유로 최상의 전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도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대표팀에 승선했다.

KBO리그는 최근 수년간 지속적인 양적 성장을 해오며 미국, 일본과 함께 세계 3대 리그 반열에 올랐다. 10개 구단 체제가 됐고, 8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선수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FA 계약 100억원을 넘어 150억원에 이르렀다. 국내 최고 프로스포츠로서 시장성과 인기는 역대 최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회는 KBO리그의 성장이 선수들의 기량 향상과 국제 대회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대였지만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 결과를 두고 대표팀을 향한 팬들의 비난이 거세다. KBO리그 수준을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마저 일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건 KBO나 선수들 모두 결과가 이러하니 팬들의 비난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이번 참사를 한국 야구계 전반을 되돌아보고 재정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2013 WBC 1라운드 탈락 역시 '타이중 참사'라 불리며 한국 야구에 큰 충격을 줬지만 2승 1패라는 성적과 대표팀에게 패배를 안긴 네덜란드가 4강 신화를 이룬 것은 일종의 위안거리가 됐다.

당시 한국 야구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질 새도 없이 신생 구단 창단과 맞물려 리그 팽창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KBO리그의 성장은 선수들의 기량 향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대회를 통해 증명됐다.

 

 

 

단기전 승부인 국제대회 성적 만을 놓고 선수 개개인의 실력이 과연 리그의 양적 성장과 비례하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는 없다. 절대적 기준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경기력과 태도는 세계 3대 프로리그를 가진 나라의 수준이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2013 WBC 1라운드 탈락의 충격은 한국 야구 발전에 아무런 방향성도 제시하지 못했다. 대표팀 차출 단계부터 4년 전 참사를 되풀이했다.

최고 선수들로 팀을 구성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도 상황은 비슷했지만 그 동안 대표팀에 보내준 국내 팬들의 성원과 기대를 생각하면 실망스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시즌 중반 열리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달리 시즌 전 열리는 WBC는 선수나 구단의 한 해 농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다보니 대표팀 차출에 선수나 구단 모두 소극적이다.

프로스포츠는 리그 규모가 클수록 국제 대회에 대한 비중보다는 자국 리그가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야구는 축구와 달리 전 세계적인 스포츠가 아니다. 당연히 WBC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국내 야구 팬들이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느 나라와는 차이가 있다. 

'10개 구단 체제', '800만 관중', 'FA 몸값 150억원' 등 지금의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한국 야구의 성장을 보여준다. 훈련 여건이나 구단 운영, 선수 관리 시스템 등도 꿈의 리그인 메이저리그를 지향한다. 

선수들의 몸값은 프로야구의 인기와 비례하고, 팬들의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지금의 좋은 환경에서 선수들이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수들 역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할 의무가 있다. KBO리그에서의 성적은 물론이거니와 태극마크에 대한 무게감과 국제대회에 임하는 자세 역시 같은 범주에 속한다. 

한국 야구의 전설 박찬호 해설위원은 네덜란드 전 패배를 두고 "이게 한국 야구의 수준인 것 같다. 한숨이 나오는 경기다. 배고픔을 모르는 것 같다.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고 쓴소리를 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선수들의 정신력만 강조하는 시대도 끝났다. 국제 대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도 필요하다.

 

 

 

이번에 대표팀에 패배를 안긴 네덜란드나 이스라엘 모두 자국 리그는 KBO와 비교 자체가 안되는 수준이지만 대표팀 구성은 미국의 선진 야구를 경험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WBC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도하며 메이저리그식(?) 스트라이크 존와 공인구로 대회를 치른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데 있어 한국 선수들보다 적응이 수월할 수밖에 없다.

대표팀 마운드는 KBO리그보다 넒은 이번 대회 스트라이크 존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했다. KBO리그 공인구보다 미끄럽고, 반발력이 덜 한 공인구에 대한 적응력도 떨어졌다.

무엇보다 야구인들 상당수가 극심한 '타고투저'인 KBO리그 환경에 대한 변화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는 시기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KBO리그에서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55명 중 72.7%인 40명이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리그 평균 타율도 3할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타자 친화적인 리그 환경을 개선해 적절한 투타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는 이미 많이 나왔다. 다만 리그 인기에 편승해 화끈한 공격력의 야구만을 추구하다보니 문제를 알고도 손대기를 꺼렸다.

이번 '고척 참사'를 통해 투타 불균형이 초래한 결과가 얼마나 뼈아픈지를 깨달았다면 이제는 보다 면밀한 분석과 해결 방안을 모색할 시기다.

급성장 과정에는 언제나 성장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번 대회가 대표팀의 마지막 국제 대회도 아니다. 당장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20년 도쿄 올림픽, 2021년 제5회 WBC까지 대표팀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을 기회는 계속해서 있다. 

이번 '고척 참사'를 교훈 삼아 미래를 위한 보다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리그의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개선을 위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힘찬 재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야구에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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