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4.04.18. (목)

기타

백건우 "10년 만에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친밀하고 새롭다"

"10년 동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연주해왔는데, 하면 할수록 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에요. 이 곡들을 더 알게 된 것 같고,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죠."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통하는 거장 피아니스트 백건우(71)가 또 여정을 떠난다. 오는 9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8차례에 걸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연주한다. 국내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연주하는 건 2007년 이후 10년 만이다. 

백건우는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예전보다 훨씬 더 친밀해졌다고 할까, 가까워지고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베토벤이 막막하다고 했다. "다른 작곡가를 공부하다 보면 어떤 곡인지 전체적으로 알 수 있어요. 시작과 끝이 보이고 어떻게 진행시켜야겠다고 마스터할 수 있죠. 하지만 베토벤은 연주를 하고 공부를 할 때마다 깜짝 놀라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요. 그래서 항상 새롭게 접근해야 해요. 완전히 소화시킨다는 것이 힘들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앞으로도 계속 연주하며 재발견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위대한 곡이죠. 이번 연주 역시 새로운 모험, 경험이 될 것이에요. 이런 훌륭한 작품과 인생을 같이 한다는 것이 음악가로서 행운이죠. 베토벤이라는 작곡가는 정말 그 많은 음악 역사에 있어서 너무나 뛰어난 작곡가예요. 때문에 우리 음악인의 삶을 좌우하는 '거인' 같죠." 

백건우는 2005년 10월 영국 데카 레이블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 계약을 체결하며 메이저 클래식 레이블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발매한 첫 번째 한국인 피아니스트로 기록됐다. 

베토벤의 전 생애에 걸쳐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 전곡은 그의 일생은 물론이고 서양음악사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통한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초대 상임지휘자를 지낸 피아니스트 한스 폰 뷜로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가리켜 피아노의 '신약성서'라 칭했다. 그 만큼 백건우도 스스로 큰 모험이자 도전이라 밝혔고, 32개 소나타를 중기·초기·말기 작품 순으로 3년에 걸쳐 대장정을 완주해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의 부인 배우 윤정희 씨가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2017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 프로젝트’ 관련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2007년 백건우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마라톤 리사이틀을 완수한 이후 10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전국투어 공연으로,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30여 곳에서 올 연말까지 열릴 계획이다. 2017.04.18. bluesoda@newsis.com
2007년 12월 국내에서는 베토벤 소나타 32곡 전곡을 일주일 만에 완주하는 특별한 무대를 선보였다.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힘든 도전에 청중과 평단 모두 극찬을 보냈다.

백건우는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냉철하게 돌아봤다. "연주를 거듭해도 베토벤은 늘 새롭다"며 10년 만에 같은 레퍼토리를 꺼냈다. 이날 간담회의 사회를 본 피아니스트 겸 음악평론가닌 김주영은 "2007년 리바이벌이 아니라 베토벤이 새로 보인다"고 소개했다. 

백건우의 이번 연주에는 '끝없는 여정'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그는 "어디를 여러 번 방문하는 건 문을 하나씩 열어가는 과정"이라며 "전에 보이지 않던 전경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고 드라마가 이해가 된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연구를 해야겠죠. 10년 전의 색깔이 하얗다고 지금은 빨갛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하하."

지역에서는 이미 여정의 발을 뗐다. 지난 8일 제주아트센터를 시작으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몇곡 씩을 묶어 들려주고 있다. 이후 11일 마포아트센터, 14일 부산영도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섰고 9월 예술의전당 공연을 포함 10월14일 수원 SK아트리움 포함 현재까지 29회의 연주가 예정됐다. 32곡이라는 숫자에 맞춰 32회 연주를 진행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지방 연주는 '비창' '월광' 등 부제가 달린 곡들이 한곡씩 포함됐다. 일주일 동안 8차례 무대를 통해 32곡 전곡을 연주하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는 소나타 20번으로 시작한다. 

10년 전 연주한 순서와 어떻게 다르냐는 물음에 "1, 2, 3, 4번 순서대로 가는 건 의미가 없다"며 "한곡 한곡 훌륭한 작품이라 순서를 바꿔도 중요성을 둘 필요가 없다"고 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2017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 프로젝트’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2007년 백건우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마라톤 리사이틀을 완수한 이후 10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전국투어 공연으로,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30여 곳에서 올 연말까지 열릴 계획이다. 2017.04.18. bluesoda@newsis.com
다만 "19번과 20번은 사실, 베토벤이 몇살 때인지는 모르지만 1번 전에 스케치했던 곡이이에요. 예전에 썼던 곡을 나중에 다시 손질한 곡이라 시작하기에 적합하다보고 봤고 특히 20번이 장조라 더 알맞다고 생각했죠"라고 설명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연주하면서 "베토벤의 세계가 보이더라"고 했다. "하나의 장편 소설을 접하는 것 같았어요. 베토벤이 살았던 드라마를 같이 경험하는 느낌이죠.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하는) 일주일을 베토벤하고 생활한다고 생각하면 그 느낌이 다르실 거예요. 음악적인 체험뿐 아니라 인간적인 체험도 될 수 있죠."

백건우는 2007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연주하기 전 베토벤이 유서를 쓴 하일리겐슈타트의 집 등을 방문하면서 그를 인간적으로 만났다고 했다. "그의 유서는 눈물 없이 읽을 수 없죠. 근데 모르겠어요. 베토벤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고, 그럴수록 더 알고 싶고, 가까이 가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죠."

MBC TV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던 섬마을 콘서트를 비롯해 백건우는 유명 연주자들 중에서도 유독 지역에서 공연을 많이 하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졌다. 그는 음악지식이 없고, 백건우를 모르지만 음악이 전하는 감동을 순박하게 표현하는 관객들이 좋아 꾸준히 지역의 소규모 연주장을 찾아가고 있다. 

"10년 전과 큰 차이점은 이번에는 지방 공연이 스물 몇군데라는 것이에요. 당시에는 서울에만 했는데 이번에 전국에서 베토벤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죠. 그 공연들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그 만큼 한국에서 클래식 무대가 넓어진 것을 의미하니까요."

지역 공연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로는 "이러한 큰 프로젝트에 전국이 하나로 참여하고 같이 작업을 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며 "한 지역만이 아닌 큰 그림 안에서 서른 두곡을 들 수 있으니까요. 공연장의 환경은 다를 수 있지만 서울이나 지역이나 청중들하고 대화를 하는데는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음악을 누구에게나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청중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요. 그러한 대화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죠."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2017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 프로젝트’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2007년 백건우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마라톤 리사이틀을 완수한 이후 10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전국투어 공연으로,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30여 곳에서 올 연말까지 열릴 계획이다. 2017.04.18. bluesoda@newsis.com
베토벤이 백건우 인생에서 왜 이렇게 중요할까. 그는 최근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한 이스라엘 출신의 명 지휘자 엘리아후 인발(81)과 함께 나눈 이야기로 그 답을 갈음했다. 

"인발 선생님께서 베토벤은 시간이 필요한 작곡가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부분이 더 이해가 되고, 조금 더 가까이 느껴지는 거지요. 음악을 이해하는 것과 성숙함이 같이 동행을 하겠죠. 좋은 음악이라면 항상 고민을 줘요."

한편 백건우는 애초 지난달 18일 중국 구이저우성 구이양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예정이었으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도입에 대한 영향으로 무산된 바 있다. 

그는 "음악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에요. 한국 중국 사이가 임시로 그러한 것이고 지금도 (중국 쪽에서) 편지가 온다"며 "오케스트라 쪽에서 (한중 관계가) 풀리면 초청을 하겠다고 해서 심각하게 생각을 안 해요. 조금 있으면 지나갈 것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백건우의 한국 나이는 어느덧 일흔 두살. 만 9살 때 국립 교향악단과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지 62년, 1961년 뉴욕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지 57년이 지났다. 

여전히 연주할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 "제 연주에 만족을 못 해서 그럴 수 있다"며 "지금에 와서야 어떻게 보면 편하게 악기를 다룰 수 있고 음악을 표현하는데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어요. 더 사랑스럽고, 날이 갈수록 가까워지는 것 같죠"라고 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2017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 프로젝트’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2007년 백건우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마라톤 리사이틀을 완수한 이후 10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전국투어 공연으로,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30여 곳에서 올 연말까지 열릴 계획이다. 2017.04.18. bluesoda@newsis.com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으로 묵묵히 피아노 연주에 평생을 바친 백건우의 건반 소리는 투명하고 서정적이다.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로 역시 베토벤 연주에 큰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음악가이자 백건우의 스승이기도 한 빌헬름 켐프(1895~1991)의 시적인 연주와도 겹쳐진다. 

감수성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음악은 하면 할수록 섬세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훌륭한 음악가는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디테일이 더 보이고 더 들려요. 나이가 들수록 더 연습을 하게 되는 것이 그 만큼 소화할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죠. 숙제가 더 많아졌다는 얘기"라고 웃었다. 

백건우는 클래식음악계에서 '사랑꾼'으로 유명하다. 배우 윤정희(73)와 결혼한 지 지난해 40주년을 맞았는데 여전히 잉꼬부부로 소문이 났다. 인사동 길을 걷을 때 백건우는 여전히 윤정희의 가방을 들고, 그녀의 손을 잡는다. 건반 위의 구도자로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작업의 동반자다. "제게 가장 엄한 평론가이고 제 음악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고 부끄러워했다. 간담회장 뒤편에 앉아 있던 윤정희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백건우는 소박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음악에서만큼은 여전히 궁금증이 누구보다 많다. "어릴 때부터 폭 넓은 음악인이 되고 싶었어요. 많은 음악을 이해하고 싶었고요.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배우가 되는 느낌이에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연주하는 것이 사실이죠. 스크랴빈, 라흐마니노프, 베토벤은 전혀 다른 세계에요. 그것들을 소화하고 그 세계에서 들어가서 표현하는 것이 제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죠. 그 음악 안에서 행복해지는 거예요."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