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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여우가 되지 못했던 老 감독의 쓸쓸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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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으로 기억된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관계가 깊은 한 축구계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감독의 성향을 설명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는 감독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눴다.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려 최상의 경기력을 이끌어내는 '분위기형 감독'과 풍부한 전략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팀을 꾸려가는 '전술형 감독'이 그것이다. 

이 관계자는 "개인적으로는 전술형 감독이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선수라면 월드컵 같은 큰 경기에서는 누구나 잘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굳이 주변에서 말을 안 해줘도 된다. 이때 감독의 전술이 더해진다면 그 팀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슈틸리케 감독은 어떤 성향이냐'는 질문에 "겪어보니 분위기 주도형인 것 같다"고 웃었다. 

대한축구협회는 15일 오후 2시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기술교육실에서 2017 제5차 기술위원회를 열고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했다.

2014년 9월 홍명보 전 감독에 이어 지휘봉을 잡은 슈틸리케 감독은 2년9개월 만에 한국 대표팀 수장직을 반납하게 됐다. 

2015년 역대 한국 축구 다승 2위 기록에 해당하는 16승(3무1패)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슈틸리케 감독의 입지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최종예선에 돌입한 뒤부터다.

슈틸리케 감독은 비슷한 기량의 팀들과 만나자 2차예선에서는 도드라지지 않았던 전술적 한계를 노출했다. 매번 크게 다르지 않은 전술에 일찌감치 전력이 노출됐지만 대처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14일 한 수 아래인 카타르에 당한 2-3 패배다. 선수비 후역습 전략을 펼칠 것이라는 카타르가 예상을 깬 공격적인 스리백 카드를 들고 나오자 슈틸리케 감독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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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카타르)=뉴시스】고승민 기자 = 13일 오후(현지시각) 카타르 도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8차전' 대한민국 대 카타르 경기,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입장하는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2017.06.14. kkssmm99@newsis.com

거듭된 졸전에 부임 초기부터 지켜왔던 선수 선발 방식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소속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들은 부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표팀 명단에는 이와 대치되는 몇몇 이름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라운드 바깥에서도 슈틸리케 감독의 입지는 예전만 못했다. 지난해 10월 이란전이 끝난 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세바스티안 소리아(카타르) 같은 스트라이커가 없어 그렇게 된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결정적인 실책으로 기억된다. 

이를 접한 손흥민이 "다른 선수를 언급하면서까지 (우리 선수들)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쉬운 것 같다"고 언급하는 등 사태는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에 슈틸리케 감독은 "소리아 이야기가 나온 것은 경기 날 아침 지동원에게 동기부여를 위해 '저돌적이고 적극적으로 소리아가 했던 것처럼 해라'고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신뢰에는 금이 간 뒤였다. 

옆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인상의 슈틸리케 감독을 두고 성격이 안 좋다고 말하는 관계자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 축구에 필요한 인물은 우리의 장점을 살리고 상대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는 전략가였다.

여우같지 못했던 노 감독은 월드컵 출전 감독의 타이틀을 달지 못한 채 한국 축구와의 연을 끝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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