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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20. (토)

[연재]글로벌 세금전쟁…국세청, 대응전략은?(7)

국가간 정보교환 확대 - 과세 당국간 공조, 제대로 이뤄지고 있나?

국세청은 역외탈세와 국제거래를 이용한 탈세에 대해 엄정 대응하는 한편, 국제거래와 관련된 성실신고 지원과 해외진출기업에 대한 세정지원을 통해 경제활성화 견인에 역점을 두고 있다. 글로벌 과세권 확대경쟁이 가속화 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의 국제현황 분석과 함께 과세권확보를 위한 국세청의 대응전략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 연재 순서

 

 

2013년 4월 국제탐사언론인보도협회(ICIJ)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소재 서류상 회사를 통해 재산과 소득을 은닉해 오던 전 세계 각국 지도층의 신상을 보도했다.

 

A국 대통령 일가, B국 독재자의 맏딸, C국 국회 부의장, D국 부총리 아내 등이 역외탈세 혐의자라는 보도에 전세계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국내언론도 ICIJ의 폭로를 앞 다퉈 보도하며 ‘한국인 명단은 언제 발표될 것인지’, ‘국세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ICIJ의 보도 1개월 후, 미국·영국·호주 과세당국은 버진 아일랜드를 포함한 조세회피처 관련 대량정보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뒤이어 국세청도 국제공조를 통해 정보공유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ICIJ로부터 한국인 추정 명단을 넘겨받은 국내 모 언론사는 취재를 통해 한국인 신원을 확인해 연작으로 명단을 발표하고 있었다. 당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국민의 의구심도 커졌지만, 국세청은 상당기간 공식 대응하지 않았다.

 

2013년 9월, 국세청은 버진 아일랜드 관련 400GB의 원시자료를 확보, 405명의 한국인 명단을 추출했으며, 구체적인 역외탈세혐의가 확인된 자에 대해 역외탈세조사가 진행 중임을 알렸다.

 

이어 이듬해 2월 국세청은 2013년 역외탈세 추징세액이 처음으로 1조원이 넘었으며 버진 아일랜드 관련 400GB 대량정보를 기초로 역외탈세혐의가 확인된 61명을 조사해 1,351억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앞서 2008년 미국의 UBS 은닉계좌 관련 탈세수사로 ‘역외탈세’가 전 세계 주요 이슈였다면, ICIJ의 탐사보도는 전 세계 과세당국의 역외탈세 대응역량을 시험하는 계기가 됐다. 버진 아일랜드의 원시정보와 관련된 국제공조 실상과 함께 국세청의 역외탈세 대응역량은 어느 정도일까?

 

국세청 담당자는 “역외탈세는 글로벌 차원에서 이뤄져 과세당국 간 국제공조가 핵심적인 대응수단이다. 국가 간 긴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국제공조채널은 비밀유지 영역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역외탈세 대응을 위한 국제공조는 정보교환을 통해 이뤄진다. 조세조약의 정보교환조항에 근거해서 과세당국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보교환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고 해서 모든 과세당국이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지, 반드시 공유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3년 ICIJ 스캔들 당시 우리나라가 신속하게 버진 아일랜드 원시정보를 확보했다는 것은 평소 주요 과세당국과 견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한 공조체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과세당국 간에 한국 국세청에 대한 신뢰는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세청은 ICIJ 스캔들은 국제사회에서 한국 국세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였다면서, E국 국세청장으로부터 감사서한을 받게 된 일화를 소개했다.

 

ICIJ 스캔들 당시 국세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2014년 초 이후로는 새로운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국세청은 다른 나라로부터 감사편지까지 받았다.

 

국세청 관계자는 “당시 ICIJ는 80여명의 다국적 취재팀을 편성하고 정보분석 프로그램 전문업체로부터 도움을 받아 15개월 가량 정보분석을 했다. 페이퍼컴퍼니 명단 10만여개는 많은 분량의 정보이긴 하지만, 명단을 발표하는데 15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은 언뜻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ICIJ가 확보한 대량정보가 클릭 한번으로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는 깨끗한 데이터(Clean Data)가 아니라 260GB의 조각난 정보였기 때문에, 전문인력이 상당한 시간을 투입해서 이를 맞춰야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과세당국이 확보한 자료는 ICIJ가 확보한 양보다 많은 400GB에 달해 과세당국의 면이 서는 듯 했지만, 정보 조각 맞추기는 더 큰 도전과제로 남았다. 국세청 담당자는 마치 몇 년에 걸쳐 만든 블록 장난감이 다 무너져 작은 블록 조각들이 한 방에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다시 조립을 해야 하는데 블록 조각만 있을 뿐 설명서나 조립도가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어떤 나라는 정예요원을 선발해 T/F를 꾸리고 거액을 들여 분석 프로그램을 구매하기도 했고, 어떤 나라는 민간 IT업체에 거액의 아웃소싱을 주기도 했지만 결과가 시원찮아 분석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별도의 조치없이 담당직원들이 무료 배포 프로그램을 가지고 밤잠을 설쳐 단 1주 만에 데이터 분석을 마무리했다.

 

‘역외탈세의 판도라 상자’로 기대를 모았던 버진 아일랜드를 자료와 과세당국의 씨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E국은 대량자료 분석기법에 대한 워크숍을 하자고 제의했다. 국세청은 다른 나라와 데이터 분석 노하우를 공유한다는 뜻에서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일종의 배틀’처럼 워크숍이 진행된 가운데, E국 거주자 명단을 양국 전문가가 각자 추출작업하는 과정에서 E국 국세청 직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한국이 E국 보다 2배가 넘는 숫자를 추출한 것이다. 그 후 E국 국세청장은 직접 감사서한을 보내 한국 국세청의 데이터 분석역량에 대해 호평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제공조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세계 최고수준의 데이터 분석역량 덕분에 국제사회에서 국세청에 대한 신뢰가 한 단계 높아졌다”며 “그 결과 과거와 달리 E국 뿐만 아니라 주요 국가들과 역외탈세 관련 정보가 신속하고 원활하게 교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시정보를 가지고 얼마나 가치있는 정보, 세수에 기여할 수 있는 정보를 제대로 생산해 내는지가 역외탈세 대응역량의 중요 요소다. 국제사회는 국세청의 역외탈세 대응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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