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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김기춘…1인자에만 충성하다 제 발목 잡았나

지난 2013년 하반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채동욱 전 검찰총자을 혼외자 의혹으로 끌어내리고 검찰 인사를 한창 좌지우지할 당시, 검찰 내에선 김 실장을 향해 "전형적으로 '비뚤어진 충성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비판이 공공연하게 쏟아졌다. 

당시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사람들은 김 실장을 충성심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그 충성심은 국가를 향해 있는 게 아니다"라며 "그가 가진 충성심은 평생 대통령 단 한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2014년 말 정윤회 문건사건 등에 대한 김 전 실장 책임론이 비등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 실장은 보기 드물게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두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17일, 그는 대통령 비서실장 재직 당시 자행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검찰 및 문화계 인사 개입 등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받기 위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왕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위세를 자랑하던 그가 하루 아침에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검사장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결국엔 권력을 가진 1인자에게만 충성하다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고 봐야 한다"며 "유신 시절엔 박정희 대통령을,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만 바라보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실장은 2006년부터 박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다. 2012년 대선에서 김 전 비서실장은 박근혜 후보의 자문그룹 '7인회' 멤버로 활동했고, 2013년 8월부터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1980∼90년대에는 검찰총장과 법무장관 등 사정라인의 최고위직을 거치며 날로 위세를 키웠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고 유신헌법 제정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 보자면 아버지의 집권 시절부터 대를 이어 충성을 바치는 인물인 셈이다. 

기민한 대응능력으로 위기를 넘긴 일도 있었다. 19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때 김 전 실장은 지역 감정 조장 발언을 해 큰 사회적 물의를 빚고 사법처리까지 될 처지로 몰렸다. 그러나 결국 발언 내용이 아니라 불법 도청을 문제삼는 '묘수'를 발휘해 위기를 넘겼다. 이 사건은 결국 문제를 제기한 측 인사들만 구속되고 김 전 실장은 무사한 채로 마무리됐다. '법 기술자'로 불리는 그의 면모가 제대로 드러난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가 '법꾸라지'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순실을 모른다"던 그의 말은 거짓말로 이미 탄로가 난 바 있다. 지난달 12월7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김 전 비서실장은 "최순실을 모른다"고 버텼지만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제시한 동영상에 발언을 번복해야 했다. 이 동영상은 당시 박근혜 캠프의 법률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 전 비서실장이 최씨의 이름이 수차례 언급되는 현장에 앉아있었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어떤 불리한 상황도 갖은 술수로 모면해왔던 그를 특검팀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는 것은 그만큼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검찰의 한 인사는 "특검팀이 블랙리스트 뿐만 아니라 검찰이나 문화계 인사에 개입한 부분 등으로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하겠다고 한 워딩의 핵심은 '김영한 비망록'에 적힌대로 따라가 보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는 것"이라며 "비망록에서 김 전 실장이 지시한 내용대로 실제로 진행됐다면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하기는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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