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중심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호(號)의 방향타를 잡을 새 선장으로 4일 `비주류'인 홍준표 대표가 탄생했다.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시절 슬롯머신 사건을 강단 있게 수사하며 스타 검사, `모래시계 검사'로 도약한 홍 대표는 지난 1996년 15대 총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지난 15년간 내리 4선을 하는 동안 그의 위치는 `변방'이었다.
야당 시절 `대여(對與)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데 이어 2006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 잇따라 출마해 특유의 재치로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당내에서는 줄곧 `비주류'였다.
당 전략기획위원장, 혁신위원장 등을 역임했지만, 본인 표현대로 `당직다운 당직'과는 거리가 멀었다. `독불장군', `돈키호테' 등으로 표현되는 홍 대표의 자유분방한 성품과도 무관치 않다.
고려대 선배이자 1999년 미국 워싱턴에서 함께 생활했던 이명박 대통령을 `이명박 선배'라고 부를 만큼 `원조 이명박계'이지만, 친이(친이명박)계에 불참한 점도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홍 대표는 18대 국회 들어 `중심'으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이명박 정부 탄생 후 첫 집권여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그는 정권 초반 인사 파동과 쇠고기 파동, 친이ㆍ친박(친박근혜) 갈등 등 숱한 난제를 쾌도난마 식으로 풀어가며 `신주류'로 급부상했다.
당시 1년간 원내사령탑으로서 `홍반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위기 돌파능력과 순발력, 정치감각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조직'의 높은 벽을 못넘고 2위에 머물며 주류를 향한 그의 행보에는 제동이 걸렸다. 당 최고위원이었지만, 주류 측과 일정 거리를 두며 `비주류'를 자처했다.
대신 홍 대표는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을 맡아 내공을 쌓는데 주력했다. 17대 때 `반값 아파트법', `이중국적자 병역기피 봉쇄법' 등을 주도한 데 이어 `친(親)서민 이미지'를 강화한 것이다.
주류로의 편입을 거부하고 친서민 행보에 `올인'해온 점은 홍 대표가 이번 7ㆍ4 전당대회에서 `당당한 후보, 당당한 한나라당'을 내세울 수 있었던 주된 동력으로도 꼽힌다.
다만 이번 전대 기간 내내 지적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안정한 이미지와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거침없는 입담 등은 총선 승리를 이끌어야 하는 집권여당 대표로서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부인 이순삼(56)씨와 2남.
▲경남 창녕(57) ▲고려대 법학과 ▲부산ㆍ울산ㆍ서울ㆍ광주지검 검사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총재 법률특보, 전략기획위원장, 혁신위원장, 원내대표, 최고위원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15∼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