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인회계사의 우울한 세밑

2002.12.30 00:00:00


"수습 지정이 안 되니 내년도 걱정입니다."

공인회계사 Y씨. 올해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으니 '공인회계사' 명함을 가지고 다니고 있으나 어디에 내놓고 말하기가 두렵다. 그도 그럴 것이 수습공인회계사 꼬리표를 떼려면 아직도 2년은 있어야 하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아직 수습 지정도 못받고 있다.

수습미지정대책위 간부를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거리에는 네온사인이 연말을 알리고는 있지만, 그에게는 우울한 그림자로 다가올 뿐이다.

그는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5년여 의무기간을 마친 후 사회에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제대를 했다. 그래서 그가 목표한 것이 바로 공인회계사 시험.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다행히 올해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 현실은 그의 꿈을 무참히 짓밟았다.

1천6명의 합격자 중 수습처를 찾지 못한 합격자가 350여명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급기야 대책위를 결성, 금융감독원과 재경부를 오가며, 집회를 해보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는 금감원장 집에까지 찾아가 집회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재정경제부는 내년 역시 올해 수준의 공인회계사를 선발한다 하니 갈수록 태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습회계사 문제에 대한 재경부의 답변은 수습미지정 회계사에 대해서는 올해처럼 한국공인회계사내에 실습프로그램을 운용해 교육을 받게 되면 수습기간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만약 수습처를 지정받지 못하면 계속 실습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고, 교육기간 동안 교통비, 식비 등 비용을 감당하는 일도 만만찮다. 자신이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에 모든 것이 암담할 뿐이다.

350여명의 동료들 역시 다같은 마음이겠지만, 가정을 꾸리고 있는 동료들의 처지는 더더욱 난감할 지경이다. 차라리 공인회계사 시험을 보지 않고 일반 직장에 취업했더라면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을텐데, 예전에 각광받던 공인회계사라는 자격이 이젠 무거운 짐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해가 지는 것이 두려울 정도다.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가야 하고, 집에 들어서면 아이들과 아내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저 한숨만 쉬다 두려운 밤을 온몸으로 부딪쳐야 한다.

그리고 그는 아침이면 또 대책위 사무실이 있는 한국공인회계사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채흥기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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