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淑子 | 민 | 민국당 비례대표 1번으로 부산시 2·3기 교육위원을 지낸 홍일점. 부산 현지에서 상당한 재테크 능력을 발휘해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金東旭 | 한 | 합리적인 사고와 무리하지 않는 일처리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 '87년 12대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재벌해체를 주장,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기준과 원칙, 절차와 법에 의한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
金滿提 | 한 |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입안하는 등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한 거물. |
羅午淵 | 한 | 행정고시 출신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가진 자타가 공인하는 재정·조세通. |
朴種根 | 한 | 15대 녹색바람 자민련 공천으로 등원한 이후 '97년 대선 직전 지역정서에 편승, 한나라당에 입당해 당선된 관운이 좋은 정치인. 안기부 출신으로 시류를 잘 읽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徐廷和 | 한 | 충남지사 부산시장 내무부장관 등을 거친 정통 내무관료 출신. '82년 의령에서 `우순경 총기난동사건'으로 내무부장관에서 경질당했으나 통영중 선배인 김영삼 대통령 시절 말기에 내무부장관에 재기용됐다. |
孫鶴圭 | 한나라당 | 야당의 차세대주자로 꼽히고 있다. 지난 '98년 6·4 경기도지사 선거 낙선이후의 낭인생활을 접고 중앙 정치무대로 화려하게 복귀. 학생운동가 노동자 재야운동가 대학교수 등 다양한 인생유전을 통해 누구보다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하는 큰 귀를 가졌다는 평. |
安澤秀 | 한나라당 | 기자출신으로 필명을 날리다가 보사부 공보관 및 국민연금관리공단 재정이사를 거쳐 15대 때 정계에 입문. 여러 정당을 택한 전력과 선거구를 옮긴 이유로 상대 후보로부터 철새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
李相得 | 한나라당 | 실물경제에 정통한 것으로 손꼽히는 인물. 13대 때 고향인 영일군에서 출마해 국회에 입성한 이래 계속 당선됐고 이명박 前 의원이 친동생이다. 고교 졸업 후 부모님의 학비부담을 덜어주고 장군이 되려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으나 팔이 부러져 병이 악화되면서 퇴교,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로 진로를 바꿨다. 코오롱 평사원에서 사장까지 올랐다. |
李完九 | 자유민주연합 | 행정고시 합격 후 최연소 경찰서장 및 경무관 승진기록의 보유자. 15대 때 충남에서는 유일하게 신한국당 후보로 당선된 뒤 자민련에 합류했다. |
李漢久 | 한나라당 | 김만제씨와 동반 입당한 한나라당 최고의 경제전문가. 선대위 정책위원장을 맡아 국가부채, 국부유출 논쟁을 일으켜 여권을 궁지로 몰았던 인물. |
鄭義和 | 한나라당 | 의사로서의 전문지식을 활용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두각. 탈계보와 지역주의 극복을 기치로 한 한나라당內 초·재선 의원 모임에서 간사를 맡는 등 정치활동에 적극적. '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총재에게 후보사퇴를 건의했고 대선 후 당 총재경선에서 서청원 의원을 지지하는 등 초선이지만 소신파. |
崔燉雄 | 한나라당 | 15대 때 낙선의 고배를 마신 후 꾸준히 조직구를 관리해 경쟁자인 최각규 前 강원지사의 부실한 지역관리 때문에 상대적으로 덕을 봤다. |
姜淑子 | 민 | 민국당 비례대표 1번으로 부산시 2·3기 교육위원을 지낸 홍일점. 부산 현지에서 상당한 재테크 능력을 발휘해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金東旭 | 한 | 합리적인 사고와 무리하지 않는 일처리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 '87년 12대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재벌해체를 주장,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기준과 원칙, 절차와 법에 의한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
金滿提 | 한 |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입안하는 등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한 거물. |
羅午淵 | 한 | 행정고시 출신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가진 자타가 공인하는 재정·조세通. |
朴種根 | 한 | 15대 녹색바람 자민련 공천으로 등원한 이후 '97년 대선 직전 지역정서에 편승, 한나라당에 입당해 당선된 관운이 좋은 정치인. 안기부 출신으로 시류를 잘 읽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徐廷和 | 한 | 충남지사 부산시장 내무부장관 등을 거친 정통 내무관료 출신. '82년 의령에서 `우순경 총기난동사건'으로 내무부장관에서 경질당했으나 통영중 선배인 김영삼 대통령 시절 말기에 내무부장관에 재기용됐다. |
孫鶴圭 | 한나라당 | 야당의 차세대주자로 꼽히고 있다. 지난 '98년 6·4 경기도지사 선거 낙선이후의 낭인생활을 접고 중앙 정치무대로 화려하게 복귀. 학생운동가 노동자 재야운동가 대학교수 등 다양한 인생유전을 통해 누구보다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하는 큰 귀를 가졌다는 평. |
安澤秀 | 한나라당 | 기자출신으로 필명을 날리다가 보사부 공보관 및 국민연금관리공단 재정이사를 거쳐 15대 때 정계에 입문. 여러 정당을 택한 전력과 선거구를 옮긴 이유로 상대 후보로부터 철새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
李相得 | 한나라당 | 실물경제에 정통한 것으로 손꼽히는 인물. 13대 때 고향인 영일군에서 출마해 국회에 입성한 이래 계속 당선됐고 이명박 前 의원이 친동생이다. 고교 졸업 후 부모님의 학비부담을 덜어주고 장군이 되려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으나 팔이 부러져 병이 악화되면서 퇴교,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로 진로를 바꿨다. 코오롱 평사원에서 사장까지 올랐다. |
李完九 | 자유민주연합 | 행정고시 합격 후 최연소 경찰서장 및 경무관 승진기록의 보유자. 15대 때 충남에서는 유일하게 신한국당 후보로 당선된 뒤 자민련에 합류했다. |
李漢久 | 한나라당 | 김만제씨와 동반 입당한 한나라당 최고의 경제전문가. 선대위 정책위원장을 맡아 국가부채, 국부유출 논쟁을 일으켜 여권을 궁지로 몰았던 인물. |
鄭義和 | 한나라당 | 의사로서의 전문지식을 활용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두각. 탈계보와 지역주의 극복을 기치로 한 한나라당內 초·재선 의원 모임에서 간사를 맡는 등 정치활동에 적극적. '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총재에게 후보사퇴를 건의했고 대선 후 당 총재경선에서 서청원 의원을 지지하는 등 초선이지만 소신파. |
崔燉雄 | 한나라당 | 15대 때 낙선의 고배를 마신 후 꾸준히 조직구를 관리해 경쟁자인 최각규 前 강원지사의 부실한 지역관리 때문에 상대적으로 덕을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