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감사기준 어디서 제정해야 하나?

2003.02.20 00:00:00

회계감사기준 제정권 유지ㆍ환원 공방


금감원 "위헌소지 다분하므로 민간단체 위임사항 아니다"
공인회계사회 "세계 135개국 회계사회에 위임 문제없다"


회계감사기준 제정권을 현행대로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계속 유지하느냐, 금융감독위원회로 환원하느냐.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회계투명성을 위한 회계계획안이 마련돼 관련 단체 등에 통보돼 관련 단체들이 이를 검토해 곧바로 금감원에 자신들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이를 토대로 곧 방안을 확정해 법 개정부분은 개정을 통해 제도를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이 개혁안에는 현재 한국공인회계사회에 위임된 회계감사기준 제정권을 금융감독위원회로 환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국공인회계사회측으로서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 12일 공인회계사회는 이 내용 등을 주제로 자체 회의를 갖는 등 대안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총 90여쪽에 달하는 이 개혁안은 재경부 및 금감원, 회계연구원 등의 관계자로 구성된 회계 및 감사제도개혁기획단이 마련한 안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지난 12일 오전 10시 자체 회동을 갖고 이 문제를 긴급협의했으며, 외감법 제5조제2항에 따라 지난 2001.3.28 공인회계사회로 위임된 감사기준제정권을 그대로 유지토록 해 줄 것을 금감원에 요청키로 의견을 모았다.

공인회계사회의 한 관계자는 "일본을 제외한 국제회계사연맹 소속 135개국은 민간단체인 회계사협회가 감사기준을 제정하고 있다"며 이는 IBRD 등의 권고사항으로, 이를 다시 환원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반개혁적인 처사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 업무는 계속 공인회계사회에서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금감원의 입장이나 재경부의 입장은 법학자들이 제시하는 문제에 대해 심도있는 검토작업을 거쳐 이를 수용한 상태다. 회계감사기준 제정권은 민간단체의 위임사항이 아니고 정부차원에서 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위헌소지' 지적 때문이다.

▲ 위임의 위헌소지 법률적 판단

이준봉 변호사는 (사)한국증권법학회가 주관하고 한국공인회계사회 등 4개 단체가 공동 주최한 '올바른 기업회계법 규범의 정립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한국회계연구원이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위임받아 시행하고 있는 기업회계기준 제정업무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재위임의 경우 법령에 의해 위임받은 사항을 하위법령에 백지위임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수권법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를 허용할 수 없다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미국처럼 위임입법에 관한 헌법상의 규정이 없는 경우와는 달리 국민의 권리 및 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회계기준의 제정권한을 행정기관이 아닌 민간단체인 한국회계연구원에 위임한 것 자체가 헌법 제40조, 제70조 및 제92조에 비춰볼 때 위헌소지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변호사의 논조대로라면, 행정기관은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소관업무 중 조사ㆍ검정ㆍ관리업무 등 국민의 권리와 의무와 직접 연관되지 않는 단순 사실행위인 행정작용, 공익성보다 능률성이 현저히 요청되는 사무, 특수한 전문지식 및 기술을 요하는 사무 등을 기타 국민생활과 직결된 단순 행정사무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회계기준은 이러한 단순 행정사무가 아니어서 기업회계기준은 금감위가 제정ㆍ운용할 사항이지 한국회계연구원이 제정권을 가질 사항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기업회계기준의 제정권이 한국회계연구원에 위임돼 있어 독단이나 독주로 인한 폐해를 막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상법으로 규정하고, 금감위가 이를 총리령으로 성안해 입법예고와 규제개혁위 심사 및 법제처 심사와 국무총리의 결재를 득한 후 관보에 게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이 변호사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특히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이하 외감법) 제13조제3항과 관련, 기업회계기준을 위반해 허위의 재무제표ㆍ연결재무제표 또는 결합재무제표를 작성ㆍ공시할 때 3년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것은 처벌법규의 위임이 긴급 또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만 한정해야 하는데, 이 요건이 맞지 않아 이러한 구성요건을 한국회계연구원이 정한다는 것은 처벌법규의 위임한계 및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이란 지적이다. 물론 회계감사기준 제정권 역시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내용을 회계감사기준 제정권에 대비해 본다면, 똑같은 논리가 된다. 회계기준이나 회계감사기준 제정은 지난 '80.12.31 제정 공포된 '주식회사외부감사에관한법률' 시행령 제7조제2항에 회계기준 제정기관으로 한국회계연구원이 지정됐고(2000.1.21), 동법 제5조제2항에 의해 회계감사기준 제정기관으로 한국공인회계사회(2001.3.28)가 정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회계연구원은 시행령에, 한국공인회계사회는 모법에 이를 규정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그러니까 재위임과 모법에 바로 정한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감사기준이나 회계기준이 공히 금융감독위원회가 증권선물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하도록(개정 '98.1.8) 돼 있고, 금감위는 이러한 기준제정권을 전문서 갖춘 민간법인 또는 단체에 위탁할 수 있다고 2001.1.12 법 조항을 신설한 바 있다. 각 단체 공히 기준에 관한 사항을 심의ㆍ의결하기 위한 관계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둬 기준을 제정토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회계감사기준 제정권은 2001.3.28부터 한국공인회계사로, 기업회계기준 제정권은 2000.1.21부터 한국회계연구원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회계연구원은 2000.7.27부터 기업의 제정 및 개정, 해석과 질의회신업무를 수행해 오고 있다.

이번 개혁안에는 이 두 단체에 위임 또는 규정한 기업회계 및 회계감사기준 제정권을 금감위로 다시 환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금감원이 이를 시행하려는 근거는 법률적 위헌성 소지를 없애려는 조치로 풀이되고 있다. 이는 한국공인회계사회가 미국 등 국제회계사연맹 소속 135개국이 회계감사기준 제정권을 각국 회계사회가 제정하고 있다는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미국의 회계법을 거의 준용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의 사례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증권거래법에 의해 설립된 증권거래위원회가 권한을 위임받아 제정권한을 미국 공인회계사회에 위임했다. 미국 헌법은 입법권의 위임에 관한 명문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위임에 문제는 오직 연방대법원의 판례에 형성된 기준원리에 의해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헌법 제95조와 같이 재위임시 하위 법령에만 위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회계연구원의 경우 재위임 또는 민간위탁에 해당하는 것으로 공인회계사회의 경우는 제정기관을 법에 바로 정한 것이 차이가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다르겠지만, 두 사안 공히 기준 위반시 형사처벌할 수 있는 조항 등을 민간단체가 제정한다는 것 자체가 성문법을 모토로 하는 우리 실정에서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측면은 공통된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회계감사기준 제정권을 환원토록 외감법을 개정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공인회계사회측은 회계감사 기준을 위반해 형사 처벌하는 것은 법에 정하면 된다는 입장이어서 차후 이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채흥기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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