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破邪顯正' 고집스럽게 걸어온 영원한 언론인

2005.11.01 00:00:00

租稅正論 40年 言論人 50年

 

어디론가 길을 따라 걷다보면 여러 갈림길이 나오기도 하고 돌아가는 길이 나오기도 한다. 또 오르막이나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특정한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는 한 이 길에서 저 길로, 여러 갈림길에선 고민없이 발길이 향하는 곳으로 걷는다. 심지어는 왔던 길을 돌아서 갈 때도 있다. 한국세정신문사 발행인 김재열 회장은 조세정론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걸어왔다. 도중에 걷기 편한 大路를 만나기도 하고 구불구불 좁은 오솔길을 만나기도 했다. 도중에 몇 리를 앞서가는 첩경을 만나도 조세정론을 벗어난 길이라면 피해갔고, 몇 리를 돌아가는 길이라도 조세정론을 향한 길이라면 과감히 선택했다.
그렇게 걸어 온 길이 어언 40년이라는 세월이 됐다. 그동안 많은 기쁨도 슬픔도 있었고 방황의 시기, 고난의 시기도 있었다. 또 함께 손을 잡고 길을 걷던 동료도, 도중에 뿌리치고 떠난 이들도 있었다.
4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지만 그래도 조세정론을 향한 결과물, 한국세정신문이 있기에 김 회장의 지난 행보는 큰 의미를 가진다.


한자루의 펜으로 공권력에 맞서다
김재열 회장이 처음 언론인으로서 발을 디딘 곳이 한국세정신문은 아니었다. 군대시절 속기자자격을 획득한 김 회장은 6·25 직전 국회통신사 견습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제대후 '55년 목포일보 기자로서 언론인의 길에 들어섰다.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이 자유당 정권 말기, 권력과 배경의 난무가 극심했던 때, 행동반경이 자유롭고 싶었고,억강부약(抑强扶弱)을 내세웠던 일간신문의 취재기자생활 5년은 김 회장에게 사회상의 비리고발에 통쾌함도 줬지만 말 못할 고통도 쥐어줬다.

김 회장은 성장기의 좌절과 억눌림이 배경이 되었던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부정선거를 고발하면서 공권력에 쫓고 쫓기는 생활을 이어갔다.

정치부 기자에 대한 회의를 느낀 김 회장은 전북일보를 거쳐 숫자(數)를 다루는 경제부처에 출입하게 됐다. 그것이 인연이 돼 10수년간의 일간신문 관계를 청산하고 세정분야 전문주간지로 진로를 변경해 세정신문과의 동고동락을 시작했다.

 

한국세정신문과 첫 인연을 맺었던 김재열 광주 주재기자 시절(오른쪽 첫 번째 앉은이) 이낙선 국세청장이 광주청을 방문했을 때 취재하고 있는 모습

 


혼란과 내분 극복 경영전선에…
김 회장이 한국세정신문사(당시 한국세정신보) 광주지사장으로 근무하던 '68년, 본사는 내분으로 창간이후 초유의 위기사태를 맞이했다.

그 후 전국지사·지국장 비상대책회의를 통해 정상우 부산지사장과 함께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로 선출돼 '68년8월15일 회사운영권을 인수받았다.

비상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은 김 회장은 지방에서 활동을 하면서 비상대책위원들의 원활한 인수자금 조달과 의견의 일치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질 않자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본사의 경영 정상화는 물론이고 신문의 정상적인 발행마저 지장을 받을 것이라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결국 김재열 회장은 큰 결단을 내렸다.

"내가 선봉에 나서지 않으면 신문은 정상적으로 발행되지 않는다.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한국세정신보를 살려야 한다."

신뢰를 '至高至善'의 가치로 알고 언론인의 길을 걸어온 김 회장이기에 그 해 말까지 회사인수대금을 약속대로 지불했다. 그리하여 39세의 젊은 나이로 한국세정신문의 경영을 시작하게 됐다.

김재열 회장은 경영 초기, 끊이지 않는 내분과 혼란으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이에 '사회공기인 언론사는 법인으로 전환하는게 바람직하고, 그 구성원도 법적인 절차를 거쳐 명확히 해야 하고, 경영에서도 투명성과 합리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순순한 언론인적 양심에 의한 신문 제작을 추진했다.

 

김재열 회장의 집무모습

 

난관은 곧 도약의 기회
김 회장은 내분의 잠재요인 해소 차원에서 이같은 당초 공약을 즉각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분란은 발견 즉시 해소하는 게 첩경이라는 지론 때문이었다.

이에 김 회장은 '69년1월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상업등기소에 '주식회사 한국세정신보사'라는 상호로 법인 등기를 마치고 법인으로 전환했다.

또 김 회장은 경영자로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직접 국세공무원들을 만나 취재를 하고 그들과 벗처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 후 한국세정신문은 사세가 점차 확장되고 조세전문지로 인정을 받아가기 시작했고 김 회장은 제1회 주간신문경영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그 자리에서 안주하지는 않았다. 김 회장의 내면에서는 또 다시 끊임없는 욕구가 분출, 다시 한번 도약해야겠다는 사명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80년 많은 언론사들이 통·폐합이라는 미명 아래 쓰러져 가던 때 김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한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 '신보'를 '신문'으로 제호 변경과 함께 주 1회에서 2회 발행으로 지면을 늘리는 모험을 강행한 것이다.

김 회장은 주간신문계의 대변자로서 활동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세정신문 뿐만 아니라 주간전문신문계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이익을 신장하는 일에 앞장서 왔다.

 

1985년,2003년 두번 수훈한 문화훈장

 

조세정론, 주간신문 위상 인정 받다
그 결과 김 회장은 '85년 주간신문의 날에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당시 이원홍 문공부장관은 이날 "지난 20년동안 국내외적으로 힘든 사정과 함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한번도 흐트러짐이 없이 단합된 힘으로 이를 극복해 왔다"며 치하했다.

김 회장의 수훈은 개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주간신문계의 위상을 드높인 계기가 됐다. 또 2003년에도 보관문화훈장을 받음으로써 두번의 국가훈장을 수훈했다. 김 회장은 감회를 이렇게 밝혔다.

"문화훈장은 내 생애 최고의 성취요, 환희였다. 언론에 투신하여 겪었던 갖가지 고초,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주간신문 가운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데 이어 주간신문협회 부회장과 회장, 그리고 주간신문을 대표해 도서, 잡지 주간신문윤리위원회(현 간행물윤리위원회) 심리위원을 10여년간 거치면서 그동안 사회나 정부로부터 백안시 당해왔던 주간언론계의 위상을 정립시키고자 온 정력을 받쳤다. 그 노력의 결과로 많이 발전하였거니와 그동안 모든 노력들이 문화분야에 공로자로서 국가에서 인정해 주는 문화훈장으로 인해 언론인으로서의 내 인생에 큰 보람으로 여기고 싶다. 이는 그 긴 여정 동안의 숱한 좌절과 고통들이 일시에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었던가 싶다. 때문에 문화훈장이 빛 바래지 않게 언론의 민주적 발전과 사회봉사를 통해 마무리하고 싶은 것이 마지막 바람인 것이다."

외길인생 하지만 주변을 소홀히 하지 않아
김재열 회장은 언론을 통해 사회의 등불이 되고 문화창달에 기여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라이온스클럽 회원으로서 '자기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근면 성실하여 힘써 사회에 봉사한다'라는 라이온스 윤리강령처럼 살아왔다.

또 자신의 발전을 위해 다시 면학에 힘써 전남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거쳤고, 경영지도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또한 문화활동으로 서예를 배우며 옥산 금옥진 화백이 이끄는 한국화협회 후원회에 참여했고, 이것을 계기로 '한국서화명인대전'을 개최하는 등 외길을 걸어간다고 외골수가 되지는 않았다.

 


아직도 길은 끝나지 않았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가운데서도 참 언론인의 정신을 굳건히 지켜오며 전문지의 창간 이념을 한시도 잊지 않았던 김재열 회장.

김 회장은 아직도 화요일 아침이면 편집국 회의에 참석해 세정가의 정보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일선 민완기자시절을 떠올리며 경영인이 아닌 선배기자로서 신입기자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다.

젊은 새내기 기자와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새내기 기자가 걸어갈 길은 자신의 걸어왔던 길과 같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김 회장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김 회장은 자신이 걸어온 조세정론의 길을 조용히 안내할 뿐이다. 그 젊은 기자가 낭떠러지나 막다른 길에 이르지는 않도록 이정표가 되고 싶은 것이 희수를 지난 그의 작은 바람이다.



오상민 기자 osm115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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