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제1회 국세공무원 문예콘테스트수상작-隨筆부문 장려상

2001.11.26 00:00:00

順天灣의 단상


명하지는 않지만 점점 또렷해지는 앵무산의 모습이 새벽녘의 순천만 정취를 아리게 하며 물새의 기지개 켜는 긴 울음이 여명의 종소리처럼 넓은 갯벌에 울려 퍼진다. 산 좋고 물 맑은 문화의 고장 순천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갯벌이 도심에서 불과 20여분 거리에 있다는 것은 정말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행운이리라.

겨울철 삭풍에 부러질 듯 말 듯 견디어 낸 노병의 낡은 군복색 같은 갈대가 짙푸른 초록의 당당함으로 꼿꼿이 새벽의 미풍을 맞받아 치고 있다. 어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그 부지런함이 작지만 잔잔한 엔진 소리로 먼 바다를 향해 미끄러져 가고 있으며 선잠을 깬 두 세 마리의 갈매기가 그 꼬리를 문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안개를 쫓으며 점점 더 밝아지는 아침의 풍광을 새롭게 한다. 시간이 왜 이렇게 급한지 썰물에 갯바닥 드러내듯이 어느새 주위가 훤해졌으며 바닷가 아침의 소란함과 밤새 잠들어 있다가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삶들의 분주함이 여전하다.

바닷물로 덮였다가 일정시간이 지나면 광활한 넓은 면적이 맨살을 드러내 놓고 해맞이, 달맞이, 별맞이를 하다가 다시 바다의 고적함에 함몰돼 버리는, 큰 바퀴처럼  돌아가는 갯벌의 모습에 시간의 흐름을 거역치 않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지형적인 여건을 보아서도 순천만은 육지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있어 천혜적으로 파도와 거친 바다의 야성적인 기질이 적다고 본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순천(順天) 이라는 지명에서 풍기는 것처럼 순한 바다라 표현하고 싶다.

리산의 웅장함이 섬진강에 의해 단절된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백운산은 그 자체가 작은 지리산이다. 산세의 곡선이 미려하고 아담하지만 그러나 그 중에서도 억불봉의 기개 하나만큼은 여타 명산에 비해 만만치 않으며 동·식물의 식생도 다양하다.

그러한 곳에서 발원한 동천과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천년고찰인 선암사를 양품에 안은 야생 작설차 재배지인 조계산에서 내려온 서천이 순천의 도심을 통과해 넓은 대대벌을 적시며 이윽고 바다에 접하는 곳.

그 곳이 바로 순천만이다.

높은 지형에 위치한 아파트의 맨 앞동에 사는 순천시민이면 누구나 남쪽 멀리 아련하게 보이는 바다가 순천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아침에 일어나 남쪽 베란다 창문을 열고 기지개를 켤 때 눈에 보이는 바다의 색과 해룡벌과 대대벌을 거쳐서 불어오는 바람에 순천만의 내음새가 짙게 배어 있다는 것을 연어의 회귀 본능처럼 알고 있다.

소(小)강남이라는 순천의 온화하고 따스한 기후와 가을 추수후 광활한 들녘의 낱곡식과 천혜의 갯벌과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 순천만은 겨울 철새의 도래지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자연 학습장으로 국내외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여기 저기서 짱뚱어가 갯벌 점프를 한다. 왕방울만한 눈을 뛰룩거리고 짝을 찾던가 먹이를 찾던가 아무튼 부지런하다.

구멍에서 나와 바쁜데도 불구하고 자꾸 옆으로만 걷는 작은 게들이 인기척에 쏜살같이 각자 제 구멍으로 숨기에 바쁘다.

갯벌은 정말로 살아있다. 텅 빈것 같은 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이름 모를 많은 생물들이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도  항시 그곳에서 그 방식대로 그 질서에 따라 한치의 착오도 없이 존재하고 있다. 정말 놀라운 자연의 섭리다.

한 장의 널빤지로 만든 뻘배에 살림 바구니와 몸을 싣고 한발로 갯벌을 뒤로 지치고 미끄러지며 앞으로 나아가는 늙은 아주머니들의 익숙한 몸놀림에 거친 바닷가의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고 극복해 가는 강인한 삶의 흔적을 접하게 된다. 이윽고 밀물이 닥쳐 저 살림 바구니에 가득히 땀의 결실을 담고 힘차게 되돌아오기를 소리없이 응원해 본다.

뻘배가 지나간 뒤편에 길게 이어지는 지침의 흔적이 펄펄 내리던 함박눈이 그친 설원에 만남의 기약없는 나그네의 긴 발자국처럼 가슴에 아련한 향수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벌의 색깔은 정말 다양하다.

해가 뜰 때나 질 때, 구름이 낄 때, 한낮일 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인 회갈색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의 색이 아주 미묘하게 첨가된 색, 극히 예민한 색채 감별사도 그 정도의 차이를 쉽게 구분해 낼 수 없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차이를 가슴으로 읽어 낼 수 있는 색이다.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순천만은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갯벌의 고랑을 따라 꼬막 양식장의 경계를 표시하는 말뚝이 길게 꽂혀 있다. 물이 들면 물속으로 사라지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박혀 있어 때론 종종대는 물새들의 부지런한 날개를 쉬게 한다.

멀리 보이는 갯벌 중간쯤 몇 명의 짱뚱어 낚시꾼이 채비를 마치고 낚싯대를 휘두른다. 원래 낚시는 물 속에서 하는 것인데 짱뚱어는 유일하게 물 빠진 갯벌에서 유인하는 미끼도 없이 어신을 알려 줄 찌도 없이 맨 낚시에 추만 매달고 짱뚱어가 모여있는 곳으로 정확히 조준하여 낚싯대의 탄력을 이용하여 낚시를 던져서 재빨리 낚아채 낚시에 짱뚱어가 걸리게 한다. 이렇게 한 마리씩 잡은 짱뚱어는 말려서 조림을 하거나 갖은 양념으로 매운탕을 끓여 한여름의 보신음식으로, 특히 이 지역에서는 각광을 받는 남도 특유의 음식이 된다.

낙지, 꼬막 등 갯벌이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해 주는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수돗물도 정수해서 먹는 세상에 갓 잡은 낙지 한 마리 초고추장에 찍어 바로 먹을 수 있는 건강한 갯벌이 이곳 순천만의 이름으로 있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수년전 어린 딸의 손목을 잡고 이곳 갯벌에 나와 뻘을 손가락에 찍어 다리에 문지르고 그 미끄러운 감촉에 신기해 하며 한쪽 구멍에 손가락을 찌르면 다른 쪽 구멍에서 물이 솟구치는 모습에 마냥 좋아 하루해를 넘긴 추억이 다시금 새롭다.

내 딸이 내 나이 들어서 다시 이곳을 찾아와도 옛날에 그랬었던 것처럼 변함이 없었으면 한다.

항시 이곳에 오면 바다와 갈대, 갯벌, 철새, 다양한 생물, 먹거리, 넉넉한 인정 등이 지금까지는 그대로 있는데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됐으면 싶다. 가지 않은 시계처럼…….

바람이 더 세게 분다. 바다 특유의 짠 냄새가 틀림없다.

그렇지만 항구에서나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에서 맡아본 진짜 바다의 짠 냄새가 아닌 민물이 섞인 약간은 싱거운 바다 내음새가 그렇게 정겹다. 거기다가 살랑거리는 갈대 잎을 스치는 동안 녹색의 냄새까지 섞어져 더욱더 부드럽다.

갈매기의 숫자가 더 많아진 것 같고 여름철새들이 저편 어귀에서 날아와 갯벌 사이로 난 개울가로 무리 지어 내려앉는다.

제각기 먹이에 여념이 없어 인기척을 내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는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지 않고 피곤이 없는 평화지대.

종(種)의 구분이 없이 서로의 존재가 인정되는 곳.

이 곳이 바로 순천만이 아니겠는가?

모처럼의 자유로움과 넉넉함에 삶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며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기 위하여 앞으로 주어진 시간들을 더욱더 알차고 값지게 관리하고 싶다.

강과 산, 들, 바다와 갯벌이 서로 흰 살을 맞대고 있는 곳.

그 먼 시베리아에서 지구상의 수많은 곳을 젖혀 두고 순천만에 와서 겨울을 나는 흑두루미와 철새들이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는 메시지는  순천만이 아직은 오염이 안되었고 고귀한 진객들이 지금까지는 살 만한 곳이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느날 갑자기 그들이 날아오지 않는 순천만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들은 잠수함의 카나리아들이다.

그들이 살 수 없어 오지 않는 곳은 끝내는 우리들도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은 필연의 사실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순천만이 영원히 우리들의 곁에서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아름다운 보석을 시집가는  딸의 손에 살포시 쥐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고 싶다.

-나 순 자 순천署 납세자보호담당관실



김종호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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