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寸鐵活仁]與人溫顧(사람에 대한 따뜻한 보살핌)는

2006.01.30 00:00:00

自全(자신을 지키는)의 妙方이다


 

1945년 겨울 일본이 전쟁에 패배(敗北)한 후 추운 겨울날 '만주땅' 동토(凍土=얼어붙은 땅)에 버려진 일본인 영아(=젖먹이)가 있었다. 그 애는 일인 군인(日人 軍人) 가정에서 태어나 채 백일(百日)도 안 돼 전쟁이 끝나자, 그 부친은 '포로'가 돼 소련으로 끌려가고 젊은 산모(産母)는 본국(일본)으로 도망쳐 나오면서 추위에 울고 보채는 아이에 대한 옆 사람들의 원성(怨聲)에 시달리다 못해 아이를 강보(襁褓=포대기)에 싸서 골목길에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를 주워 길러준 사람은 일본 군인에게 성폭행(강간)을 당해서 불임증(不姙症=아이를 못 배는 병)을 앓고 있는 범씨(范氏)라는 젊은 중국여인(中國女人)이었다.

성품이 다정온아(多情溫雅=다정하고 따뜻함)한 그녀는 일본에 대한 극심한 적개심(敵愾心)에 시달리면서도 자기집 문밖에서 기식엄엄(氣息奄奄=숨이 거의 끊어짐) 죽어가는 아이를 차마 못본체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불임녀(不姙女)라는 허물로 초혼남(初婚男)에게 버림받았고, ××혁명(革命)때는 일본의 SPY(=간첩)이라는 누명과 심한 박해(迫害)를 받아가며 그 아이를 범유희(范有希)라는 이름으로 자기 친딸처럼 귀애(貴愛)하며 양육(養育)했다. 성년(成年=긍세)이 된 유희양(有希孃)은 용모(容貌)도 곱고 성품도 순량(順良)해 그 이웃에 사는 부르조아(有産者=부자)의 아들이 매료(魅了=눈에 들어)돼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됐으나 그녀가 일본 군인(日本軍人)의 기아(棄兒=버려진 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두 사람의 정연(情緣)은 파열(破裂=깨져 갈라짐)이 되고 말았다.

그제야 유희양(有希孃)은 자기의 정체(正體)를 알고 종생(終生)을 독신(獨身=홀몸)으로 살면서 일·중간(日·中間) 외교(外交)가 트인 후 친부모가 찾아와 같이 환국(還國)하기를 간청(懇請)했지만 끝끝내 사양(마다)하고 양모(養母)에게 보은지효(報恩至孝)하면서 열심히 살아서 크게 가세(家勢=집안 형세)를 이뤄 그곳 사람들의 많은 칭송(稱頌)을 받았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삽화(揷話) 한마디!

두 수도승(修道僧)이 물살이 빠른 여울을 건너려 하는데 미모(美貌)의 한 젊은 여인이 깊은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한 스님은 '여자를 가까이 하면 안된다'는 계율(戒律=중이 지켜야 할 규율) 때문에 도울 수가 없다고 손을 내저으며 먼 산을 보고 건너가 버렸다.

그러나 다른 한 스님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여인의 손을 잡고 물속에서 끌어올려서 두 손으로 껴안고 그 여울을 건네 줬다.

원적(怨敵=원수진적)의 기아(棄兒)를 구양(救養)한 범녀(范女)와 물에 빠진 여자를 익몰(溺沒) 직전에서 구해낸 스님. 이 두사람의 거조(擧措=행동)는 그야말로 무역무외(無慾無畏=욕심과 두려움이 없음)의 지순(至淳)한 인간애(人間愛)의 발로(發露)이며 박애주의(博愛主義)에서 움튼 우성접수(優性接穗=좋은 접목)이라 할 것이다.

이욕(利慾)을 쫓아 동몽(童夢)의 야성(野性)이 설치는 시끄러운 세상은 속거천리(速去千里) 멀리 떠나 보내고 국민 모두가 한가족처럼 따뜻한 손으로 서로를 감싸고 아끼면서 지내는 한해가 됐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원수 기자 ulsan@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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