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보현(金輔鉉) 대전지방국세청장

2005.05.12 00:00:00

" '납세자가 주인' 신념으로 세정혁신 적극 선도할터"


 

지난 4월1일 대전지방국세청장으로 김보현 조사1국장이 전격 발탁됐다.
지방청 국장에서 지방청장으로 수직승진한 사례는 국세청 개청이래 최초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청장의 발탁은 비고시 출신자들도 성실함과 능력만 있다면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19세의 어린 나이에 국세청에 입문해 황소처럼 업무에 매진, 33세에 사무관 승진 등 신기록을 달성했지만, 서기관, 부이사관 승진에서 번번히 추월당하는 처절한 아픔을 겪은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지방청 수장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오로지 국세청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발자취에 대해 들어봤다.


△'47년생
△충남 부여
△대전고, 청주대 상학과
△'66.6월 공주(9급)·청주·동대전세무서 근무
△'80.10∼81. 5  논산세무서 총무과장('80.12.1 행정사무관)
△'81.6∼'83.2 동대전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85.11∼'92.1 국세청 부가가치세과 사무관
△'90.2∼'92.1 중부지방국세청 재산세과장('92.2.1 서기관)
△'94.1∼'94.8 대전세무서장
△'94.8∼'96.8 서울지방국세청 부가가치세과장
△'96.8∼'97.6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장
△'97.7∼'98.7 영등포세무서장
△'98.7∼'99.6 국세청 부가가치세과장
△'99.6∼2000.6 대전지방국세청 간세·조사2·조사1국장
△2000.7∼2002.10 국세청 재산세과장
△2002.10∼2003.7 대전지방국세청 조사2국장(2002.11.4부이사관)
△2003.7∼2005.4 대전지방국세청 조사1국장
△2005.4.1∼ 대전지방국세청장


△최말단인 9급 공무원에서 대전청장으로 승진하는 영광을 안았는데 그에 대한 감회는?
" '66.1월에 대전고를 졸업한 후 농촌 오지에 계신 부모님의 병환 등 가정형편의 어려움으로 대학을 포기, 국세청 발족직후 제1회 5급 을류(현재 9급)세무직 공채시험에 합격해 '66.6.20자로 공주세무서에 첫발을 내딛어 그간 우리 대전청 관내에서만 14번 근무를 했다.

지나온 긴 세월속에 제가 근무했던 관서들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으며, 가끔은 영화의 명장면같이 눈앞에 아른거리곤 한다. 그 감회를 몇마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국세청내 최연소 사무관 승진 등의 진기록을 갖고 있으나, 승진에서 좌절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했나?
"공직자가 가장 바라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승진이 빨리 이뤄지거나 최소한 비슷한 상황에 있는 동료들보다 뒤쳐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일 것이다.

서기보 19세, 서기 21세, 주사보 23세, 주사 28세, 사무관 33세까지 당시 국세청내에서 최연소 승진을 했으나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승진하는데 11년, 서기관에서 부이사관으로 승진하는데 12년이 걸렸다.

저를 아는 국세청내 현직 및 퇴직한 많은 분들이 제가 승진에서 수차례 밀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던 것처럼 이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두 손을 꽉 쥐고 다시 결심하고 다짐하면서' 일에 전념해 이를 극복했다. 본청 부가세과장 시절에는 항상 사무실 불을 제일 늦게 껐고, 저녁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전무할 정도로 열심히 일해왔다.

또 제가 공직생활 중 어렵고 힘들거나 꾀를 부리고 싶을 때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를 때에 항상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무거운 짐을 지시고 땀방울을 흘리시며 들과 산에서 작고하실 때까지 평생을 오직 농사일만 해오셨던 그야말로 '근면·성실의 화신'이셨던 先親의 일하는 모습이 저의 눈앞에 아른거려 이를 잠재워줬다. 이는 항상 자만하지 않고 자세를 낮추는 길잡이 역할을 했으며, 일한 만큼 곡식이 생산되는 자연의 이치처럼, 제가 노력하고 조직에 기여한 만큼만 대우를 받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중부청 근무시 토지초과이득세 첫 시행, 본청 근무시 서울 및 수도권 등 아파트 투기 진정 등 큰 궤적을 남겼는데, 당시 어려웠던 점이나 잊지 못할 일은 ?
"경기·인천·강원을 관할해 부동산 투기현장이 전국에서 제일 많았던 중부청 근무시 토초세 집행을 위해 신설된 재산세2과장(일명 '토초세과')에 보임됐었다. 그 법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이나 수긍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우리 직원들도 너무 생소해서 집행의 접근방법을 찾지 못했으나, 근무기간 2년 내내 하루도 쉴 날이 없이 업무에 매진해 토초세의 첫번째 과세조치까지 성공적으로 끝낸 바 있다.

토초세 업무집행과정에서 각종 행정규제로 묶여 있던 전, 답, 대지, 임야 등 토지들이 토초세 과세대상이 되는 것에 격분해 지금의 영종도 등 인천시 중구 주민들 수백명이 집결했을 때 본인이 현장에 나서 직접 설명해 이해시킴으로써 마무리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단기 아파트거래 등에 양도소득세를 실지거래가액으로 과세하는 방안, 아파트 분양권 등 전매자료의 수집·분석을 통한 아파트 투기 대처방안 등을 창안, 당시에 아파트 투기를 잠재우고 2002.10월에 국세청 재산세과장 재직 2년3개월후 부이사관으로 승진하는 영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취임사에서 맏형 역할을 자임했는데?
"맏형은 집안에서 제일 먼저 태어나 아래로 동생들이 연달아 있는 그런 가정을 떠올릴 수 있다.

저는 현재 대전청내에서 나이도, 세무업무 복무 경력도 제일 많다. 또한 본청, 서울청, 중부청에서 각 보직을 거치고, 대전청에서는 서기보에서 지방청장까지 각 직급을 근무하는 등 대전청과 특이한 인연을 맺고 있다.

따라서 저는 큰형이 동생들에게 따뜻한 형제애로, 때로는 준엄하게 때로는 다정하게 삶의 지혜를 전하듯 40년 가까이 제 몸에 녹아 있는 세무행정의 산 경험들을 우리 대전청 직원들에게 모두 전수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동생들은 젊으며, 아직 어리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업무의 방식, 평소의 생활자세, 장래를 보는 눈, 세상을 사는 지혜를 전수하고, 어렵고 힘들 때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할 것이다.

큰형이 걸어온 길을 동생들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때로는 본받는 동생들이 많이 나왔으면 더욱 좋겠다는 심정이다."

△대전청의 위상이 제고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는데?
"오래전 퇴직하신 분들이나 지금 현직에 계신 많은 분들이 지난 날의 인식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도 대전청을 아주 작은 지방청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제는 그런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본다.

우리 대전청은 국토의 중심부를 관할하고 있으며, 사통팔달의 교통망과 천안, 아산, 음성, 진천, 충주 등 좋은 산업입지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속속 전입해 오거나 창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표적인 관서 위상을 가늠하는 평가지표, 납세자 수, 세수규모면에서 6개 지방청 중 현재 4위라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납세자가 있다.

10년이내에 공주·연기지역 행정중심 복합도시에 본청이 자리할 것이고 대전, 충남·북의 지리적 호재 등으로 세원은 매년 크게 증가할 것이다.

여기에 발맞춰 우리청 직원들에게 실력 배양을 강조하고 있으며, 세정혁신의 선도청임을 자임하면서 선진화되고 성숙한 대전청 문화를 가꾸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한가지 어려운 점은 세원 증가에 따른 폭증하는 업무량에 비해 우리 청의 정원(직원 수)은 매우 적어 종전과 비교할 때 지방청별 정원 점유비에서 별 변동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김 청장께서는 몇가지 1등의 기록이 있다고들 많은 사람들이 말하던데?
"서울, 수도권, 대전지역에서 오래 근무하시다 퇴직하신 선배들과 아직 현직에 있는 일부 직원들은 저를 '시험선수'라고 부르곤 한다.

세무공무원교육원의 교육을 총 여섯번 받았는데 그중 4번 1등을 했고, 특히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각 부처의 서기관이 되려는 고참 사무관들의 교육인 '일선 기관장 후보자 교육'에서 1등을 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세무공무원교육원의 '개인세반' 교육에서 1등을 차지했으며, '75년 전국 종합소득세 시험에서도 전국 1등을 하는 등 1등과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인생의 좌우명이 있는가? 조직에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를 심어 하나만을 수확하거나 열만을 얻는 것이 아닌 하나를 심고 백이나 되는 수확을 얻는 것이 '人材'이기에 대전청 人材 育成에 적극 노력할 것이다.

한편 관리자에게는 조직 구성원 개개인은 평범하더라도 각자의 능력이나 개성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조직 전체가 큰 업적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직원에게는 윗사람의 명령이나 지시를 기다려 그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언제까지라도 남의 밑에서 일하게 되므로, 윗사람 밑에서 일하면서도 자신에게 명령하고 자주적으로 판단, 일을 적극적으로 처리해 나가면 자기 성장을 이뤄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과 높은 보수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한편 저와 관리자와 직원 모두에게는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실패를 낳을지도 모르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납세환경 변화에 둔감하고 지금의 방식에만 익숙해 납세계층의 의식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또 새로운 방식이나 더 나은 방식을 찾아 과감하게 바꿔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지를 항상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40여 성상의 세무 공직생활을 통해 얻은 김 청장의 세정철학은?
"우리 국세공무원은 국세의 부과와 징수를 통해 국가 재정수요를 확보해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고 있고, 우리는 이를 완수해 왔다. 우리의 행동기조는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한 세금 부과, 징수활동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납세계층은 너무나 다양해 세무대응능력이 아예 없거나 부족한 납세계층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이 계층에 주목해 그들의 입장에 서봐야 한다고 본다. 즉 '易地思之'의 사고를 가졌을 때 행동방향이 설정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한정된 인력과 시간속에 세수확보의 사명을 완수해야 하기 때문에 일의 經重과 緩急을 가릴 줄 아는 지혜 역시 필요하다.

그외에도 우리 국세청 조직을 아끼고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하는 일은 국가 어느 조직보다 중차대하며 국민들의 최고의 관심사라는 점 또한 잊지 말고, 항상 '납세자가 주인이다'라는 신념하에 납세자를 정성껏 모시는 것을 사고와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성만 기자 daejeon@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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