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비화, ⑤영수증 주고받기 생활화-〈3〉

1999.05.31 00:00:00

평화시장 하루 5~10차례 안내방송

 당시 평화시장에서 잡화상을 했던 김형남씨(62세·現 남대문시장 액세서리상가 대표)는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큰 마이크 방송을 통해 `영수증을 주고받자'는 내용의 방송이 하루평균 5∼10차례 계속됐다고 회고한다.

 한달에 한번씩 가장 많은 영수증과 가장 큰 액수의 영수증을 가져온 사람에게 TV 등 경품을 지급하던 일들도 그가 전하는 그 시절 영수증캠페인의 일단면이다.

 일선 세무관서에서도 관내 시장상인 등을 동원해 대대적인 영수증주고받기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82년7월∼8월에 발행된 韓國稅政新聞(당시 韓國稅政新報)의 稅政街 산책란 대다수 기사들이 각 세무관서의 영수증수수 캠페인관련이었다는 점 하나만을 보더라도 당시 세무관서의 관심을 쉽사리 엿볼 수 있다.

 먼저 1367호인 7월26일자 稅政新報에는 남광주세무서(서장·李京勳)와 이리세무서(서장·金德煥)의 영수증수수 결의대회 기사를 다루고 있다.

 남광주세무서는 광주 양동시장 복개상가 상인 4백여명과 함께, 이리세무서는 관내 백화점 다방 요식업사업자 5백여명과 함께 각각 실천결의대회를 가졌다는 내용이다.

 또 같은 시기인 1363호 신문에는 구로세무서(서장·尹俊普)의 개봉수퍼 대상 영수증수수 모범업소 지정에 관한 제하의 기사를, 영주세무서(서장·金基錫)의 영주장날 전개한 캠페인 기사를, 남대문세무서(서장·崔炳潤)의 영천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두실천대회 기사를 각각 게재하고 있다.

 같은시기 국세청의 총사령탑이었던 安武赫씨의 움직임도 무척 분주했다.
 安 청장은 '82년5월20일 역대청장 가운데 유일하게 관료출신이었던 金壽鶴 청장의 갑작스런 퇴진에 따라 국세청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張여인 사건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집니다”라는 말로 퇴임사를 시작했던 金壽鶴 청장은 제4대 국세청장으로서 '78년12월26일부터 3년4개월여동안 국세행정을 이끌어 왔다.

 학력이 小學校졸업이라는 점을 스스럼없이 내세워 왔던 金청장은 아직까지도 국세행정사에 있어 立志傳的인 인물로 이야기되고 있다.

 재임기간 조직원들을 무더기로 잘라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던 金청장은 퇴임사에서 “고생을 너무 많이 시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뒤 老母와 함께 고향으로 떠난다.
 철저한 `외유내강형'으로 청백리라는 평을 듣기도 했던 그가 `張여인 사건'을 계기로 물러 안게 되자 `육사출신'이었던 安武赫청장이 바통을 잇게 된다.

 安 청장은 국세청장 부임전 서슬퍼런 사회정화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당시 사회부조리 척결을 위한 의식개혁 운동을 주도했던 장본인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가 청장 부임이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영수증 캠페인'운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전국 지방국세청을 비롯한 각 관서별 실천결의대회와는 별도로 시장상인 대표들이나 공평과세협의회 회장들과의 만남을 자주 가졌다.

 단적인 사례로 '82년10월 말 가졌던 남대문 한영상가 張順化 공평과세협의회 회장과의 면담을 들 수 있다.



서주영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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