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비화 - 범양상선 세무조사〈9〉-③

2000.04.24 00:00:00

朴회장 死因 유서감지 국세청 의도축소 일면




유서내용 중 `韓相淵 사장은 인간이 되시오'라는 대목은 오너와 전문경영인간 갈등의 골을 짐작케 했으며 `이번 조사로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을 관계당국에서도 잘 인지하시고…'라는 대목에서의 `조사'와 `관계당국'은 국세청이 아니겠냐는 판단에서 유서가 세무조사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국세청 관계자는 17일경 “국세청의 조사를 받은 朴健碩 회장이 국세청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깊숙이 회사를 포함한 자신들의 비위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판단, 상당한 심적 부담을 느낀 것도 자살의 한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관계자는 “17일경 朴 회장과 韓 사장을 불러 조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무조사 차원의 조사가 아니라 당시 범양의 비위사실 등이 세간에 회자되는 데 대해 경영자들의 견해와 분위기 등이나 파악해 보자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어쨌든 朴 회장의 유서에는 세무조사 때문에 자살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 강하게 표현돼 있어 국세청으로서는 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국세청 조사팀이 安武赫 청장에게 직보를 하며 대책을 논의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조사사실을 시인한 국세청 한 관계자는 “朴 회장과 韓 사장측간의 내분과정에서 韓 사장측 직원이 朴 회장의 탈세비리 외화도피 사실을 적은 투서를 보냈으며, 국세청은 이 투서에 대한 내사를 거친 뒤 지난 16일부터 이틀반 동안 조사를 벌여 왔다”고 밝혔다. 국내의 전 언론이 이 사건에 집중적으로 매달리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당시 국세청 관계자는 “조사에 막 착수한 단계에서 朴 회장이 자살함으로써 사건의 불똥이 엉뚱하게 국세청 쪽으로 튈까 걱정”이라며 “朴 회장의 유서내용 중 `관계당국'과 `조사'는 국세청의 세무조사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등 당시 국세청으로서도 조사에 대한 신념과 방향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이를 반증하듯 당시 언론들은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 조사가 朴 회장 개인에 대한 것이며 범양상선에 대한 세무조사는 아니었다고 애써 축소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고  전하고 있다.

당시 빚이 엄청났던 회사에 국세청이 세무조사의 칼을 들이댔다가 회사가 휘청거리거나 부도라도 날 경우 괜히 국세청만 괴롭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사는 시작됐고, 조사사실도 외부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국세청은 이왕 조사를 시작한 만큼 뭔가 결과는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韓相淵 사장의 신병확보와 함께 집중적인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물론 당시 범양 직원들로부터 들어온 제보들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고, 제보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상당한 성과는 거둘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고 당시 관계자는 회고했다.

국세청의 내사는 보통 익명에 의한 것이나 막연한 것에 대해서는 착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당시 국세청은 내사로 인해 상당한 비위사실을 확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이 범양상선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은 해운업계의 외화도피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점에서 국세청도 한번은 손댈 준비를 하고 있던 터에 이 회사의 내분으로 인한 각종의 투서가 단초가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당시 조사실무를 맡았던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청의 첩보망에 의해 범양의 외화유출 등이 잡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범양과 관련해 실명이나 익명으로 된 투서가 5건이나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또 범양의 관계직원들로부터 전화제보도 적지 않았고, 심지어 관계직원들이 찾아와 얘기하는 제보성 진술도 많아 국세청으로서는 조사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당시 조사국의 한 관계자는 “전화제보나 익명투서는 자료로만 처리했다”고 말하면서도 “한 기업의 세무조사과정에서 이같이 투서 제보가 많은 적은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투서가 이같이 많았다는 것은 이 회사 경영인간의 불화가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서주영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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