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光州民主抗爭 異色體驗記

2000.05.15 00:00:00

5월 그날의 광주-이런 軍人이 있었다



장재철(張在鐵) 시인

5·18 당시 갖가지 무서운 소문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나는 30리 길을 걸어서 날마다 광주시내에 들어왔다.

젊은 군인이 그 나이 또래의 학생을 길바닥에 꿇어앉혀 놓고 곤봉으로 머리를 까고 발길질을 하는 광경은 흔히 보았고 항변하는 임산부의 배를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大仁洞地下道에 피범벅이 된 시체가 나무토막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는 소름끼치는 처절한 소문은 우리가슴에 피멍을 들게 했다.

2차 세계대전때 나치의 점령하에 있던 파리시민의 처지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인데…….
날마다 도청앞 금남로에 구름처럼 모이는 성난 군중들…….

나이 많은 나는 그 속에 섞이지는 못하고 길가 인도에 서서 박수를 보내고 함성을 지르곤 하다가 하루는 서석동 조선대학교 후문 근처에 있는 잘 아는 단골 선술집을 찾아들었다.

그 집 중년여주인이 따라주는 소주 몇 잔에 얼근해 있는데 전투복 차림의 장교(중위) 한 사람이 사병 한 사람을 데리고 그 술집으로 들어왔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여주인이 구면인 듯 벌떡 일어서서 아른체를 했다.
나는 군인을 보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일어서는 전율과 증오를 느끼고 잔뜩 찡그린 얼굴이 되면서 그쪽을 노려보았다.

평소에 나의 다혈질의 격한 성품을 잘 아는 그 집 여주인의 눈짓으로 하는 제지를 받고 고개를 돌린 나는 연거푸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곁눈으로 본 그 장교의 얼굴이 그렇게 유순하고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그 말소리도 사근사근 붙임성이 있었다.
그 얼굴과 행동에서 어느 만큼 안도감과 친근감마저 느낀 나는 거나하게 취한 술기운을 빌어 기탄없는(?) 질문을 그 장교에게 던졌다.

“당신 진압군이오? 아니오?”
젊은 장교는 이렇게 묻는 내 얼굴을 한동안 응시하더니 조용하고 온공한 말투로,
“전 광주에 온 지 사흘밖엔 안 됩니다.”라고 하면서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당신은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때리고 죽인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죄없는 광주시민을 닥치는 대로 때리고 죽이고 한 군인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내 입에서 이 말이 나오자 놀란 그 집 여주인이 벌떡 일어서서 내 입을 막으려 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놈들, 광주에서 난동부리고 사람 죽인 그놈들은 우리 나라 군인이 아니라구!”
나는 악쓰듯 이렇게 말하고 그 집을 나왔다.
그러자 밖에까지 따라나온 그 젊은 장교는 “좀 뵙시다”하고 나를 불러 세우더니

“나이도 드시고 점잖으신 분이……. 지금은 그런 말씀 하실 때가 아닙니다.”라고 하면서 같이 따라나온 운전병에게,

“술에 많이 취하셨으니 댁까지 모셔다 드리고 오라”고 이르는 것이었다.
내가 집이 멀다고 사양을 하자 그럼 시 외곽까지만이라도 타고 가라는 것이었다.
“그 상태로 시내를 가시다간 큰 일 내겠어요”하고 걱정해 주는 속깊은 배려가 내 마음을 잡고 흔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지이프차에 올랐지만 집으로 가지 않았다.
이러다간 광주시민이 다 몰살될 것만 같은 절박한 심정으로 살 맛을 잃은 나는 집에 돌아가기도 싫고 아는 사람 만나기조차 역겹고…….

지이프차를 내 집과는 정반대 방향인 화순으로 가게 한 나는 화순읍에서 차를 돌려 보내고 택시를 잡아타고 `二一曲赤壁'으로 갔다.

살인자들과 맞서 싸우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비탄과 자책으로…….
차라리 그 꼴을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자는 비겁한 `도피행'을 한 것이다.

흔들어 깨우는 `자존의 손짓'에 등을 돌리고 광주시내를 빠져나온 나는 적벽천 물가 허름한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다음과 같은 피맺힌 詩 한 수를 `토악질처럼' 쏟아내고 땀내나는 木枕에 이마를 묻고 소리내어 울었다.

妙悟의 노래
왜 저곳에 地獄의 울부짖음과 硝煙 냄새가……?
歷史는 언제 어느 때
그 까닭을 말해 줄까요?
지금은 아침 바다처럼
조용해진 거리에는
눈으로만 말을 하는
광주시민들이
먼 곳에 모닥불처럼
차가운 눈초리로
찌푸린 잿빛 하늘을
쳐다봅니다
사람이 싫고
군화 발소리가 그렇게 싫어
새 소리가 支配하는 산골이 좋아
흐느끼며 흐느끼며 찾아온
二一曲적벽
百 길 벼랑위에 매달린
저 나무들은 또
누구의 무슨 안타까운
恨怨입니까?
운예속에 잠자는
깊은 골짜기에서
나이 어린 초동의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侵虐의 땅' 光州의 아픔을
온 누리가 우는 그 날에도
遊客의 `눈요기'에
젖가슴만 큰 시골 처녀가
한 떨기 창포꽃처럼
물가에 앉아
하루종일 잔물고기를
뜨고 있습니다
('80.5.29)

餘滴

나는 어쩌면 나를 絶處의 危機에서 구해 준 그 젊은 將校의 그 후 소식을 모른다. 운전병에게 들어 姓은 林氏이고 고향이 京畿道라는 것만 알고 있다.

말로는 안 했지만 동료군인의 悖惡을 慨歎하고 슬퍼하던 端正淸秀한 얼굴, 그 얼굴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



서주영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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