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세무조사 어떻게 보나 〈上〉

2000.06.08 00:00:00

경영 투명성확보의 기회로 삼아야




지난 4월말 국세청이 3대 재벌기업들을 위주로 주식이동조사를 비롯한 정기법인세조사에 착수, 현재 한창 진행중이다.
조사착수 시점이 총선직후여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총선이후 재벌개혁의 방향이 무엇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시기라는 점과 조사의 초점이 과거의 주식이동에서 드러나는 탈법 상속·증여 관련이라는 점에서 2차 재벌개혁의 신호탄으로 보고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측은 국세청의 재벌에 대한 세무조사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하며 정치적 의도로 매도하는 세력을 경계했다.
세무조사는 조세부담의 공평성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이 보루가 이런 해석들로 인해 세무조사가 또 다른 정치적 고려(?)에 의해 미흡하게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측면에서 시민단체 〈상〉와 전경련 〈하〉측의 견해를 차례로 싣는다.

편집자 註


하승수 변호사

최근 일부 재벌들에 대한 국세청의 법인세 정기조사와 주식이동상황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일부 재벌들의 경우, 계열사간의 부당내부거래나 총수 자녀들에 대한 변칙 증여 혐의를 받아 왔었기 때문에 이번 세무조사는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세무조사가 재벌개혁을 위한 압박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사실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과세목적이외의 다른 고려가 개입되어 있다는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우리 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얼마전에 있었던 某신문사 오너를 세무조사하여 탈세혐의로 처벌했을 때에도 그랬다. 그 당시에 그 신문사는 직원들까지도 `언론탄압'이라고 반발했다. 그 반발의 배경에는 세무조사가 언론 길들이기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시각과 `다른 언론사 오너도 마찬가지인데, 왜 우리만 가지고 그러느냐'는 시각이 깔려 있었다. 물론 탈세라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옹호하거나 합리화하려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주장이 나올 수 있게 하는 아픈 역사이다.

지금처럼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목적의 순수성과 대상자 선정의 공정성이 의심받게 된 배경에는 독재정권이 세무조사를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했던 과거의 어두운 역사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어두운 과거는 최근까지 이어져서 지난번 대통령선거 때에는 과세관청의 수장이 나서서 세무조사라는 수단으로 기업들을 압박하여 정치자금을 모금한 사건까지 있었다.

사실 현대국가에서 세무조사는 수사기관의 수사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형사처벌은 한 번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세무조사에 따른 세금추징은 기업이나 개인의 재산적 기반과 신용 모두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처럼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에 세무조사는 탈세를 근절하고 납세자들의 성실도를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반면에 세무조사가 객관성과 중립성이 결여된 채 정치적으로 악용된다면, 그것은 과세관청에 대한 납세자들의 신뢰를 빼앗아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국세청은 '98년이후 세정개혁작업을 통해 기능별 조직으로 전환하면서, 세무조사기능을 대폭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펴 왔다. 이 시점에서 납세자들이 세무조사, 나아가 과세관청의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려면 몇 가지의 원칙이 다시 한번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첫번째는 세무조사의 엄정성이다. 탈루혐의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없이 철저한 세무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소위 `힘있는 자'라 할지라도 세무조사에 있어서는 예외가 되어서는 안된다. 두번째는 세무조사 대상 선정의 객관성이다. 탈루가능성이 높을수록 세무조사 대상으로 선정될 확률이 높도록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에 의해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납세자의 성실도를 평가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고, 국세통합전산망(TIS)이 적극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세무조사에 있어서는 일체의 정치적 고려나 영향력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세무조사의 실시여부나 실시강도를 결정할 때에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다는 의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세무조사는 그것이 가지는 힘이 큰 만큼 공정성과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중립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어쨌든 이번 재벌에 대한 세무조사 착수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세무조사가 재벌과 같이 부와 사회적 영향력을 겸비한 집단을 비켜 나간다면, 국세청이 납세자들로부터 신뢰를 받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재벌들의 변칙증여사례들이 계속 문제되어 온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국세청이 재벌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재벌들과 정부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은 시점에서 세무조사 발표가 이루어지면서 그 목적의 순수성이 의심받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국세청이 재벌들의 변칙증여가 문제되었을 때, 그 즉시 지금과 같은 세무조사에 착수했더라면 얼마나 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 점을 생각하면 국세청 스스로도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제 지금의 상황에서 국세청이 해야할 일은 재벌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철저히 해 그동안 국민들이 가져온 의혹들을 규명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세금을 추징하는 것이다. 재벌들은 그동안 정치권력과 관련된 각종 비자금 사건에서도 자금출처를 제대로 조사받지 않았다.

그리고 총수의 자녀들이 엄청난 부를 이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납부한 상속·증여세의 액수는 턱없이 적었다. 이것을 방치해 주고 조세정의를 논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번 세무조사는 조세부담의 공평성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무조사가 `또 다른 정치적 고려'에 의해 미흡하게 이루어진다면, 그때는 정말로 세무조사의 순수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받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이다.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서주영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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