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정신문 창간40주년기념 특별대담
고재일 前 국세청장(3대·전 건설부 장관)-②

2005.05.26 00:00:00

"'국세청은 비리집단' 汚名씻는 일이 가장 급했습니다"


- 건강한 모습 참 반갑습니다. 건설부 장관을 지내셨지만 청장님이라고 칭하는 게 더 정감이 가는 군요.
□ 좋습니다. 세정신문사에 이렇게 와서 보니 저도 감회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세정 역사와 함께 해 온 신문아닙니까. 국세청장 재임때도 세정신문이 많은 힘이 돼 주셨습니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청장님께서는 '73.3.9 국세청장에 취임하셔서 '78.12.21 건설부 장관으로 영전되실 때까지 만 5년8개월을 국세청장으로 일하셨습니다. 역대 최장수 국세청장이십니다. 돌이켜 보면 감회가 많으실 줄 압니다.
□ 우선 세수가 안됐어요. '72년 세수가 3천743억원이었는데, 그것을 채우기 위해 조상징수를 해야 할 정도로 세정환경이 말이 아니었죠. 그래서 자나깨나 온통 세수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지 제가 부임하고 나서 경제가 살아나 세수를 무리없이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고재일 전 국세청장(왼쪽)이 대담에 앞서 金在烈 본지발행인·회장(오른쪽)을 예방,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세정현장은 어땠습니까.
□ 우선 국세청에 대한 외부의 인식이 아주 안좋았습니다. 마치 국세청은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아는 사람들이 정부내에도 많았습니다. 그러니 직원들 사기는 물론이고 기강도 해이해 있고…. 그래서 부임하자마자 기강을 다잡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기강을 잡고 직원 능력을 배가시키는 일은 인사가 좌우합니다. 그런데 국세청에서는 소위 빽이 없으면 중요한 일을 못한다는 소문을 전매청장으로 있을 때부터 들었어요. 그래서 그 오명부터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죠.

-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셨습니까.
□ 인사에서 청탁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배격한다는 말을 전 직원들에게 주지시키고 그것을 실천했죠. 그러니 여기저기서 불만들이 많아요. 알만한 사람들한테서 압력도 막 들어오고…. 그렇지만 이것이 무너지면 국세청도 무너진다는 각오로 인사에 관한한 원칙을 반드시 지켰습니다. 그런데 무작정 막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인사는 직무시험을 통해서 성적순으로 단행한다는 것을 공표하고 꼭 그대로 했지요. 그랬더니 그것이 청탁을 물리칠 명분이 됐습니다.

-브리핑과 현장확인을 많이 하신 것으로도 유명하신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 그거 참 중요하지요. 직원들 대부분이 직무공부를 안해요. 그런데 세무직은 전문직인데 공부를 안하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은 납세자를 우격다짐으로 대하게 되고 행정불신이 생기고 부정을 저지르게 되고…, 그래서 브리핑을 시키면 브리핑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그게 맞아 떨어졌죠. 한편으로는 브리핑을 시켜보고 잘못하면 꼭 상응한 조치를 취해서 공부분위기를 계속 살려 나갔습니다. 당시 국세청 직원 구성이 여기저기서 급조해 끌어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무공무원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았죠. 그만큼 직무교육이 꼭 필요했고 그것을 인사와  연결시켰던 것이지요. 직무교육을 한 뒤에는 반드시 시험을 치뤄 득점순으로 인사에 반영했습니다. 그때부터 직원들 실력이 쑥쑥 자라는 것이 눈으로 보였습니다.

비전문인 많아 직무교육후 시험성적인사에 꼭 반영
퇴직자들에게 미안, '이해한다'며 다가올땐 무척 감사


-퇴직한 사람 중에는 청장님을 원망한 사람도 있었을 텐데요.
□ 여부 있겠습니까. '74년으로 기억되는데 세무서장급을 한꺼번에 115명인가를 퇴임시킨 일이 있어요. 다 잘못됐다기보다 여러 측면의 상대평가에서 가렸는데 나름대로 억울하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나 봅니다. 일부 퇴직자는 내 뒷조사를 3개월이나 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는 마음 아프고 미안하고 참 많이 괴로웠죠. 그러나 전체 조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훗날 그때 그만뒀던 사람들이 나를 만날 때면 나를 이해한다면서 반겨줄 땐 정말 고맙더군요.

- 공무원을 강제퇴직시키는 문제가 어디 보통 문젭니까. 그것도 한두사람도 아닌 백명 단위로 말입니다. 그래도 예상했던 것보다는 후폭풍이 적었다고 들었습니다. 또 외부에서 국세청으로 들어 올려는 압력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으로도 유명하신데요.
□ 맞아요. 잘했건 못했건 공무원을 강제퇴직 시키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무엇보다 자른 대신 승진자를 모두 내부에서 배출해야 한다는 원칙을 끝까지 실천했습니다. 그러니 직원 결속력이 강해지고…. 사표를 낸 사람들도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한 데다, 외부사람은 일체 안 쓰니까 공감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잘라내고 외부에서 직원 들여오고 하면 명분이 서겠습니까?     

-발탁인사도 많이 하신 걸로 아는데요.
□ 그렇죠. 벌을 강하게 주는 대신 잘하는 사람은 상을 잘 챙겨줘야 합니다. 건설부 장관을 지낸 추경석(秋敬錫) 전 국세청장같은 이는 내가 이리세무서를 순시갔을 때 발탁했습니다. 사람이 참 괜찮아 보였고, 인품으로 봐 시골에서 서울로 끌어 올려도 그분이 남한테 청탁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 것 같아 그랬죠. 이근영(李瑾榮) 전 금감위원장도 예산세무서 순시갔다가 눈에 띄어 서울로 끌어 올린 분입니다. 그분들이 다 훌륭하게 성장해서 국가의 동량으로 크게 쓰임받았다는 것이 흐믓한 일들 중 하나로 기억납니다.

-국세청장 자리는 국가기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 중 하난데 대통령의 특별 당부같은 것은 없었나요.
□ 소신껏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국세청장에 임명된지 4개월쯤 됐을 무렵 대통령께 중요한 보고를 하나 했지요. 바로 조상징수 문제였습니다. '72년 전체 세수규모가 3천143억원이었는데 조상징수 규모가 600억원이 넘었어요. 그러다 보니 당시 정부내에서는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3개 회계년도에 걸쳐 분할처리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놓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만히 점검해 보니 빠져나가는 세금을 잘 거둬들이고 사후관리만 잘하면 '73년 상반기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걸 밀고 나갔지요. 다행히 여러 참모들과 많은 직원들이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해준 덕분에 그해 6월말로 전년도 조상징수분 600억원을 떨어낼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께 보고했더니 박 대통령이 그러시더라구요. '사실 말은 안했지만 마치 내가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그것을 해결했다니 마음이 홀가분하다'면서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역설적으로 당시의 국세행정은 모든 면에서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 국세청이 오늘처럼 발전한 것은 훌륭한 후배들이 모두 열심히 해 준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아마 국가사회 발전을 위한 세무공무원의 역할은 앞으로 계속 커질 것으로 봅니다.

 

고재일 전 국세청장이 조상징수 해결에 대해 보고하자, 당시 朴正熙 대통령이 '내 빚을 갚은 것처럼 홀가분하다'면서 기뻐하더라고 말하고 있다.

秋敬錫·李瑾榮씨등 '쓸만한 사람은 발탁한다' 본보기
국세청장-건설부장관코스, 업무내실 감안 의미있는 일


-주류문제에 메스를 댄 일은 업무성격상 좀처럼 하기 어려운 일이고, 지금도 화제거리가 되곤 하는 데요.
□ 주류문제를 바로잡은 일은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국세청에 와 보니 주류문제는 제조나 유통할 것 없이 온통 문제투성이었지요. 경영주나 종사자들도 당시에는 모두 내노라 하는, 소위 유지나 뿌리깊은 토호세력들이 많았고, 84개 소주제조사를 10여개로 줄이고 유통구조도 획기적으로 개편했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행정력이 동원됐습니다. 외풍을 막느라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죠. 또 양평동에 있는 전산실에 당시 국내에서는 용량이 제일 큰 슈퍼컴퓨터를 들여와 과학세정의 틀을 다졌습니다. 특히 세수를 조(兆)단위 끌어올린 일 등은 지금 생각해도 보람으로 여겨집니다.

-국세청장은 건설부 장관으로 영전하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고정코스처럼 돼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 청장님께서 그 길을 열어 놓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국세청장에서 건설부 장관으로 영전한 사람이 여섯분이나 됩니다.
□ 그렇게 되는군요. 건설부 업무가 세금측면에서도 연관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지 않습니까? 점점 더 연관이 깊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74년인가요…, 부동산관련 과세를 국세 재산세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퍽 잘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국세청장에서 건설부 장관으로 가신 분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훌륭한 분들이죠.       

-후배들을 보면 어떤 말씀을 주로 해주십니까.
□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지요. 한마디로 대견스럽고 흐뭇합니다.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사회가 복잡다기화될수록 국세청의 역할은 더 증대될 겁니다. 바꿔말하면 세무행정은 수용능력을 계속 키우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지요. 직원들도 전문가적인 소양과 지식을 쌓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국세청이 국민을 향해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기분이 좋습니다. 국세청이 그만큼 자신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도 되기 때문이지요. 국세청은 엘리트들이 어느 기관보다 많습니다. 그러기에 희망도 큽니다.


인터뷰 끝에…
고 전 청장은 대담 말미에 '국세청장으로 재임하면서 여러 사람에게 혹독한 고생을 시킨 것같아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또 '여러모로 부족한 면이 많은 나를 잘 따라준 참모·직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일주일에 6일은 수영을 즐길 정도로 건강하다.


대담=서채규 논설위원
정리=강동완 뉴미디어본부 부국장


최삼식 기자 echoi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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