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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3.26. (화)

내국세

'유명무실' 사전 권리구제…美 '협의절차' 국내 도입

과세전적부심사제도, 청구건수 매년 감소…인용률도 낮아 실효성 의문 

사전적 협의절차 도입하면 시간⋅비용 낭비 없어

초기에는 훈령에 규정…보완 거쳐 법률에 근거 마련

 

납세자에 대한 권익침해를 미연에 방지하고 불필요하게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않도록 미국의 ‘협의절차(conference)’와 같은 사전적 권리구제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성욱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계간 세무사(봄호)’에 기고한 ‘미국의 사전적 권리구제제도인 협의절차의 국내 도입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미국의 협의절차를 국내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전적 권리구제제도는 과세전적부심사제도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제도를 활용하는 경우는 2020년 기준 과세예고 통지건수 27만7천235건 가운데 2천546건에 불과하다.

 

특히 과세전적부심사제도 활용 건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는 반면, 사후적 권리구제 장치인 조세심판 청구건수는 2020년 기준 1만5천845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으며 전년 대비 35%나 증가했다.

 

사전 권리구제제도의 이용률은 낮고 사후 권리구제제도의 신청 건수는 매년 증가함에 따라 납세자와 과세관청 모두 시간과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박 교수는 납세자와 과세관청 상호 간에 불필요하게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않도록 미국의 사전적 권리구제인 협의절차를 국내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세에는 소송 전 전심절차 없이 세무조사가 종결되고 납세자가 조사 결과를 인정하는 조세행정청과 납세자 사이의 임의적 협의절차가 있다.

 

미국 납세자들은 이같은 시스템을 활용해 조세불복 이전에 과세당국이 납세자의 부족세액을 결정하기 위한 세무조사 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으며, 국세청 내부의 심사국에서는 합의를 통해 매년 약 85%에서 90%의 조세분쟁을 해결하고 있다.

 

세무조사 종결 후 미국 국세청은 납세자에게 세무조정 사항을 기재해 통지서를 교부한다. 납세자가 소득조정안에 이의가 없다면 일정서식에 서명을 한 후 세액을 추가 납부하면 절차는 종결된다.

 

그러나 납세자가 조사 결과 또는 경정세액에 불복해 서식에 서명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세무조사관과 협의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협의절차는 과세기관과 납세자 사이에 대화를 통해 세액을 확정하려는 목적으로, '30-Day Letter', '90-Day Letter'가 있다.

 

'30-Day Letter'는 국세청에서 세무조사 보고서 사본을 납세자에게 송부하고 수정을 제안하는 30일 통지문을 보내는데, 납세자는 과소신고에 대해 인정할 것인지 또는 항소할 것인지를 결정할 30일의 기간을 갖게 된다. 통지문을 받은 후 30일 내에 협의를 요청해야 하며, 만약 통지문을 수령한 후 세무공무원이 제시하는 부족세액을 인정한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하면 부족세액을 납부해야 하며 조세법원에 재판을 청구할 권리를 포기하게 된다. 또 납세자는 30일 내에 불복심판소에 심사청구를 제기할 수도 있다.

 

'30-Day Letter'를 무시하고 다음의 '90-Day Letter'를 기다릴 수도 있다. 통지를 받은 납세자는 서식에 서명하고 사안을 종결하거나 세금을 내지 않고 조세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납세자는 90일 통지문으로 부족세액 통지를 받기 전까지는 조세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납세자는 조세법원에 신청할 것인지 결정할 90일을 가지며 납세자가 조세법원에 신청서를 제출하는 한 과세와 징수는 금지된다. 90일 동안 조세법원에 신청하지 않는다면 과세관청은 조사내용과 같이 과소신고에 대해 과세하게 되며 10일 이내에 지급되지 않으면 징수절차가 진행된다.

 

박 교수는 미국의 납세자는 과세관청의 조사 및 결정시 과세권자와 대등한 관계에서 부족세액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이는 전심절차 없이 납세자와 과세당국간 사전적 협의를 통해 이뤄지고 상호간의 원만한 조정을 해 양측 모두 조세분쟁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세가 어떻게 부과 징수됐는지 납세자가 전혀 알 수 없고 납세고지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므로 납세자와 과세권자간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행정심판 조정제도와 같이 과세전적부심사제도 이외에 사전적 협의절차를 도입한다면 조세분쟁의 당사자들이 평화롭게 조기에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협의는 우리나라의 행정심판 조정제도와 같이 조세분쟁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개시하고, 과세조정위원회가 중개인이 돼 이뤄져야 하며, 과세전적부심사제도와 마찬가지로 사전적 협의 절차 도입 초기에는 훈령에 근거 규정을 두고 현실에 맞게 제도를 보완한 이후 법률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조세체계가 열거주의 방식으로 미국(포괄주의)과 다르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미국의 이전가격 사전승인제도(APA)의 국내 도입 사례에 비춰봤을 때 충분히 도입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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