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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6.06.11. (목)

오문성 교수의 '라이프 Pick'

정서적 방전을 막는 법: 내 마음의 채널을 돌려라

우리는 하루에도 큰 감정의 기복을 경험할 때가 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가로 스며드는 싱그러운 햇살을 보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가도, 출근길의 사소한 시비나 직장 상사의 툭 던진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마음이 흐려지곤 한다. 기분 좋은 일로 가득할 줄 알았던 하루가 중간에 끼어든 불쾌한 사건 하나로 인해 통째로 오염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불쾌함의 잔재는 끈질기게 머릿속을 맴돌며, 퇴근길을 지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의 온 하루를 잿빛으로 물들여 버린다.

 

사람마다 상처받은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방문을 굳게 닫아걸고 소통을 끊은 채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또 어떤 부부는 사소한 말다툼 끝에 자존심 싸움을 벌이며 일주일, 한 달, 심한 경우 1년이 넘도록 서로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말을 섞지 않기도 한다. 침묵이라는 무기로 상대방을 벌하려 하지만, 사실 그 기간 동안 가장 고통받는 것은 그 부정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품고 서서히 말라가는 자기 자신이다.

 

우리의 기분은 참으로 미묘하고 변화무쌍하다. 마치 거실 깊숙이 들어왔던 햇볕이 구름 한 점에 순간적으로 가려지며 어두운 음지(陰地)가 되는 것처럼, 마음의 풍경도 찰나에 바뀌곤 한다. 내부적으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문득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외부적으로는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깊은 상처를 받아 한참 동안 마음을 다스려야 할 때도 있다. 특히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듯 거의 다 완수했다고 믿었던 일이 마지막 순간에 어그러지거나, 평소에 굳게 믿고 의지했던 사람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가슴이 무너져 내릴 때 우리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친다.

 

문제는 이러한 마음의 상처와 부정적인 변화들이 머릿속에 너무 오래 머문다는 점이다. 머릿속에 둥지를 튼 부정적인 기운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을 낳고,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왜곡시킨다. 평소라면 웃고 넘겼을 타인의 행동도 날카롭게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또 다른 오해와 추가적인 기분 나쁜 상황을 도미노처럼 만들어내고 만다.

 

여기에는 이른바 ‘감정의 관성의 법칙(Emotional Inertia)’이 작용한다. 물리학에서 운동하던 물체가 그 상태를 유지하려 하듯, 우리의 마음도 한번 부정적인 방향으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성질이 있다. 그 늪에서 깨어 나오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나빠진 기분이 스스로 좋은 쪽으로 돌아오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심리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반추(Rumin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반추란 우울하거나 불쾌한 기분이 들 때 그 감정과 원인, 결과를 마음속에서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라고 계속 곱씹는 것이 대표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장면을 마음속에서 반복 재생하며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일에 가까울 때가 많다.

 

심리학자 수전 놀런-혹시마(Susan Nolen-Hoeksema)가 제시한 반응양식이론(Response Styles Theory)에 따르면, 우울하거나 불쾌한 기분이 들 때 그 원인과 결과를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반추는 기분을 풀어주기보다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을 더 오래 지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마음속에서 같은 장면을 계속 재생할수록 감정은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더 고착화되고, 생각은 문제 해결 쪽으로 나아가기보다 자기비난이나 원망으로 흐르기 쉽다.

 

특히 놀런-혹시마와 모로(Morrow)의 연구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원인을 계속 생각하게 하는 경우와, 다른 대상이나 활동으로 주의를 돌리게 하는 경우를 비교했다. 그 결과, 반추를 계속한 사람들은 우울한 기분이 더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 반면, 주의를 다른 곳으로 전환한 사람들은 부정적 기분이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기분 나쁜 일을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이 깊은 생각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마음의 상처를 반복해서 건드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폐해는 바로 ‘정서적 방전’이다. 마치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백그라운드에서 돌아가는 무거운 앱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전되듯, 마음속에 웅크린 부정적 감정은 우리의 정신적·신체적 에너지를 끊임없이 갉아먹는다. 기분 나쁜 상태를 며칠씩 유지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쉽게 지치고, 무기력증에 빠지며, 일상의 생산성마저 바닥을 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지독한 감정의 늪과 관성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가장 현명하고도 명쾌한 처방전은 바로 우리의 감정을 마치 ‘텔레비전의 채널’처럼 다루는 것이다.

 

우리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켤 때를 생각해보자. 리모컨을 누를 때 채널마다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어느 채널에서는 화려한 조명 아래 가수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바로 옆 채널에서는 슬픈 영화가 방영되어 눈물을 자아낸다. 또 다른 채널을 틀면 우리를 웃게 만드는 코미디 방송이나 예능 프로그램이 흘러나온다.

 

우리는 TV 화면에 마음에 들지 않거나 슬픈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화면을 붙잡고 화를 내거나 왜 이런 방송을 하느냐며 밤새도록 투덜대지 않는다. 그저 손에 쥐어진 리모컨의 버튼을 가볍게 ‘딸깍’ 눌러 채널을 바꿀 뿐이다. 이 채널, 저 채널을 돌리면서 지금 이 순간 나의 취향과 필요에 맞는 채널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똑같은 원리로 작동시켜야 한다. 살아가면서 기분 나쁜 일, 억울한 일, 슬픈 일이 생기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수많은 프로그램처럼 우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일이다. 하지만 그 기분을 내 마음이라는 화면에 얼마나 오래 띄워둘 것인가는 상당 부분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즉, 내 마음에 쥐어진 리모컨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다.

 

물론 마음의 채널을 돌린다는 것은 감정을 억지로 부정하거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꾸미라는 뜻이 아니다.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 상처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다르다.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과, 그 화를 하루 종일 품고 있는 것은 다르다. 슬픈 장면이 잠시 마음의 화면에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장면을 밤새 반복 재생할 것인지, 아니면 어느 순간 리모컨을 들어 다른 장면으로 넘어갈 것인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불쾌한 자극이 들어왔을 때 그 채널에 고정되어 밤새도록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고개를 툭 털고 서둘러 즐겁고 생산적인 채널로 돌려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주의전환(Distraction)도 바로 이와 맞닿아 있다. 마음이 불쾌한 생각에 붙잡혀 있을 때, 의식적으로 다른 대상이나 활동으로 주의를 옮기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의 고리를 끊는 중요한 방법이다. 이는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도록 마음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는 살면서 주위 사람들을 평할 때 “그 사람은 참 뒤끝이 없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말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심리적 성숙도를 뜻하는 찬사다. 뒤끝이 없다는 것은 결코 감정이 없다거나 자존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타인과 한두 번 갈등이 있었거나 심하게 다투었을지라도, 그 사건이 지나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의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본래의 건강한 관계를 잘 유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들은 감정의 채널을 전환하는 리모컨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다. 화가 날 때 화를 느끼되, 그 화를 마음속에 오래 머물게 하지 않는다. 서운함을 느끼되, 그 서운함이 자신의 하루 전체를 지배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갈등이 있었더라도 그 장면을 반복해서 재생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다. 지나간 감정은 지나간 채널로 남겨둘 줄 아는 것이다.

 

내가 부정적인 기분을 오래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고 채널을 돌려버리면, 가장 먼저 나 자신의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진다. 그리고 내가 밝은 에너지를 회복하기 시작하면, 갈등 관계에 있던 상대방 역시 긴장을 풀 가능성이 커진다. 부정의 악순환을 끊고 긍정의 선순환을 만드는 열쇠를 내가 먼저 쥐는 셈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의 머릿속에 오래 머물게 허락하지 말자. 그것들이 머릿속에 둥지를 틀고 앉아 내 삶의 소중한 에너지를 방전시키기 전에 의도적으로 채널을 돌려야 한다. 지금 당장 마음이 답답하고 분노가 치민다면,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마음에 대고 조용히 말해보자.

 

“이 채널은 이제 그만 보자.”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좋아하는 책을 펼치거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행동은 모두 마음의 채널을 돌리는 훌륭한 리모컨 버튼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짧은 산책을 하는 것, 책상 위를 정리하는 것,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작은 행동 하나가 마음의 화면을 바꾸고, 바뀐 화면은 다시 감정의 흐름을 바꾼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내 마음의 방, 그 모니터의 제어권은 오직 나에게 있다. 세상이 어떤 장면을 내 앞에 틀어놓을지는 내가 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장면을 얼마나 오래 바라볼지, 언제 채널을 돌릴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감정의 방전을 막는 방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내 마음속 리모컨을 다시 손에 쥐고 더 이상 나를 소모시키는 채널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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