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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6.09.11. (금)

정운기의 '대한민국 관세의 선택'

관세율을 세수 중심에서 산업·공급망 정책으로 전환하자

무엇에 얼마의 관세를 매길 것인가가 국가전략이 되어야 한다

 

관세율은 오랫동안 세금을 거두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어 왔다. 수입 물품에 일정한 세율을 적용하고, 이를 통해 국가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관세의 가장 전통적인 기능이었다.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기능도 있었지만, 자유무역협정(FTA)이 확대되고 평균 관세율이 낮아지면서 관세의 산업 정책적 의미는 점차 약해졌다.

 

그러나 경제 안보 시대에는 관세율을 다시 보아야 한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관세를 얼마나 걷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물품에는 관세를 낮추고, 어떤 물품에는 관세를 유지하거나 높여야 하는가?”이다.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 의약품, 에너지, 식량처럼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결정적인 물품의 공급이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무역 문제가 아니다. 공급이 중단되면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경제 안보의 문제다.

 

따라서 앞으로의 관세율 정책은 세수 중심에서 벗어나 산업·공급망·경제 안보를 함께 고려하는 전략적 관세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관세율표를 보면 그 나라의 전략이 보여야 한다. 관세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원료의 관세를 낮추면 그 원료를 사용하는 국내 기업의 생산비가 낮아진다. 반대로 완제품의 관세를 높이면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효과가 생긴다.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핵심 품목의 수입 선을 다변화하도록 관세 제도를 설계할 수도 있다.

 

결국 관세율은 기업의 투자와 생산, 조달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경제 안보 시대에는 여기에 하나의 기능이 더 추가된다. 바로 공급망을 관리하는 기능이다.

 

코로나19와 미·중 전략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면서 세계는 값싼 물품을 안정적으로 수입할 수 있다는 전제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평상시에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 경제의 약점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EU를 비롯한 주요국은 관세를 보조금, 수출통제, 투자규제, 원산지 규정, 정부조달 등과 결합해 산업과 공급망을 재편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도 관세율표를 단순한 세율표가 아니라 국가의 산업·공급망 전략을 담는 정책지도로 바꿀 필요가 있다.

 

원재료에는 낮은 관세, 완제품에는 높은 관세라는 공식도 다시 보자. 우리의 관세율 체계는 오랫동안 산업 발전 단계에 맞추어 원재료에는 낮은 관세를 적용하고 완제품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산업화 과정에서는 상당히 합리적인 정책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글로벌 공급망은 훨씬 복잡하다. 같은 원재료라도 국내 생산이 필요한 전략물자인지,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일반 원료인지에 따라 정책적 의미가 다르다. 중간재 역시 단순한 부품인지, 반도체·배터리·첨단기계처럼 산업 전체의 생산을 좌우하는 핵심 품목인지에 따라 다르게 보아야 한다.

 

따라서 품목을 단순히 원재료·중간재·완제품으로 구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는 전략적 중요도와 공급망 위험도라는 새로운 기준을 추가해야 한다.

 

예컨대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고, 공급국이 한 두 나라에 집중되어 있으며, 국내 대체생산이 어렵고, 공급이 중단되면 주요 산업에 큰 피해가 발생하는 물품이라면, 일반 물품과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국내 산업기반을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전략 품목에 대해서는 단순히 소비자 가격을 낮추겠다는 이유만으로 관세를 계속 낮추는 것이 국가 전체의 이익인지 다시 따져보아야 한다.

 

싼 수입품이 항상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 가격이 낮아져도 국내 생산 기반이 사라지고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진다면 장기적으로 훨씬 큰 비용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할당관세도 ‘물가 대책’에서 ‘공급망 대책’으로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관세율을 정책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할당관세다. 그동안 할당관세는 물가안정이나 산업용 원재료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기본세율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어 왔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거나 특정 물품의 국내 가격이 크게 오르면 관세를 낮춰 수입 가격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 기능은 앞으로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 안보 시대의 할당관세는 한 단계 더 발전해야 한다. 단순히 “가격이 올랐으니, 관세를 낮춘다”라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가적으로 어떤 공급망을 확보해야 하는가?”를 기준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핵심 광물이나 첨단산업 소재·부품의 공급망을 새로운 국가로 다변화하려 할 때 관세를 일정 기간 낮추어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지만, 전략산업에 필요한 장비나 소재에 대해서도 관세정책을 투자정책과 연계할 수 있다.

 

즉, 할당관세를 단순한 물가조절 장치가 아니라 공급망 전환을 촉진하는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반대로 특정 국가의 과잉생산이나 비정상적으로 낮은 가격의 수입으로 국내 핵심 산업기반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면 관세정책과 무역구제제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핵심 공급망 품목 관세 지도’를 만들자.

 

우선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바이오·의약품, 방위산업, 에너지, 식량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을 선정한다. 그다음 해당 산업별로 핵심 원료와 소재·부품·장비를 찾아내고 각 품목의 수입국, 수입의존도, 특정국 집중도, 국내 생산능력, 대체 가능성 등을 분석한다.

 

여기에 현행 기본관세율, WTO 양허세율, FTA 협정세율, 할당관세 및 무역구제조치 등을 겹쳐 놓으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공급망 위험은 큰데 관세정책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품목, 반대로 국내 조달이 어려운데 불필요한 관세 부담이 남아 있는 품목이 드러날 수 있다.

 

이것을 매년 점검하고 산업정책과 연계한다면 관세율 정책의 성격 자체가 달라진다. 관세율을 결정한 뒤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산업과 공급망을 먼저 분석한 뒤 그 목적에 맞게 관세율을 설계하는 것이다.

 

재정경제부만의 관세율 정책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관세율을 결정하는 정부의 정책 구조도 달라져야 한다. 관세는 조세이기 때문에 재정경제부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경제 안보 시대의 관세는 세금인 동시에 산업·통상·공급망 정책이다.

 

따라서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산업 관련 부처와 관세청 등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분석하는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관세청에는 다른 부처가 쉽게 확보하기 어려운 정보가 있다.

 

어떤 기업이 어느 국가에서 어떤 물품을 얼마나 수입하는지, 특정 품목의 수입이 어느 국가에 집중되고 있는지, 원산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을 통관데이터를 통해 비교적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를 단순한 통관통계로 끝내서는 안 된다.

 

관세청의 수출입 데이터를 활용하여 공급망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그 결과를 관세율과 산업정책에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관세행정이 경제 안보의 최전선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관세율을 매년 조정하는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현재의 관세율 조정은 기업과 업계의 건의를 받아 개별 품목의 필요성을 검토하는 방식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방식도 필요하지만, 앞으로는 정부가 먼저 전략 품목을 찾아내는 적극적인 방식이 병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매년 공급망 위험도가 높은 일정 수의 핵심 품목을 선정하여 관세율의 적정성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검토 기준도 명확해야 한다.

 

수입의존도와 특정국 집중도, 국내 생산능력, 대체 공급국 존재 여부, 공급 중단 시 산업적 파급효과, 국내 기업의 비용 부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관세 인하, 할당관세 적용, 세율 유지, 국내 생산지원 또는 무역구제조치와의 연계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관세율 정책은 “기업의 요청에 대응하는 수동적 제도”에서 “국가가 공급망을 관리하는 능동적 정책”으로 바뀐다.

 

관세를 높이는 것만이 경제 안보는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경제 안보를 강조한다고 해서 관세를 무조건 높이자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무역으로 성장한 국가다. 원료와 중간재를 수입하여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세계시장에 수출하는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과도한 관세는 오히려 우리 기업의 생산비를 높이고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따라서 한국형 관세정책의 핵심은 보호냐 개방이냐를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필요한 곳에는 개방하고, 지켜야 할 곳에는 방어하며, 위험한 공급망은 분산하고, 국내에 필요한 생산 기반은 유지하는 것이다.

 

지난 제4회에서 제안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사이의 ‘제3의 길’이 관세율 정책에서는 바로 이러한 형태로 구체화될 수 있다.

 

이제 관세율에도 국가전략을 담아야 한다

 

경제 안보 시대에는 세율 1~2%의 차이도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 차이가 기업의 원료 조달처를 바꾸고, 투자를 유도하며, 국내 생산을 유지하고, 새로운 공급망을 만드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관세율을 결정할 때 첫 번째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이 관세로 세금이 얼마나 걷히는가?”보다 “이 관세가 우리 산업과 공급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이미 세계적인 제조업 기반과 촘촘한 FTA 네트워크, 방대한 수출입 통관데이터가 있다. 이를 관세율 정책과 결합한다면 우리도 충분히 한국형 경제 안보 관세 체계를 만들 수 있다.

 

필자는 이를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관세청은 국가 핵심 산업별로 ‘핵심 공급망 품목 관세 지도’를 만들자.

둘째, 할당관세를 물가 안정 중심에서 산업·공급망 안정 수단으로 확대하자.

셋째, 관세청의 통관데이터와 산업정책을 연결하여 매년 전략 품목의 관세율을 점검하는 범정부 체계를 만들자.

 

관세율표는 단순한 세금 표가 아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관세율표를 펼쳤을 때 우리가 어떤 산업을 키우고, 어떤 공급망을 확보하며, 어떤 경제적 위험에 대비하려 하는지가 보여야 한다. 그것이 경제 안보 시대에 필요한 관세율 정책의 대전환이다.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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