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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6.10.08. (목)

오문성 교수의 '라이프 Pick'

말은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말했느냐보다 무슨 말을 했느냐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말투가 불편하면 사람들은 말의 내용에 집중하지 못한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반말로 이야기하면 상대방은 그 내용에 동의할 것인지 판단하기 전에 “왜 나에게 반말을 하지?”라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말의 내용이 말투에 가려지는 것이다.

 

반말이 언제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 오랫동안 허물없이 지낸 선후배 사이에서는 반말이 친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낸 친구를 나이가 들었다고 갑자기 존댓말로 대한다면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 반말이 이미 두 사람 사이에 합의된 언어라면 정겨운 관계의 표현이 된다.

 

문제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규정하고 반말을 시작하는 경우다. 말하는 사람은 친근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은 자신이 가볍게 취급되거나 낮은 사람으로 분류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특히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 반말을 해도 된다”는 생각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나이는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 상대방의 인격적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동의 없이 말을 낮추면, 말하는 사람은 위에 있고 듣는 사람은 아래에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친한 관계라고 해서 반드시 반말까지 편안한 것은 아니다. 말하는 사람은 반말을 사용할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서로 친하다고 느끼더라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말투는 다를 수 있다. 반말이 편안한 대화가 되려면 관계의 친밀도뿐 아니라 말투에 대한 생각도 서로 맞아야 한다. 어느 한쪽만 편한 말투는 친밀함이 아니라 일방적인 관계 설정이다.

 

반말은 우리가 언어를 배울 때 자연스럽게 익히는 어법이다. 어린아이는 상대방의 나이와 지위, 관계의 성격을 세밀하게 판단하지 않고 말한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회적 거리를 조정하기 위해 존댓말을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 존댓말은 단순히 문장을 길게 만드는 복잡한 어법이 아니라, 상대방을 독립된 인격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성숙한 의사소통 방식이다.

 

그래서 필자는 가능한 한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상대방의 나이와 지위, 친밀도를 가늠해 말투를 선택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정신적 에너지가 든다. 누구에게는 반말을 하고 누구에게는 존댓말을 하려면 먼저 상대방을 분류하고, 자신이 말을 놓아도 되는 위치에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 판단이 항상 정확한 것도 아니다. 자신은 충분히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학교 선후배라는 이유로 말을 놓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대방은 자주 만난 사이도 아닌데 갑자기 반말을 듣는 것을 불편해할 수 있다. 예전에 친하게 지낸 후배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 사회에서 다시 만났다면 관계는 달라졌을 수 있다. 과거의 친분이 현재의 반말을 당연하게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사용하면 이러한 판단을 거의 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방의 나이와 직업,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같은 원칙을 적용하면 된다. 상대방이 어떤 말투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존댓말로 시작하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줄어든다. 존댓말은 대화의 ‘기본 설정’으로 삼기에 가장 안전한 말투다.

 

존댓말을 사용하면 말의 내용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과의 위아래를 따지거나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는 데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듣는 사람도 자신이 무시당했는지를 따져보지 않고 발언의 취지를 생각할 수 있다. 존댓말은 대화에 거리를 만드는 장벽이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여주는 완충장치다.

 

존댓말을 쓴다고 반드시 격식을 차려야 하거나 가까운 관계를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는 딱딱한 높임말이 있는가 하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부드럽고 편안한 존댓말도 있다. “식사하셨습니까”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밥 드셨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존댓말을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따뜻하고 유쾌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오히려 반말로 바꾸었을 때 관계가 더 어색해지는 경우도 있다. 직장에서 존댓말을 사용하며 편안하게 지내던 한 동년배가 어느 날 서로 말을 놓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필자는 내키지 않았지만 나이도 같고 친하게 지내던 터라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이후 대화가 줄어들었다. 성인이 된 뒤 직장에서 만난 동료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그다지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을 놓으면 무조건 가까워진다는 생각과 달리, 두 사람에게 익숙했던 언어적 거리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오히려 관계가 불편해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선후배 사이에서도 반말보다 존중을 담은 편안한 존댓말이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말에는 반말과 격식을 갖춘 딱딱한 존댓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다양한 표현이 있다. 친근함은 반드시 말끝을 낮추어야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고, 의견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으며, 필요할 때 배려하는 태도가 말투보다 더 깊은 친밀감을 만든다.

 

물론 서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반말은 정겨운 관계의 표현이 될 수 있다. 다만 무엇이 편한지를 어느 한쪽이 혼자 결정할 수는 없다. 말을 놓으려면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존댓말을 사용하는 데에는 별도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상대방이 어느 말투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지 확실하지 않다면 존댓말로 대화하는 편이 좋다.

 

때로는 나이가 어리거나 직급이 낮은 사람이 예의상 “말씀 편하게 하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을 반말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곧바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상대방이 실제로 반말을 편안해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존댓말을 유지하는 편이 좋다.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편합니다”라고 설명하면 서로의 방식도 자연스럽게 존중할 수 있다.

 

존댓말의 장점은 결국 단순함에 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위아래를 판단하거나 상대방의 반응을 추측할 필요가 없다. 누구에게나 같은 존중을 표시하면 말투를 선택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줄어든다. 그렇게 아낀 에너지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말의 목적은 사람의 서열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다. 말투가 내용보다 앞에 나서면 대화는 쉽게 빗나간다. 반말을 들은 사람의 마음속에 “왜 나에게 반말을 하지?”라는 질문이 생기는 순간, 그다음에 이어지는 좋은 말도 온전히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반말이 나쁜 말이고 존댓말이 언제나 좋은 말이라는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반말에 대한 상대방의 동의와 편안함을 확인하기 어려운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에서는 존댓말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선택이다. 존댓말을 기본값으로 삼고, 반말은 서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에서 사용하는 것이 성숙한 대화의 방식이다.

 

존댓말은 나를 낮추는 말이 아니다. 상대방을 높임으로써 대화 자체의 품격을 높이는 말이다.

누구를 만나든 먼저 존댓말을 쓰면 상대방도 말투보다 대화의 내용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존댓말을 쓴다. 그것이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스스로도 가장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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