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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6.10.08. (목)

오문성 교수의 '라이프 Pick'

우리는 살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이 많아서 힘든 경우도 있지만, 실제 일의 양보다 머릿속에서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힘들 때도 적지 않다. 어떤 결정을 하나 내려도 인간관계, 주변의 평가, 앞으로 생길 일, 잘못되었을 때의 책임까지 모두 생각한다. 변수가 많아질수록 선택은 어려워지고 마음은 무거워진다.

 

수학 문제도 변수가 많으면 풀기 어렵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든 변수를 한꺼번에 붙잡기보다 먼저 줄여야 한다. 특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결혼식 주례를 섰다. 주례를 맡으면 결혼 전에 예비 신랑과 신부를 미리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둘 중 한 사람은 오래 알고 지낸 제자인 경우가 많지만, 다른 한 사람은 처음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혼식장에서 하는 주례사에는 담기 어려워도 두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잘하려고 하지 마라. 변수를 줄여라.”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누구나 잘하고 싶어 한다. 특히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는 사람은 배우자의 부모와 형제들에게도 잘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래서 신혼 초에는 힘들거나 불편한 일이 있어도 참고 받아들이려 한다. 자신의 기준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요구조차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왜 내가 이것까지 해야 하지’라는 불만이 쌓일 수 있다. 서로 다른 가정환경과 가족문화의 차이도 더 크게 느껴진다. 배우자에게 서운함을 이야기했는데 상대방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어느 한쪽을 두둔하면 가족 문제는 결국 부부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물론 모든 가정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가족문화도 다르다. 바로 여기에 ‘변수’의 문제가 있다. 결혼을 하면 배우자뿐 아니라 배우자의 부모, 형제자매, 친척까지 관계의 범위가 넓어진다. 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맞추고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 한다면 너무 많은 변수를 한꺼번에 떠안게 된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아무리 내가 잘해도 상대방이 반드시 나를 좋아한다는 보장은 없다. 상대방의 성격을 바꾸기도 어렵고 오랫동안 형성된 가족문화도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것까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거기서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그래서 필자는 예비 신랑과 신부에게 결혼생활을 시작할 때 우선 생각해야 할 변수는 신랑과 신부 두 사람뿐이라고 말해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부 사이의 애정과 신뢰를 단단히 만드는 것이다. 처음부터 시댁이나 처가의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게 잘하려 하지 말라고 한다. 힘든 것은 힘들다고 하고,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솔직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무리해서 잘하려다 나중에 감정이 폭발하는 것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와 한계를 처음부터 알리는 편이 낫다.

 

무엇보다 배우자와 많이 소통해야 한다. 무엇이 불편했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한지를 서로 알아가야 한다.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적응은 시댁이나 처가에 대한 적응 이전에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적응하는 것이다.

 

부부 사이가 좋으면 많은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린다. 배우자를 사랑하고 신뢰하면 그 배우자가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에게도 자연스럽게 좋은 감정을 갖기 쉽다. 순서가 중요하다. 부부가 중심에 있고 그 관계의 온기가 부모와 형제, 친척에게 퍼져나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결국 변수의 순서를 정해야 한다. 내가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배우자와의 관계다. 대화하고 배려하고 노력하는 것은 두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시부모나 장인·장모의 생각, 형제들의 성격, 친척들의 평가는 내가 통제하기 어렵다.

 

이런 원리는 부부관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살면서 한때 사이가 좋았다가 관계가 틀어진 두 사람 사이에서 여러 차례 중재해 본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아끼는 사람들이면 어떻게든 오해를 풀고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게 해주고 싶었다. 양쪽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입장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노력은 대부분 허사였다. 당사자들의 마음속에는 제3자가 알 수 없는 오래된 감정과 기억이 있었고, 내가 보기에는 작은 오해라도 당사자에게는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제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화해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고 싶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 자체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오해가 있다면 풀도록 돕고, 상대방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권하는 정도다. 마음을 열 것인지, 용서할 것인지, 관계를 다시 이어갈 것인지는 결국 당사자들의 몫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니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모든 관계를 내가 고쳐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남의 갈등까지 나의 짐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돕고 그다음은 당사자에게 맡기는 것, 이것 역시 변수를 줄이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나의 변수로 끌어안지 않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하면 힘들어진다. 상사에게 인정받고, 동료와 잘 지내고,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고, 승진과 보수와 평판까지 모두 신경 쓰기 시작하면 변수는 끝없이 늘어난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맡은 일을 제대로 하고, 약속을 지키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일이다. 누가 나를 좋아할지, 인사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다.

 

삶의 많은 문제에서 우리는 변수가 많아서 힘든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변수까지 통제하려 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을 때 두 가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 가운데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가장 중요한 변수는 무엇인가.’

 

이 두 질문만으로도 복잡했던 문제는 상당히 단순해진다.

 

삶은 본래 복잡하다. 가족도, 직장도, 인간관계도 많은 사람이 얽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잘하려는 사람일수록 더 쉽게 지치고 실망한다. 모든 사람에게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가장 중요한 관계부터 잘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제대로 하면 된다. 결혼생활이라면 먼저 두 사람이 좋은 부부가 되는 데 집중하고, 직장이라면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인간관계라면 내가 먼저 진심을 다하되 상대방의 마음까지 내 뜻대로 바꾸려 하지 않아야 한다.

 

변수를 줄인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할 것을 덜어내는 것이 아니다. 여러 변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 거기에 집중하는 일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내려놓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가장 중요한 것에 힘을 쓰는 것이다.

 

문제가 너무 복잡해 보일 때는 해결책을 찾기 전에 먼저 변수를 줄여볼 필요가 있다. 삶의 문제는 모든 변수를 해결해야 풀리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변수를 줄이는 순간, 비로소 해결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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