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세탁을 막는 것이 대한민국 수출의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 세계 무역 질서가 자유무역 중심에서 경제 안보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바로 우회 수출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특정 국가나 기업에 관세·수출통제·무역구제 조치를 강화한다고 해서 해당 물품의 교역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높은 관세와 규제를 피하려고 제3국을 경유하거나, 제3국에서 일부 가공한 뒤 그 나라 제품으로 원산지를 바꾸어 수출하려는 유인이 커진다. 대한민국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제조업 기반과 항만·공항 등 물류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으며, 미국·EU를 비롯한 주요 시장과 광범위한 FTA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이러한 장점이 역설적으로 우회 수출에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제 우회 수출 문제를 일부 기업의 원산지 위반이나 단순한 통관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수출 전체의 신뢰를 좌우하는 경제 안보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관세가 높아질수록 우회 수출의 유혹도 커진다. 과거에는 관세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FTA가 확대되면서 원산지의 중요성이 주로 특혜관세 적용 여부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관세를 걷는 세관을 넘어 국가의 경제 안보를 지키는 세관으로 많은 국민은 세관을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밀수품을 단속하며, 여행자의 휴대품을 검사하는 기관으로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관세의 부과·징수와 밀수단속은 세관의 가장 오래된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보면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오늘날 세관의 역할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국경을 넘는 것은 상품만이 아니다. 상품과 함께 기술과 자본, 데이터가 움직이고 공급망이 연결된다. 마약과 총기, 위조 상품과 위해물품도 국경을 넘는다.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공급망 의존,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입, 원산지 세탁도 국가 경제에 새로운 위험이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제와 공급망의 국경 관리가 흔들리면 국가안보의 한 축도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세관도 달라져야 한다. 세관을 단순한 ‘징세 기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제 국경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세관의 출발은 관세였지만 역할은 이미 달라졌다 근대 세관이 만들어진 중요한 이유 중 하
관세 혜택을 판정하던 원산지에서 공급망과 경제 국적을 판단하는 원산지로 우리에게 ‘원산지’라는 말은 오랫동안 자유무역협정(FTA)과 함께 사용됐다. 한국산으로 인정받으면 상대국에서 낮은 협정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고, 수입 물품이 협정 상대국의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면 우리나라에서도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기업에게 원산지는 주로 “FTA 특혜관세를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였으며, 정부의 원산지 정책 역시 “FTA 활용을 지원하고 원산지 위반을 검증·단속”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경제 안보 시대가 되면서 원산지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이제 세계는 완제품의 생산국만 묻지 않는다. 어느 나라의 원료를 사용했는지, 핵심 부품은 어디에서 생산되었는지, 핵심 공정은 어디에서 이루어졌는지, 어느 국가와 기업이 공급망을 지배하고 있는지까지 따지기 시작했다. FTA 시대의 원산지가 ‘관세 혜택을 위한 원산지’였다면, 경제 안보 시대의 원산지는 원산지 정보를 ‘공급망을 판단하는 정보’로까지 확대해서 볼 필요가 있다. FTA 원산지는 '상품의 법적 국적'을 판정했다 FTA에서 원산지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의 물품이라고 해서 모
무엇에 얼마의 관세를 매길 것인가가 국가전략이 되어야 한다 관세율은 오랫동안 세금을 거두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어 왔다. 수입 물품에 일정한 세율을 적용하고, 이를 통해 국가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관세의 가장 전통적인 기능이었다.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기능도 있었지만, 자유무역협정(FTA)이 확대되고 평균 관세율이 낮아지면서 관세의 산업 정책적 의미는 점차 약해졌다. 그러나 경제 안보 시대에는 관세율을 다시 보아야 한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관세를 얼마나 걷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물품에는 관세를 낮추고, 어떤 물품에는 관세를 유지하거나 높여야 하는가?”이다.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 의약품, 에너지, 식량처럼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결정적인 물품의 공급이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무역 문제가 아니다. 공급이 중단되면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경제 안보의 문제다. 따라서 앞으로의 관세율 정책은 세수 중심에서 벗어나 산업·공급망·경제 안보를 함께 고려하는 전략적 관세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관세율표를 보면 그 나라의 전략이 보여야 한다. 관세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원료의 관세를 낮추면 그 원료를 사용하는 국내 기업의
개방은 시키되, 국익과 공급망까지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 세계 무역 질서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미국은 관세를 제조업과 일자리, 공급망과 국가안보를 지키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은 관세뿐 아니라 수출통제와 산업 지원, 핵심 광물 정책을 결합하고 있으며, EU도 경제 안보와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며 통상·산업정책을 다시 짜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자유무역을 계속 확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세계적인 보호무역의 흐름에 맞추어 우리도 관세장벽을 높여야 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자유무역이나 보호무역이냐의 양자택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제3의 길이 필요하다. 개방의 이익은 최대한 살리되 국가적으로 지켜야 할 산업과 공급망은 전략적으로 지키는 길이다. 이를 ‘전략적 자유무역’이라고 부르고 싶다. 자유무역은 대한민국 성장의 토대였다. 대한민국은 자유무역을 포기할 수 없는 나라다. 우리는 자원이 부족하고 국내시장이 상대적으로 작다. 원유와 가스, 광물과 원재료를 해외에서 들여와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세계시장에 수출하면서 성장했다. WTO 체제와 FTA 확대는 우리 기업의 시장을 세계로 넓혔고, 관세 인하는 기업이 더
미국이 관세를 국가전략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세계 무역 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제 관세는 단순히 수입품에 세금을 매기는 제도가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 생산했는지, 핵심 원료를 어디에서 조달했는지, 어떤 기업과 거래했는지까지 따지는 경제 안보의 수단이 되고 있다. 문제는 미국만 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과 유럽연합(EU), ASEAN도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이들의 대응반식은 서로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관세 문제를 더 이상 관세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관세에는 관세’에서 자원·공급망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과 가장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미·중 통상 갈등 초기에는 양국이 서로 관세를 올리는 전형적인 보복관세 전쟁의 모습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의 대응 수단은 훨씬 다양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희토류 등 전략물자의 수출통제다. 중국은 2025년 4월 일부 중·중희토류 관련 품목에 대해 수출통제를 시행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국가안보와 국제적 비확산 의무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이 가진 전략적 자산이다. 중국은 첨단산업에
관세가 다시 세계정치의 전면에 섰다. 지금 미국이 사용하는 관세는 단순한 세금도,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전통적 무역장벽도 아니다. 제조업을 되살리고 공급망을 재편하며, 상대국의 정책 변화를 끌어내고, 필요하면 외교·안보 문제까지 압박하는 국가전략의 수단이 됐다. 미국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한국은 관세율 몇 퍼센트의 등락에 매달리다 더 큰 흐름을 놓칠 수 있다. 관세는 더 이상 '무역정책의 끝단'이 아니다 미국의 관세정책이 바뀐 출발점은 세계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미국은 오랫동안 값싼 수입품, 효율적인 글로벌 분업, 낮은 관세가 소비자 후생과 기업 경쟁력을 높인다고 보았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 제조업 공동화 논쟁, 코로나19 때 드러난 공급망 취약성,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에너지·원자재 불안, 첨단기술 패권 경쟁을 거치면서 판단이 달라졌다.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1기 때의 대중국 301조 관세와 철강·알루미늄 232조 조치는 그 전환의 시작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도 대중국 관세의 상당 부분을 유지했고 반도체·배터리·핵심광물 등 전략산업에 대한 산업정책을 강화했다. 트럼프 2기 들어서는 이 흐름이
정운기의 ‘대한민국 관세의 선택’을 시작하며 세계의 관세가 달라지고 있다. 한때 관세는 자유무역의 확대와 함께 낮춰야 할 장벽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경제 안보 시대를 맞아 관세는 다시 국가전략의 전면에 등장했다. 미국은 관세를 산업과 일자리, 공급망과 안보를 지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중국과 EU도 자국 산업과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수출로 성장해 온 대한민국에는 어려운 선택의 시간이다. 무조건적인 자유무역도, 문을 닫는 보호무역도 우리의 답이 될 수 없다. 무엇을 개방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지, 어떤 산업과 공급망을 전략적으로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사)관세동우회 회장이자 관세법인 에이원 회장인 정운기의 ‘대한민국 관세의 선택’은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관세를 세금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통상·공급망·안보를 연결하는 국가전략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 관세전쟁의 변화에서부터 원산지, 우회 수출, 해외직구, AI 세관과 관세사의 역할까지 대한민국의 경제 국경을 하나씩 점검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의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경제 안보 시대, 대한민국은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