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고 정착, 조세소송 급증으로…입증책임 분배 재조정해야

2024.04.18 14:56:45

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 납세자에 입증책임 지워야

노미리 교수, 과세관청에 과도한 입증책임 편중 지적

입법 통해 납세의무자 협력의무·입증책임 연계 바람직

늦게 제출한 자료 입증방법 제한방안 도입도

 

신고납세방식의 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은 납세자에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종래 입증책임 분배에 관한 법률요건분류설이 과세관청에 입증책임을 과도하게 편중시키는 문제점이 있고, 과거와 달리 전자신고제도가 정착됐고, 조세소송사건 수가 급증했으므로 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은 입증책임 분배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노미리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8일 법무법인 대륙아주 1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국세법학회 제148차 학술대회에서 조세소송에서 입증책임 분배방안에 관한 연구-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중심으로-발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노 교수는 "경정청구제도의 도입과 신고납세 세목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과거에는 부과처분취소소송이 주된 비중을 차지했는데, 지금은 과거와 달리 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그 원인으로 경정청구제도가 여러 차례 걸쳐 개정되면서 경정청구기간이 연장되고 경정청구권자가 확대된 점을 꼽았다.

 

문제는 국세기본법에 조세소송에서 납세의무자와 과세관청 중 어느 쪽이 입증책임을 부담해야 하는지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과세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에 있어 과세요건이 되는 사실에 관하여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과세관청에 입증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노 교수는 "종래 입증책임 분배에 관한 법률요건분류설이 과세관청에 입증책임을 과도하게 편중시키는 문제점이 있다"고 봤다.

 

특히 "신고납세방식의 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의 경우에는 과세자료의 대부분이 납세의무자의 지배영역 내에 있으므로 증거와의 거리가 가까운 점을 고려해 납세의무자에게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달리 전자신고제도가 정착됐고, 조세소송사건 수가 급증했으므로 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은 입증책임 분배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원의 해석에 의해 입증책임 분배를 조정하는 방안은 엇갈린 판결이 나올 수 있는 등 한계가 있는 만큼 입법을 통해 입증책임 분배를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입법을 통한 입증책임 분배방안으로는 입증책임 분배규정을 신설하는 방안보다 납세의무자의 협력의무와 입증책임을 연계시키는 방안에 힘을 실었다.

 

그는 "신고납세방식 세목의 경우 납세의무자에게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누적된 판례의 태도에 반하는 입법을 하는 것은 무리인 측면이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납세의무자에게 입증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납세의무자의 협력의무와 입증책임을 연계시키는 방안으로는 △자료제출의무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 △일정기한까지 자료제출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과세자료로 활용하지 않는 방안 △시기에 늦게 제출한 자료에 대한 입증방법을 제한하는 방안을 꼽았다. 

 

그는 실효성 확보를 위해 자료제출의무 위반 과태료 상한을 점차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현재 국조법에 규정돼 있는 일정기한까지 자료제출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과세자료로 활용하지 않는 방안을 국세기본법에 규정해 경각심을 높이는 방안도 제언했다. 

 

특히 시기에 늦게 제출한 자료에 대한 입증방법을 제한하는 방안을 도입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세기본법에 이같은 방안을 도입한다면 납세의무자가 증거를 지연해서 제출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가산세 위험 회피·조세행정 작용 협조 위해
신고·납부 직후 바로 경정청구하는 납세자 늘어
자율적 협조, 입증책임 더 불리하지 않도록 논의 필요

 

이날 학술대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신중론을 폈다. 

 

허승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부장판사는 "신고·납세방식의 세금 관련 과세자료가 납세자의 지배영역에 있음을 전제한다면, 입법을 통해 증액경정처분에 대한 경정청구와 신고납세에 대한 경정청구의 증명책임을 달리 취급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현행 조세소송구조에 의할 때 다소 어색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예를 들어 납세자가 100원으로 법인세를 신고·납부한 후 과다신고 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50원을 감액해 달라는 경정청구를 했으나, 과세관청이 오히려 증액경정사유가 있다고 150원으로 증액경정처분을 하는 경우다.

 

그는 "이 경우 납세자는 증액경정처분을 항고소송으로 다퉈야 하고, 그 항고소송에서 과다신고사유 및 증액경정사유를 모두 다투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세관청이 증액경정처분을 하지 않았다면 납세자에게 있었을 과다신고사유의 존부에 대한 증명책임이 과세관청의 증액경정처분으로 인해 과세관청이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문제 제기했다. 

 

이와 함께 단순히 최초 신고와 다른 내용의 경정청구를 했다는 이유로 경정사유의 증명책임을 납세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국세기본법 제81조의3의 취지에 반할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던졌다. 

 

그는 "신고에 대한 경정청구에 대한 증명책임을 과세관청에 부담시킴으로써 생기는 구체적 폐해가 있다면, 단순히 처음 신고와 다른 내용의 경정청구를 한다는 이유로 증명책임을 전환시키는 것보다 구체적 폐해에 따라 추계과세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등 조세실체법 개정으로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국민의 권익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나은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강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최근 납세자들이 가산세 위험을 피하고 조세행정작용에 협조한다는 취지에서 최대한 불리하게 보수적으로 신고·납부한 뒤, 신고·납부 직후 곧바로 경정청구를 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자발적으로 조세행정작용에 협조하고 경정청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납세자에게 세무조사 이후 조세부과처분을 받게 되는 경우보다 입증책임에서 더 불리한 취급을 받지 않도록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자료제출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의 논의에서는 과세당국의 자료제출 거부에 대한 제재도 함께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영란 미국 예시바대 교수는 "미국은 조세소송의 경우 납세자의 입증책임이 상당히 무겁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어느 포럼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소송법리 및 세세한 입증책임 분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소송실무에서 사안 별로 어느 법원에서 절차를 시작할지를 상당히 전략적으로 고민한다는 것.

 

김 교수는 또한 "미국 정책 논의방향은 납세자의 입증책임을 경감해 줘야 한다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리 기자 kyr@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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