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한 축제의 연속이기를"
"나뭇가지로 햇볕을 가린 멸치상자에는 갓 잡은 멸치가 펄떡거린다. 때맞추어 어머니는 참새미 물로 횟감을 장만하시고, 광속에 아껴 두었던 농주를 꺼내 오신다. 도리깨질 일꾼들이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잡고 앉는다. 치자나무 그늘 아래에는 멸치회 잔치가 펼쳐진다(보리누름 축제 중에서)."
박인목 세무법인 정담 대표세무사가 2년여만에 수필집 '보리누름 축제'를 펴냈다. '어느 행복한 날의 오후'(2018년), 거기 행복이 있었네'(2020년), 갈모봉 산들바람(2022년)에 이어 네 번째다.
박 세무사는 국세청에서 38년간 근무하다 중부지방국세청 조사2국장을 마지막으로 명예퇴직하고, 현재는 세무법인 정담 회장으로 납세자 권익보호에 매진하고 있다. 2017년 현대수필 가을호에 '마지막 여행'으로 신인상을 받고 수필가로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책을 펼치면 햇살이 하얗게 부서진 조각들이 강물에 흩어져 빛나는 윤슬이 떠오른다. 숱한 조각으로 남겨진 삶의 여정과 내면의 이야기가 윤슬처럼 반짝인다.
인생의 항해에서 잠시 닻을 내리고 떠오른 추억의 편린과 일상에서 길어올린 단어는 생동감있게 펄떡거린다.
52편의 짧은 글은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애정, 욕망 등 6개 주제로 묶었다. 과거, 현재를 지나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짧은 글 속에서 인간의 7가지 감정인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시간을 지난다.
박인목 세무사는 머리글에서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축제를 경험하면서도 정작 축제인 줄을 모르고 지내왔다. 이제야 생각하니 음악과 춤, 술과 떡이 있어야만 축제인 것은 아닐 것이었다. 함께 웃고 함께 눈물짓고 함께 안타까워하면서 서로를 보듬어주는 순간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축제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년 시절 보리누름에 도리깨질로 비지땀 흘리던 순간이 내게는 축제의 시작이었다"며 "한때는 일만 하다가 좋은 것들을 놓쳤다며 아쉬워도 했지만, 왜 그토록 열심히 일을 했는가는 진지하게 곱씹어 본 적이 없었다. 일이 주는 보람과 만족, 기쁨과 성취가 있었기에 일에 몰두하였을 터인데도 말이다. 그런 보람을 한정 없이 누렸으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였던가"라고 고백한다.
수필집은 '택시 위로 점프한 골키퍼', '떠날 때는 말 없이', '학처럼 살다간 친구', '보리누름 축제', '싱가포르의 코엘 칼링', '100살까지 산다면' 등 정담(情談)이라는 그의 호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삶에 대한 고찰과 그의 그윽한 삶의 향기가 녹아 있는 글로 짜였다.
작업실로 출근해 일을 하고, 빌딩 숲 사이 맑고 푸른 하늘 아래서 커피 한잔을 놓고 글을 쓰고, 지인과 오랜 추억을 얘기하며, 찾아온 친구와 맛있는 점심을 먹고… 평론가의 말처럼 쉼 없이 샘솟는 듯한 생활의 즐거움과 이야기들을 분출해 내는 그의 깊은 보물샘, 그의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