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중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첫째로 시장은 실패하며 그것은 매우 심각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시장경제는 분배의 왜곡을 가져온다는 인식이다. 시장에 의한 분배는 정의롭지 못하며 빈부의 격차는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번째로 시장은 잔인하다는 것이다. 절대강자만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바로 시장의 원리라는 것이다.
시장의 실패에 대해서는 지난달 필자의 시론에서 어느 정도 논의하였다. 요컨대 시장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그 실패라는 것이 시장을 버리고 정부관리로 바꾸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시장의 실패가 상당히 심각한 경우라도 정부의 개입이 반드시 사태를 개선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 중에도 시장은 잔인하고 분배왜곡을 가져오는 문제투성이의 메커니즘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시장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여기서 낙오하면 매우 힘든 상황이 된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또 시장에 의한 소득의 분배가 가장 이상적인 분배라는 말도 할 수 없고 시장에 의한 분배가 격차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정확한 인식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시장에 의한 분배는 정의롭지 못하고 왜곡되어 있으며 빈익빈부익부를 가져오는 구조적 모순의 원흉이라는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정의로운 분배라고 말할 때 그 정의의 개념이 객관화 혹은 보편화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지만 생산에 기여한 만큼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그러한 생각이 매우 건강한 생각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시장경제체제에 의한 분배가 정의의 요건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을 충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름내 땀을 흘린 개미가 노래방에서 노래만 부르며 여름을 보낸 베짱이보다 잘사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시장에 의한 분배가 괜찮은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공동생산을 강요한 뒤 결과의 분배를 '장군님' 마음대로 하는 부패한 사회주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의로운 것이다. 흔히 깨끗한 사회주의를 상정하지만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체제는 결국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리는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시장에 의한 분배가 완전한 것은 아니다. 능력의 차이보다 소득의 차이가 더 벌어질 수도 있고 소득을 얻을 능력이 없거나 기회를 얻지 못해서 절대 빈곤에 빠지는 가구도 나타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가구들을 돌보는 책임을 정부가 많이 담당하고 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공부조 등의 기능을 담당하기 이전에도 이웃간에 상부상조하는 따뜻한 전통을 거의 모든 사회가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동물들이 사는 정글과 시장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기능은 매우 불완전하다. 산업화 도시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사회보장체제의 도입이 요구되어 왔고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는 모든 현대국가들은 이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에 의한 기본적인 분배를 대체할 정도로 개입하기 시작하면 곧 앞서 언급한 부패한 사회주의처럼 변하게 된다.
또 하나의 오해는 시장원리가 지배하는 세계는 승자독식 혹은 승자전취(winner takes all)의 세계 혹은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인식이다. 시장에서 강조되는 것은 경쟁인데 경쟁의 결과로 승자와 패자가 생기게 되고 승자는 패자를 삼켜버린다는 것이다.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시장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장경쟁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시장에서의 경쟁은 정말 치열하고 처절하기까지 한 것이지만 시장경쟁은 절대우위가 아니라 비교우위로 판정을 받게 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각자 자기가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시장경제체제라는 것이다. 빌리라는 사람은 전 미국 타이핑 챔피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흥행 비지니스로 성공해서 큰 돈을 벌었다. 그가 고용한 비서는 물론 빌리보다 타이핑이 훨씬 서툴렀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어있는 시장경제체제는 자원배분의 효율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폭력으로 사유재산제도와 시장을 뒤엎은 사회주의 혁명은 사람들을 승자와 패자로 양분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내걸었던 구호와는 달리 소수의 지배계층이 다수의 피지배계층을 착취하면서 피지배계층의 극심한 하향평준화를 달성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