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중립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국방에 대한 관심과 노력 또한 대단하다. 산허리 절벽바위속으로 굴을 뚫어 전쟁시에 사용할 생활물자를 보관하고 있단다.
최소한 2년동안 먹을 식량과 6개월이상 사용할 수 있는 석유를.
새로 짓는 집은 의무적으로 핵 방공호 시설이 있어야 건축허가가 나온단다.
아무리 중립국(中立國)이라 해도 강대국끼리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이 쏘아대는 포탄이 스위스 상공을 지나갈 수밖에 없고 혹시나 파편이라도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중략) 모든 가정에는 소총이 지급돼 있고 비상식량 준비는 의무적이다.
배급된 소총은 군사훈련때에만 사용하고 외상값 독촉 등 사적(私的)인 용도로 사용된 경우는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단다. 또한 여군은 가장 인기있는 직업이어서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했다.
(후략)….
(27) 파리의 여인숙
파리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우리는 스위스에서 다시 프랑스 파리에 왔다. 오늘 하루는 여기에서 묵고 내일이면 귀국하게 된다.
그런데 런던에서 우리 교포가 경영하는 여행사를 통해서 예약해 둔 파리의 호텔 'Sudo'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리시내 한복판에도 이런 호텔이 있었을까?
건물은 낡고 더러울 뿐만 아니라 투숙객들도 모두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검둥이 일색이다.
예약된 방도 다섯개 뿐이어서 한방에 4∼5명씩 포개 자야 했다.
영국체류기간 중 주말여행은 신경을 좀 쓰더니 귀국행 주선은 그동안 남기지 못한 이문을 보충하려고 여인숙 같은 싸구려 호텔에 투숙시킨 것이 틀림없다.
런던으로 달려가 멱살 잡고 혼내주고 싶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낡고 냄새나는 카펫이 깔린 방에 누우니 천정모퉁이에 거미줄에 바퀴벌레가 떼지어 쏘다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당한 배신감에 못 이겨 한숨도 못 잤다.
길에서 파는 복숭아를 사서 집에 와서 보니 위쪽 줄은 그런대로인데 아래쪽은 온통 썩어있었던 때의 그 심정, 그대로이다.
왜들 이러는가? 이렇게 속여도 되나?
다시는 안볼 거라고 그런 모양이다.
이번 연수길에 요런 못된 놈들 많이 만났다.
런던에서 스코트랜드에 갈때 기차삯을 삥땅하다 나에게 들켜 우리 일행에게 죽도록 빌던 박씨, 석탄밭을 구경시킨다고 두 시간을 달려가서 가이드 그놈의 친구 가게에 우릴 내려 놓고 물건을 사게 한 다음 시간 없다고 되돌아온 독일교포 조씨, 뿌렝땅 백화점에 끌고 가서 바가지 씌운 프랑스 교포 홍씨, 밖에서도 이렇게 고국동포를 속이다니 참으로 불쾌하다.
외국에 나가서 우리 동포를 만나면 반갑기는 하지만 먼저 경계심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얼까? 우선 사기 당할까 겁나고, 북조선 첩자가 아닌가 의심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살지 말어! 죄받어!
…(중략)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는 순간, 탁한 공기는 숨을 막히게 한다.
어디서 날아 왔는지 최루탄 가스냄새도 난다.
짐 보따리를 찾아 4번 검사대 앞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세관원이 열심히 뒤져본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하나 변변히 사오지 못하였기 때문에 무엇 하나 꿀릴 것이 없다.
나의 짐속에는 영국 방문 기념 런던다리모형 액자, 놋쇠로 된 에펠탑 모형, 목판에 조각한 스위스 전원 풍경, 이태리 건국신화에 나오는 늑대 젖 먹고 있는 쌍둥이인형, 네덜란드 풍차모형, 교황흉상이 새겨진 열쇠고리, 그게 전부다.
돈 때문에 그런 걸 사왔는데 그것도 모르고 세관원은 뜻있는 것만 사왔다고 했다.
(후략)….
(28) 기행문의 끝을 내면서
서구사람들이 한결같은 특징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슬플 때는 침통하게, 기쁠 때는 즐거운 표정을, 행동으로 분명히 표현한다는 것이다.
외국에 나가서 우리 동포를 만나면 반갑기는 하지만 먼저 경계심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얼까? 우선 사기당할까 겁나고, 북조선첩자가 아닌가 의심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살지 말어! 죄받어!
우리네 눈으로 보면 다소 경망스럽다고 느낄지 모르나 자기 감정을 솔직히 표현한다는 것에서 진솔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김포공항 도착출구를 나오니 식구들이 마중을 나왔다.
그네들 같으면 포옹하고 뽀뽀하고 난리가 나겠지만, 그냥 "별일 없었지?" 그것으로 그만이다.
…(중략) 40여일동안 런던에 체류하면서 주중에는 공부를, 주말에는 관광을 하며 지냈다. 런던, 스코트 랜드, 파리, 암스테르담, 부르셀, 쾰른, 로마, 나포리, 바티칸, 취리히 등 많은 나라 여러 도시를 가 보았다.
제한된 시간 여유, 부족한 노자 등등의 이유로 겉핥기식 관광이었으나 나름대로 자료를 수집하고 메모해 견문을 소개하는데 애를 썼다.
세무(稅務)라는 업무의 특수성으로 인해 자칫 사람마저도 딱딱하게 변질돼 맛이 가버리기 쉬운 우려를 조금은 순화시키는데 기여했다고 감히 자부해 본다.
(후략)….
[필자 註]
지금까지 정확히 '85.6.14∼7.18까지 21명이 런던대학에 있는 'R.I.P.A'에서 공부도 하고 놀러다니던 내용을 '87년도에 모두 60회에 걸쳐 '국세지'에 연재했던 것을 28개 단원으로 요약해 본 것입니다. 연재할 그 당시 저는 인기가 꽤 좋았습니다.
올해 2006년 8월에 열이틀동안 20년전 그때를 회상하면서 똑같은 코스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태리'가 눈에 뜨이게 많은 발전을 했을 뿐, 다른 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 당시는 우리나라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그 많던 일본사람 대신 우리나라 사람으로 대체된 것 같았습니다.
지루하셨지요?
이제부터 본론(本論)으로 돌아가겠습니다.
43. 또 한 번의 실망
교관(敎官)생활도 2년이 훨씬 지나갔다.
보통 2년 이내에 선생님 직을 면(免)해 주는데 멍청한 나는 이런 곳에서는 또 장기집권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발령에서 대우를 해준다고 본청 K총무과장이 '○○법인과장'으로 내정(內定)이 돼 있다고 미리 축하를 해주셨다.
나는 감사를 드렸고 교육원에서 오래 근무한 보람이 있구나 생각하며 정식발령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발표된 발령내용을 보는 순간 또 한 번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량리소득2과장이다. ○○에서 청량리로 바꾸어져 있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아 무 말없이 가만히 있는 사람을 정말로 왜 이렇게 자꾸 흔들어 대는가? 참으로 기분이 나빴다. 결국 누가 장난을 친 것이 틀림없다.
K과장은 '파란 집'에서 무슨 수석(首席)이라는 사람이 청탁을 해와서 할 수 없었다는 변명이다. 나는 그런 힘이 없다.
그러니까 이렇게 당해도 싸지. 멍청하니까.
나도 진짜로 빽을 한번 써버릴까?! 있어야 쓰지….
나 자신이 밉고 한심했다. 그리고 나를 아는 친구나 동료들 보기에도 창피하였다. 아무데 가면 어떨까마는 이번만큼은 참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