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청에 빠졌으니 지방청에는 각 국장님 모두 재무부에서 모시던 분들이라 나를 데려가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을지로에서 서장님으로 모셨던 C청장님께서 배려해 주시면 실망스런 자리에는 가지 않을 것이라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오직 한분 직세(直稅)의 H국장님만은 같이 근무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왠지 불안한 것은 지난 1월 업무보고때 그분의 허벅다리를 좀 심하게 잡은 것이 몹시도 마음에 걸렸다.
그걸 제외하고는 그분과는 별다른 인연(因緣)이 없었다.
제일 먼저 본청의 조사국장님이 얼마나 괘씸하게 생각을 하실까?
정말 뵐 면목이 없었고 송구스러웠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분께 한마디 변명도 드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날 '83년3월11일 9시에 있었던 지방청의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지 않고 청량리서(署)로 가서 책상을 정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조 계장님은 자기 입을 손으로 때리면서 "요놈의 주둥아리, 요놈의 주둥아리!…"하며 미안해 했다.
지방청에서 난리가 난 모양이다. 소득세 과장님이, 특히 H국장님의 화(禍)가 하늘을 찌를 것 같다고 하시며 빨리 들어오란다.
그렇지만 나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튿날.
지방청에 출근을 했더니 국장님이 나에게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기선을 잡는다.
"내가 청장님과 몇번이고 싸워서 당신을 데려 왔어!"
"일 좀 하자는데 뭐가 불만이야?"
"발령장 주는데 안 나와? 그래도 되는 거야?"
진짜로 화가 나신건지 화가 난 척 흥분을 하시는지, 내 생각에는 후자(後者)에 더 가깝다고 생각됐다. 국장님이 기침을 하는 틈을 놓칠세라 끼어들었다.
"국장님! 말씀 다하셨으면 나가도 되겠습니까?"
"안돼! 안 끝났어! 지방청에 안 들어오려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
"예, 이유가 많습니다"하면서 나는 지난주에 본청 조사국장님께 드렸던 세가지 이유에다 두가지를 더 추가하여 말씀드렸다.
"첫째는…, 둘째는…, 셋째는…."
"넷째는 본청 조사국장님도 그 이유를 들으시고 제외시켜 주셨으며 그리고 다섯째는 본 지방청의 막중한 업무를 감당하기에는 제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그제서야 좀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디가 아픈데?"하고 물으신다.
나는 어디가 아프다고 할까?
얼른 각종 질병을 생각해봤다.
지방청에서 난리가 난 모양이다. 소득세 과장님이, 특히 H국장님의 화(禍)가 하늘을 찌를 것 같다고 하시며 빨리 들어오란다.
그렇지만 나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위? 장? 심장? 고추? 간? …?'
'응 그래, 간(肝)이라 하자'
"예, 간이 좀 나쁩니다."
"어이 미쓰김! 서울대 '김정룡' 박사 전화 좀 대봐!"
그러고는 지방청에 들어와서 본인을 만난 것이 천운(天運)이라나.
지금 당장 김 박사에게 가보라신다.
김 박사 만나려면 일년을 기다려야 된다고 하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간(肝) 박사로 유명하신 서울의대 김 박사님과 국장님은 아주 가까운 친구사이였다.
"빨리 가봐! 이 사람아!"
"그런데 왜 내 허벅지를 그렇게 꽉 잡아?"
"하하하! 그래서 나도 자넬 꽉 잡아버렸지"
그날, 청장님께 인사를 드렸더니 반겨주셨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왜 안나왔지?"
"죄송합니다, 송별회한다고 못 마시는 술 좀 마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희망했다고 H국장이…."
"그건 청장님이 잘못하신 겁니다."
"그건 왜?"
"청장님으로 취임하신 후에 옛날에 같이 근무하던 직원 중에서 6급이하 직원은 청장님실 앞에 얼씬하지 못하게 지시하셨잖습니까?"
"응 내가 그랬지"
"그런 건 얼씬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될 사안이지 지시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희망한 건지 아닌지 모르고 계시잖습니까."
그렇게 말씀드리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근무하겠습니다"하고는 청장님실을 나왔다. 청장님도 조금은 안쓰럽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어쩌겠는가? 지금부터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46. 복수
내가 생각하기에는 국세청 업무 중에서 제일 큰소리칠 수 없는 업무분야는 바로 면세사업자 관리부분이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당시 지방청에서는 소득세2계에서 면세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골치가 아팠다.
사업자들은 부가세 부담에서 제외됐다 해서 영수증 등 계산서 주고 받는 것에서도 제외된 것처럼 착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 면세업종이 일반소비자와 직접 상대함에 따라 수입금액의 포착(捕捉)이 지극히 어렵다.
따라서 사업자의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조사를 한다 해도 소비자와 담합을 하는 경우에는 대단히 애를 먹었다.
나는 업종별로 주무관청에서 파악할 수 있는 과세자료는 물론, 면세사업과 관련된 제품이나 원료 등을 취급하는 생산업체나 판매업자들의 수불자료를 확보해 면세사업자 수입금액 신고와 결정에 활용하도록 일년 내내 자료수집에 주력했다.
그러는 한편, 동업자조합을 통해 성실신고를 유도하기 위한 간담회를 수도 없이 개최했다.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직결된 업종이 대부분이고 세부담 불균형 문제가 항상 대두돼 언론에 자주 보도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업종별로 특성과 신고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분석을 해두고 언제 어디서든지 청장님이나 국장님이 찾으시면 즉시 보고를 할 수 있도록 항상 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직원들 말대로 맨날 터지던 2계장 자리를 내가 근무하는 동안은 단 한번도 그런 일이 없는 자리로 만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