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고추잡고 맴맴
H계장님의 얘기를 좀더 해야겠다.
어릴때 서당(書堂)을 다녔다고 하는데 진짜로 다녔는지 한문과 서예에 능했고 경제학과 역사에 조예가 깊었다.
특히 성씨(姓氏)와 족벌(族閥)에 대하여는 우리나라에서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많이 한 탓인가? 시력이 좋지 않아 그의 안경알 두께는 엄청 두껍고 도수도 셌다.
나는 그의 성실하고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 일선으로 나가는 것도 잊은 채 같은 사무실에서 재미없는 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었다.
6·29선언이 이어지고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하게 됐다. 대통령 뜻이 있는 분들 모두 출마하고 전국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었다.
모인 청중의 숫자를 갖고 서로들 기선을 잡았다고 계산들을 한다.
집권층에서는 이에 뒤질새라 공무원을 유세장에 동원시켜 머리 숫자를 채우는데 활용했다.
우리는 유세장 간다는 핑계를 대고는 부근에 있는 목욕탕에서 사우나를 하러 갔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사우나탕은 손님들로 북적댔다.
"박 계장! 박 계장!"
큰소리로 나를 부르는 H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속으로 'c8 목욕탕 안에서까지 박 계장이 뭐냐 이 나이에. 목욕손님들 보기에 창피하게…'하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 데도 눈이 나빠서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박 계장! 박 계장" 계속해서 떠들며 사우나탕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으로 슬며시 다가가서 귓속말로 이렇게 말해줬다.
"어이! 계장이 뭐냐? 창피하게. 최소한 국장은 되어야지!"
"응 맞아! 박 국장! 박 국장!"
"왜? H계장!"
"c8, 니는 왜 계장이라 하냐? 쪽 팔리게."
"응, 맞아! H청장! 그런데 왜 불러?"
나를 황급하게 불러대던 그의 사연을 들어보니 기가 막힌다.
옆에서 옷을 벗고 있는 다른 사람을 난 줄로 착각을 하고서는 그의 고추를 슬며시 잡았더니 황급히 엉덩이를 홱 돌리더란다.
다시 뒤쫓아 가서 허벅지를 잡아당기면서 콱! 쥐어 버렸단다.
백주 대낮에 고추를 잡힌 그 녀석은 얼굴을 찡그리며 "여보시오. 여보시오"를 연발해 대었다.
"여보시오는 뭘 여보시오냐?! 그놈 고추 실하네."
"이것 놔욧!"
그제서야 내 목소리가 아님을 깨닿고는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사과를 하고 그 자리를 얼른 피하려고 "박 계장" 하면서 돌아다녔단다.
나 대신 고추를 잡힌 그 친구는 탕 안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힐끔 쳐다보니 고추만 씻고 있었다.
너무 꽉 잡혀 얼얼한 모양이었다.
시골 출신이라서 H의 손 악력은 대단하다.
잘못 잡히면 뭐가 터져도 터져 나간다.
49. 반포는 건너뛰고 본청으로
'83년도 사무관이 된 이후 교육원, 청량리, 지방청을 거쳐 반포로 왔다. 방배동 우리집과는 걸어서 불과 15분 거리이다.
나는 거기서 앞으로 직장생활을 하는데 많은 영향을 준 또 한분을 만나게 된다.
정말로 깨끗하고 바르고 착하게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하시는 분이었다. 바로 '임정산' 서장님이다.
비록 청백리상은 받지 않았지만 청량리에서의 꽉 막히고 의도적인 청백보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시는 진짜 청백리였다.
법인업무에 밝은 그분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으면서 이제 막 정이 들려고 하는데 본청 인사계로 발령을 받았다.
반포에 온지 불과 열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본청 총무과장님이 내일부터 당장 본청으로 출근하라고 전화를 하셨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이제 겨우 자리잡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층층시하 본청에 오라 하니 기가 막혔다.
나중에 그는 미안하다면서 감춰두고 있던 그것을 인편(人便)으로 보내왔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그 당시에는 공무원을 상대하는 그곳은 못된 짓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아무나 갈 수 없는 자리가 아닌가?
그런데 내가 어째서 그리로 가게 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런 힘도 배경도 없는 내가 그 자리에 간다는 것은 국세청 인사를 제대로 하시겠다는 청장님의 의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거기는 어마어마한 힘을 갖은 사람들만이 가는 곳이라고 이제까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6공 시절 실력자였던 P씨와 내가 성씨(姓氏)가 같아서 그 분이 밀어서 그리로 갔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런 사람 잘 모른다.
하여튼 나는 그동안 내가 느껴왔던 국세청 인사의 불합리한 점들을 개선할 수 있도록 열심히 말씀드리고 노력도 할 것임을 스스로 다짐했다.
- 과장이 공채(公採)출신이므로 인사계장은 특승(特昇) 일 것.
- 여러 분야를 경험한 세무경력이 있어야 하고
- 들어와서 금방 승진해 나가는 사람은 안된다.
- 성실하고 강직한 사람이어야한다.
대충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4명을 추천했는데 청장, 차장님께서 나를 지명하셨다고 L총무과장님이 말씀해 주셨다.
청·차장님께 인사를 드렸더니 열심히 잘하라고 하셨다.
각 국장님도 반가워하시며 축하를 해주셨다.
우리 직원들도 모두 반겨줬다.
'90년2월13일이었다.
50. 발등에 떨어진 현안업무
인사계에 오니 당장 해야 할 일이 세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모레 월요일 아침 아홉시에 사무관 특별승진자 40여명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 준비와 두번째는 6급이하 직원 정기인사, 그리고 70년도에 정권이 출범하면서 부당하게 해직당한 직원의 복직문제였다.
당장 월요일 임명장 수여식에서 청장님이 수여하실 임명장을 찾아놓지 않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직원이 머뭇거린다.
붓글씨 쓰는 님에게 한 장당 얼마를 갖다줘야 하는데 미처 그걸 준비 못했단다. 부조리의 극치가 아닌가? 참으로 기가 막혔다.
나는 당장 붓글씨에게 전화를 걸어 좀 만나자고 하였다.
휴게실로 내려온 그에게 나는 따끔하게 충고를 해줬다. 우리가 공무원이지 장사꾼이 아니며, 임용장을 못 주더라도 이런 짓은 할 수가 없다 하고 그냥 와버렸다.
나중에 그는 미안하다면서 감춰두고 있던 그것을 인편(人便)으로 보내왔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그 당시에는 공무원을 상대하는 그 곳은 못된 짓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첨부서류가 미비됐다고 금방 보완하면 될 것을 반송시킨다든가, 결재란에 도장이 삐뚤게 찍혔다느니 뭣하나 트집을 잡으려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표창인원도 예를 들면, 50명을 이미 배정을 해놓고 계장에게 가면 30명, 과장에게 부탁하면 40명 국장에게 올라가면 50명 인심쓰는 척 그렇게 일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계장은 애를 먹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