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48)

2007.05.10 08:39:18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여덟째, 승진적체로 인한 직원들의 사기문제이다.

 

조직마다 정원이 법으로 규정돼 있고 각 직급별로 정원에서 결원이 생길 때 승진의 여유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우리청의 경우에는 승진적체 현상이 심하게 나타났다.

 

특히 매년 배출되는 세무대학 출신들이 8급으로 들어오므로 해서 9급 직원들의 승진의 길이 막히는 현상이 심각했다. 직원들은 항의했으나 이것만큼은 별다른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나는 교육원에 특강시간을 2시간 정도 할애를 받아 우리 직원들의 마음을 달래주는데 크게 애를 썼다.

 

53. 좋은 말할 때 돌려도!

 

승진한다는 것은 정말로 기분 좋은 일이다.

 

가문의 영광이고.

 

직급에 관계없이 본청에 있는 모든 직원들은 오로지 '승진'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방청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 무슨 수석실이라면서 전화가 왔다.

 

○○청의 감사관으로 있는 R사무관에게 훈장을 줘야 한다면서 추천하란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하고 물었더니 민정 시찰 도중에 거기서 숨은 일꾼을 발견했단다.

 

나는 발견했으면 거기서 주면 될 것이며, 우리청은 우수공무원 표창대상자를 불과 보름전에 총무처에 추천을 했기 때문에 보름 사이에 그가 훈장을 타야만 하는 공적이 발생하지 않은 한 국세청에서는 추천할 수가 없다고 답변을 했더니 노발대발이다.

 

"너 누구냐?!"

 

"너는 누구냐?"

 

"이 친구 봐라!"

 

"이 친구라니! 이것 봐! 내 말이 틀렸나요?"

 

"지시하면 들을 일이지 엇다대고 함부로!"

 

"거기 있으면 뭘 보이는 게 없냐? 함부로 말해도 되냐?"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곳에 있으면 어떤 것이라도 맘대로 다 되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시간후, R이 비행기를 타고 왔는지 날라왔는지 그 멀리서 인사계 사무실로 들어 와서는 사과를 해댄다. 나는 이렇게 말해줬다.

 

"이것 봐요. R과장! 이런 장난질하면 못써요!"

 

"당신이 숨은 일꾼이요?"

 

"정상적으로 해야지 자체에서 상을 못 탄다고 높은데 가서 압력을 넣어요? 싸가지없는 행동 아니요? 순리대로 하시오!"

 

"지방청 공적심사위원회에서 추천을 받아오시오."

 

그는 수없이 사과를 하고 갔는데 어찌되었는지 결국 그쪽에서 상을 받은 모양이다. 재주 한번 기똥찼다.

 

그후 이 친구는 정권이 바뀌자 낚싯대 하나를 들고는 초고속 열차를 타고 이쪽 연못, 저쪽 저수지를 이리저리 잘도 돌아다니더니 엄청 큰 참붕어 월척을 낚아낸다.

 

나는 낚시를 다니기 시작한지 30여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월척은커녕 잔챙이 밖에 잡지 못했는데….

 

미끼를 무엇으로 썼는지. 지렁이? 떡밥?

 

입질이 통 없을 때는 옆의 잘 잡는 사람에게 어떤 미끼를 쓰는지 빨리 물어 봐야 한다는 것이 낚시꾼들의 철칙인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놈의 양심과 자존심 때문에 묻지 않은 것이 아쉽다.

 

또한 요즘 붕어들은 약아서 지렁이 대신에 수표를 달아줘야 입질을 한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바보여!

 

나에게 그런 재주만 있었으면 대통령이 되고도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이러한 승진을 위한 피눈물 나는 노력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너무 심한 경쟁으로 싸늘해진 분위기를 어떻게라도 돌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너 누구냐?!"

 

"너는 누구냐?"

 

"이 친구 봐라!"

 

"이 친구라니! 이것 봐! 내말이 틀렸나요?"

 

"지시하면 들을 일이지 엇다대고 함부로!"

 

청장님 비서관으로 있던 이(李) 사무관이 이렇게 말한다.

 

"형님, 나는 행시에 합격했을 때 국세청장이 꿈이었는데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입사할 때의 꿈이 자꾸 내려갑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청장에서 차장, 차장에서 국장, 국장에서 이제는 서기관이라도 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승진이 임박해 있는 각 과의 수석계장들의 치열한 경쟁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나중에 본인에게도 닥칠 일이라 생각하니 겁이 난 모양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다.

 

"이형! 그렇게 생각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못 견뎌."

 

"나의 경우에는 9급으로 들어와서 지금 5급까지 네번의 승진을 했어. 그러나 한번도 승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어."

 

"그냥 현재의 직급에 만족하고 근무하다보니 저절로 찾아오더라."

 

"9급때는 9급으로 만족했고 6급때는 6급으로 만족했어."

 

"6급때는 계장이나 차석하다 퇴직하면 되지 뭐, 지금은 본청 계장이나 일선 과장으로 있다가 퇴직하면 되지 뭐. 정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내왔어."

 

"욕심없이…. 그렇게 생각하면 맘이 편해."

 

"승진 그거 남들보다 일이년 좀 늦게 하면 어때?"

 

"죽을 때 누가 더 멋있게 죽느냐가 문제 아니겠어? 인생은!"

 

"이형, 그래도 꿈은 버리지 말어"

 

"그런데 말이야, 각 과 수석계장들 경쟁이 너무 치열해."

 

지금까지 내 말만 듣고 있던 이 사무관이 내 말에 동의하는 표정을 하면서 말했다.

 

"형님이 한번 불러서 그런 말좀 해요."

 

그로부터 나는 각 과 수석 사무관들을 인근 밥집에 모이게 하고 그런 취지의 말을 하고는 서로를 이해하고 친목을 다지기 위해 앞으로 한달에 한번씩 '친목포커모임'을 개최하기로 했다.

 

첫 모임은 '92년 6월 어느 토요일 장소는 '유정'이었다.

 

그때가 본청 사무관 시절에서 그래도 재미가 있었고 분위기도 좋았던 때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포커' 소릴 하면 지금 소스라치게 놀라는 몇사람들이 본청에 근무하고 있다.

 

특히 ○는 포커페이스다.

 

그의 표정을 훔쳐보고 판단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풀하우스 잡고도 원페어 같은 표정이고, 엄청 따고도 엄살이다.

 

조심해야 된다.

 

그때 내 돈 따묵은 님들이여!

 

좋은 말할 때 돌려주셔!

 

내가 지금 힘이 없다고 안돌려 주면 고소할거여!

 

그리고 이 사무관은 지금 부이사관으로 승진해 꿈을 천천히 키워가고 있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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