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51)

2007.05.22 08:59:02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56.  드디어 승진을 시켜 주셨다

 

차장님이 찾으셨다.

 

"박 계장! 빽 좀 쓰지. 그냥 가만있어야 되겠나."

 

나는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빽은 많지만 그것을 막아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말씀드리니 누가 있느냐고 물으신다.

 

"예, 제 빽은 청장님과 차장님 두분이십니다."

 

"그리고 차장님 저는 승진 안 시켜 주셔도 좋습니다."

 

"저를 잘 아시잖습니까? 승진 안하면 안했지 그런 건 못합니다."

 

L차장님에게 간곡히 말씀드렸다.

 

차장님은 4∼5년전에도 저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놈 이거 자질은 괜찮은데 뒷배경이 없으니 본인께서 더 답답해하시는 것 같았다.

 

중부청 개청에 따른 준비로 모시고 있던 L총무과장님이 준비단장으로 나가셨다. 청장님께서 인사 분위기를 물으시기에 내가 느낀 그대로를 말씀드렸더니 노발대발 하셨다.

 

한마디로 승진이 임박한 무렵인데 청장님께 콱! 찍혀 버렸다.

 

이를 보다 못한 차장님이 해결방법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정말로 나는 승진이나 전보인사때 딱히 부탁할만한 배경도 없었고, 설사 있다한들 그런 부탁을 할만한 용기도 없고 나의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는다.

 

"일도 잘 못하고 능력도 없는 놈이 주제넘게 빽은…."

 

이런 말을 듣기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장님께서 나의 진솔함을 잘 알고 계실 거라는 믿음 하나만은 크게 갖고 있었다.

 

청장님께서 찾으셨다.

 

'박○○ 예산, 진○○ 충무, 이○○ 영동' 이렇게 적힌 메모지를 주시면서 정리를 해오라 하셨다.

 

"청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예산인데 우선 그리 가있어."

 

'93년3월15일자로 예산세무서장으로 부임하게 됐다.

 

'67년 9급에서 출발한지 25년8개월, 사무관이 된지 9년7개월, 본청에 들어온지 3년1개월만이다.

 

그때그때 당해 직급에서 만족하며 오직 천직으로 알고 일해온 자신이 대견스럽고 그런 나를 제대로 인정해 주신 청·차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만약 청탁을 하고 빽을 썼다면 나는 이러한 글을 쓰지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그렇게 했다면 여기에다 '그때 나는 ○○○의 빽을 썼더니 청장님께서 꼼짝도 못하시고 마지못해 승진을 시켜줬다'라고 써야만 하는데 그건 우리 직원에게 맞아죽을 일이다.

 

이불 보따리를 차 뒷트렁크에 실고 예산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누워서 떡먹기다. 그 길은 어디에 뭐가 있으며 어느 지점에 교통이 지키고 있는 것까지 빠삭했다.

 

왜냐하면 이 길은 예당저수지로 낚시 다니느라 뻔질나게 오갔기 때문이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관사는 시골집 그대로였다.

 

뒷편으로 채소밭이 보이는 방에 이불 보따리를 풀어 넣어놓고 책상 앞에 앉으니 마치 어느 하숙집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집에서 출근하던 때도 아이들과는 별로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처음으로 객지에 홀로 떨어진 때문일까 허전하다.

 

'93년3월15일자로 예산세무서장으로 부임하게 됐다.

 

'67년 9급에서 출발한지 25년8개월, 사무관이 된지 9년7개월, 본청에 들어온지 3년1개월만이다.

 

충절의 고장 예산세무서의 일년 세수라 해봤자 대략 150억원, 대산건설이 세수의 대부분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 크게 바쁜 일이 없었다.

 

한마디로 조용하고 한적하며 작은 시골세무서 그대로의 모습이다.

 

나는 여기에 내려오면서 출근을 하면 우선 직원들의 근무분위기가 어떤지, 당장 급한 현안업무가 무언지, 고액 자료가 미결이 없는지 이상 세가지를 반드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먼저 직원들의 동향과 근무분위기 파악을 위해서 각 과의 '근무상황부'를 가져오게 하였다.

 

3월 중순인데 벌써 일년의 연가일수를 다 쓰고 그것도 모자라서 병가를 내면서 출근을 잘하지 않는 7급 직원 '김○○' 가 눈에 띈다.

 

중부청에서 징계를 받고 하향전보가 된 그 직원은 개인적인 일로 소송이 붙어 도저히 공직생활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나는 그를 불러 사표를 받아 즉시 처리를 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작은 세무서라 하지만 그런 직원이 있으면 서 전체 직원의 근무분위기를 해치기 때문이다.

 

다음은 현안업무와 고액자료처리대장을 확인해 보니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자아! 이제는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왔던 지난 날들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으면서 나 자신을 쉬게 하고 건강을 찾으면서 취미생활도 좀 하고 여유있게 예산(禮山)생활을 보내자고 다짐했다.

 

인삼을 경작하시는 정 회장님이 커다란 화분을 들고 찾아오셨다.

 

그 분을 모시고 과장님들과 예산에서 유명하다는 갈비집에서 환영점심을 먹었다.

 

지방검찰청이 홍성에 있었다.

 

지방에 가면 제일 먼저 지청장에게 부임인사를 해야 한다고 누가 가르쳐 줬다. 현재 서초동 법원단지에서 변호사를 개업하고 있는 '김○○' 청장님을 만나 금방 친해져 버렸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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