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10시, 경찰서 과장님과 우리 서의 각 과장을 서장실에 모이게 하고 김 회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나는 김 회장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열시 정각이 되자 정문에 그가 탄 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일행에게 업혀 들어온 김 회장은 소파에 앉자마자 각서를 돌려주면서 사과를 했다.
나는 고지된 세금을 이달말까지 납부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 불편한 몸으로 와주셔서 감사함을 표했다.
그리고 각 과장에게 이렇게 호통을 쳤다.
"당신들 도대체 뭘 하는 사람들이오?"
"서장을 보필하는 참모들 아니요?"
"일개 납세자에게 각서를 쓰도록 그렇게 보좌했단 말이요?"
"공권력의 권위가 이렇게 추락해도 되는 것이오?"
"지금 당장 나가서 시말서를 써오시오. 청장님께 그대로 보고해서 모두 징계를 시켜버릴 것이오."
그때까지 가지 않고 있던 김 회장이 모두 자기의 책임이라면서 만류를 한다.
"당장 나가서 써오시오."
"그리고 김 회장님, 금은방 간판에 어떻게 써놓았어요? 어제 가보니 '장애자 복지재활원 ○○사' 라고 쓰여있지요?"
"예."
"여보시오 김 회장! 복지는 원래 국가가 하는 것 아니오?"
"개인이 하신다니 고마운 일입니다만 대게 보면 장애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로 복지를 베푸신다면 저희 세무서에서도 최대한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김 회장은 떠났다.
각 과장들은 시말서는 가져오지 않고 비실비실 웃으면서 "서장님 잘 하셨습니다"라고 했다.
시장님과 경찰서장,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나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또한 엄청난 뒷배경이 있는 사람으로 오인하게 됐으나 나는 애써 해명을 하지 않았다.
이걸로 그쳐서는 안된다.
다년간 경험으로 비춰 보면 투서나 진정으로 인해 조사를 받은 사람만 세금을 불공평하게 많이 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나는 관할지역에 있는 금은방 60여곳을 상중하(上中下)로 나누고 각 2개소씩 모두 여섯곳을 표본조사를 시켰다.
그리고는 동업자조합에 연락해 전원을 대상으로 세무서 강당에서 간담회를 개최했다.
"여러분 잘 알다시피 제가 오기 전에 ○○사 김○○씨를 조사해 세금을 추징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구미 선산지역에서 랭킹 1위로 올라섰습니다. 과연 이 분이 제일 장사를 잘합니까? 그래서 모두 여섯곳을 표본조사를 했더니 문제가 많았습니다."
오육십여명이 모였는데도 기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다.
나의 설명은 계속됐다.
"혹시 이 자리에 조합 총무님이 계시면 좀 일어나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누군가가 일어섰다.
나는 일어선 총무에게 물었다.
"총무님은 오늘 세무서에 오실 때 걸어왔습니까?"
"아닙니다. 제 차로 왔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 보셔요. 총무님! 이런 수입으로는 르망은 커녕 티코도 못 타십니다."
"미안합니다만, 무슨 차로 왔습니까?"
"예 르망입니다."
"혹시 총무님은 세무서에 신고하신 일 년의 수입금액이 얼마인지 알고 계십니까?"
"지금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 보셔요. 총무님! 이런 수입으로는 르망은 커녕 티코도 못 타십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나는 이렇게 제의했다.
얼마나 걸리더라도 모든 인원을 조사하는 방안, 그것보다는 조합에서 자율적으로 조정해 수정신고하는 방안, 두 가지 중에서 조합원들이 원하는 방안으로 택할 것이니 이 자리에서 결정해달라고 했다.
잠시 회원들끼리 상의를 하더니 후자의 방법으로 수정신고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조합 자율적으로 수입금액 랭킹을 정하고 표본조사 내용과 김 회장의 수입금액을 가르쳐 주면서 그것을 기준으로 조정을 해 신고토록 했다.
이렇게 해서 각서사건은 마무리됐는데 나의 일처리 솜씨를 본 김 회장은 한층 나에 대해 신뢰를 하며 흡족해 했고 다른 동업자들도 이해를 했다.
김 회장님은 내가 구미에서 근무하는 동안 무척 많은 협조를 해줬다. 이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59. 집단민원
벌써 2여년째 민원을 제기하고 항의하며 시위까지도 하는 미해결 집단민원이 있었다. 바로 재개발 지역이었던 구미시 송정동 거주자들의 양도소득세 문제였다.
그들은 조상대대로 그곳에서 거주를 하고 있었는데, 90년도에 재개발이 돼 수용이 됐다.
주택을 자진철거한 주민에게는 보상을 좀더 해줬던 모양이다.
그런데 건물을 멸실하고 난 후 며칠 뒤에 대지에 대한 등기를 이전한 것 때문에, 사실상 1세대1주택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나대지만 양도한 것이 돼 비과세 혜택을 받지 못했다.
주택업자들이 좀더 지혜롭게 등기 일자를 처리했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었다. 한편 끝까지 주택을 철거하지 않았던 주민들은 비과세 혜택을 모두 받았다.
그들은 국가시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사람들이 오히려 당하게 됐다며 도저히 이해를 하려들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었지만 세법을 무시하면서까지 그들의 주장을 수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많은 체납액수와 집단민원이 2년씩이나 장기간 처리되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약 50∼60여명에 약 40억원 정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