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55)

2007.06.05 08:44:32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나는 '구미시 송정동 집단민원에 대한 처리대책'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그길로 본청 감사관님과 감사과장에게 보고함은 물론, 감사원에 가서 보고를 드리고 국장님의 결재를 받아놓았다.

 

나중에 감사에서 지적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해당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나는 여러분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리고 세무서의 처리도 세법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다. 공권력에 권위는 있어야 되지 않느냐?

 

이달말까지 체납된 세금을 모두 납부하면 내가 책임지고 환불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해줬다.

 

"조상으로부터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물려받은 집이 국가의 개발시책에 따라 엄청난 보상을 받았습니다."

 

"일종의 불로소득이 아닙니까?"

 

"국가에 보답하는 뜻으로 체납세금을 납부하고 환불을 포기하실 분이 있으면 손들어 보시오"라고 했더니 한사람도 들지 않았다.

 

그들은 체납세를 그달에 모두 납부했고 나는 다음달에 사실상 1주택으로 봐 결정을 취소하고 전액을 환불해줬다.

 

송정동을 대표한 시의원 '정○○'님과 주민 몇분이 나중에 내가 천안에서 근무할 때 먼 길을 찾아와 주민의 뜻이라면서 커다란 감사패를 주시고 갔다.

 

60. 관사에 도둑이 들었나?

 

이불 보따리에 속내의 몇점, 양복과 넥타이를 챙겨 달랑 나 혼자서 구미에 내려왔다.

 

세무서와 가까이 있는 작은 아파트, 관사에 도착해 보니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마치 도둑이 들어 몽땅 털어간 집같이 집기 비품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관사에까지 따라온 행정계장님과 기사님에게 물었다.

 

"관사에 도둑이 들었나요?"

 

그들은 아니라면서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고 서로 쳐다보면서 말이 없었다.

 

"그러면 왜 이래요?"

 

거실에 탁자 하나만 달랑 놓여 있을 뿐 TV도 냉장고도 에어컨도 심지어 지금이 한여름 7월인데 선풍기조차 한대도 없었다.

 

"아니 전임 서장들은 이런데서 어떻게 살았어요?"

 

"…"

 

마지못해 행정계장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데 듣자하니 해도 해도 조금 심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구미세무서는 반도체, LCD, 컴퓨터, TV, 냉장고, 에어컨, 정보통신기기 등 모든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전자산업단지를 관할하고 있음을 기화로 서장이 바뀌면 그놈의 가전제품 일절을 공짜로 지원받아 쓰다가 다른 데로 발령이 나면 몽땅 떨어 가져간다고 했다.

 

그걸 관행(慣行)이라 했다. 이런 제기랄!

 

그러면 다음에 부임한 서장은 또 한 세트를 얻어가고, 또다른 서장이 와서 또 가져가고, 관사 옆집에서 이런 사실을 알까 두려웠다.

 

서장이 자주 바뀌면 구미공단은 문 닫아야 될 판이다.

 

이것이야 말로 민폐(民弊)의 극치가 아닌가?

 

나는 불쾌하고 괘씸한 생각에서 구미에 온지 두어달동안 제일 더운 7·8월달에 내가 구입한 선풍기 한대로 견뎌냈다.

 

나는 관사에까지 따라온 행정계장님과 기사님에게 물었다.

 

"관사에 도둑이 들었나요?"

 

그들은 아니라면서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고 서로 쳐다보면서 말이 없었다.

 

총무과장에게 얘기해도 예산이 없다나.

 

공단의 가전제품 생산업체는 우리나라 유수기업인 삼성, 현대, LG, 대우 등 그들의 지점법인이 총망라돼 있었다.

 

결국 나도 그들에게 부탁해 한세트를 얻기는 했으나, 정식으로 기부체납의 절차를 밟고 세무서 비품으로 등재를 해 못 가져가도록 조치를 해버렸다.

 

감사실에서 그런 것도 가끔 한번씩 점검해 봄직도 하다.

 

61. 내 자리는 어딘교?

 

상공회의소에서 신임 세무서장 소개도 할 겸 이번 금요일 아침 7시까지 조찬회에 나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그동안 마땅히 아침 먹을 데가 없어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면서 지내왔는데 오늘은 아침 잘 얻어먹을 수 있겠구나 기대를 하면서 조금 일찍 그리로 갔다.

 

두리번거리며 내 좌석을 찾아보아도 지정된 내 자리가 없었다.

 

정면 단상의 메인테이블에는 네개의 좌석을 만들어 놓고 명패까지 붙혀놓았는데 좌측에서부터 경찰서장, 상의 이사장, 시장, 공단이사장이다.

 

나는 상의 이사장과 구미시장이 거기에 있는 것까지는 이해를 했는데 나머지 둘은 왜 거기 앉아야 되는 건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몇사람과 인사를 나누고는 슬며시 그곳을 나와버렸다.

 

형곡동 콩나물 국밥집에서 나 홀로 조찬회를 대신하고 출근을 했다.

 

세무서장 환영 겸 조찬회에서 내가 없어져 버렸으니 난리가 난 모양이다. 사무국장이 전화가 왔다. 무슨 급한 일이 있었느냐고.

 

나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해줬다.

 

"앞으로 그런 모임에는 나를 부르지 마시오. 나는 내 자리가 없는 회의는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구미지역은 공단지역과 공단이외의 지역으로 나눠 공단지역은 비교적 세원관리가 용이하고 잘 됐으나 이외 지역은 납세의식 수준에 문제가 있었다.

 

나는 구미지역의 경제사정에 밝은 몇분을 만나 의견을 수렴하고 신고 내용을 분석해 파급효과가 큰 5개 업체를 1차 조사대상으로 선정해 곧바로 착수를 했다.

 

거기에는 상공회의소 임원이 몇이 들어있었다.

 

사전 분석한대로 그들의 세금신고는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면 아파트 분양가액을 낮춰 신고하는가 하면 상가 분양분을 통째로 빼먹어 버린 경우도 있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박통 고향이라 모두들 엄청난 뒷배경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까지 겁나는 것이 없었던 것 같았다.

 

각 기관에서도 제대로 업무를 추진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 분위기가 그때까지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아무렇게 신고하고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 납세자가 많이 있었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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