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56)

2007.06.08 09:10:46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조사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우리 직원들이 나가기만 하면 속된 말로 마구 주워왔다.

 

나는 절대로 납세자가 억울해 하지 않도록 그들이 '억울하다, 문제가 있다'고 하는 부분은 모두 수용해 줬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5개 업체에서 대충 40∼50억원을 추징하게 됐다. 그 당시 구미세무서의 전 세목에 대한 조사 추징세수가 연간 6억∼7억원 밖에 되지 않았는데 거기에 비하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지방청장님도 무슨 소리를 들으셨는지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는 과정 중에 상의회장단이 여러번 와서 선처를 부탁했다. 상의(商議) 이사장(理事長)님이 "일전의 조찬회에 오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참석하지 못할 무슨 급한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상공회의소의 존립목적이 지역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상공인들의 친목을 도모한다면 정부기관 중에서 어느 기관과 제일 밀접한 관련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야 물론 세무서지요."

 

"그러면 상공회의소는 다른 어떤 단체들보다도 먼저 세무서를 위하고 도와주셔야 되지 않겠어요?"

 

"…"

 

"음주운전 안하고 속도위반없으면 경찰서가 뭐 그리 겁이 납니까?"

 

"경찰서장 좌석은 마련해 두셨는데 세무서장 자리는 없더군요."

 

"저는 그런 모임에는 가지 않을 테니 초청을 하지 마십시오."

 

"아 네에,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저희들이 미처 몰랐습니다."

 

얼마뒤에 또 상공회의소에서 조찬회를 한다면서 꼭 좀 참석해 달라고 했다.

 

나는 못이기는 척 나가봤는데 이건 또 뭔가?

 

단상위에 의자 하나를 더 가져다 놓고 거기 앉으란다.

 

나는 이사장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사장님 참으로 딱하십니다. 내가 올라가는 것보다 쓸데없는 사람들 좀 내려오라 하십시오. 꼭 그렇게 하신다면 차라리 제 대신 저기 교육장님을 그리로 가시게 하십시오"하고 나서 나는 세관장과 노동부 소장과 함께 아랫줄에 가서 앉았다.

 

조찬회라 하여 무슨 성대한 아침식사를 대접하는 줄 알았는데 고작 설렁탕 한그릇을 각자 앞에다 가져다놓았다. 회의가 진행 중이라 식어빠져 버렸다.

 

아직도 거기 모인 회원들이 질문을 하고 있는데 세무 관련 부분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서장 초임 발령때 '정왕선' 원장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박 서장, 서장 부임해서 어느 모임에 가거든 세금이야기를 절대하지 마라, 만약 하더라도 길게 끌지는 말라"는 충고이셨다.

 

그리고 H청장이 사무관 시절에 '김갑열' 국장에게 보고하면서 '갑열이 이놈이 을열이에게' 하면서 골탕을 먹인 일이 기억이 나서 나도 이렇게 말해줬다.

 

그 당시 교육장님의 이름이 '○갑동' 이었으므로 이를 써먹기로 했다.

 

"예 지금 질문하신 요지는 갑동이 이 놈이 을동이에게 땅을 팔았는데 갑동이 이 자식이 잔금을…."

 

설명을 하면서 슬쩍 옆에 앉아 있는 교육장 '○갑동'님을 보니 얼굴 표정이 실룩실룩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어이! 세무서장 왜 내 이름을 거기다가…"고 하신다.

 

"예를 들면 그렇단 말입니다"

 

그래서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예 지금 질문하신 요지는 갑동이 이놈이 을동이에게 땅을 팔았는데 갑동이 이 자식이 잔금을…."

 

설명을 하면서 슬쩍 옆에 앉아있는 교육장 '○갑동'님을 보니 얼굴 표정이 실룩실룩거리고 있었다.

 

또 누군가 질문한다고 손을 들고 있다.

 

또 세금에 관련된 질문이다.

 

나는 마이크를 다시 잡고, "이사장님 밥은 언제 먹습니까?"라고 물었다.

 

"예 이 질문 끝나면 먹습니다."

 

"질문하신 김 사장님 밥 먹기 직전에 세금얘기를 하면 소화가 잘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구체적인 사안은 저희 세무서 민원실로 물어주십시오."

 

"여러분을 편안하게 모실 수 있도록 잘 꾸며 놓았고 우수한 직원도 배치를 해놓았습니다."                   

 

"세무서장은 그런 거 잘 모릅니다."

 

또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리하여 냉랭하고 엄숙했던 분위기를 확 바꿔버렸다.

 

62. 빈 공간 활용

 

세무서 부지(敷地)는 무려 만평이나 되었다.

 

청사건물은 구미공단 관리본부로 사용하려고 지은 것인데 우리가 물려받았기 때문에 아주 넓고 규모가 컸다.

 

삼층에는 빈공간도 많아 공단 전시실로 일부를 빌려 주고 있는가 하면, 여직원 탈의실, 서예실, 체력실 등등 그러고도 빈 공간이 많았다.

 

넓은 앞마당의 잔디는 그해 극심한 가뭄으로 말라가고 있었는데 대책이 없다.

 

잔디를 살리려고 몇백미터짜리 고무호수로 수위아저씨는 하루 종일 물주기에 바빴다. 뒷뜰에는 테니스코트가 3개면이 있었고 직원들 기숙사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이렇게 넓으니 신고때에도 주차장 걱정이 없었다.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오신 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세무서를 다른 데로 옮기고 넓은 부지를 팔아 뭘 좀 해보겠다고 궁리를 하는데 나는 절대로 안 된다고 적극 반대를 했다.

 

나중에 틀림없이 물건이 될 땅이기 때문이다. 구미공단 복판에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 세무서 위치로서는 적격이다.

 

그런데 문제는 있었다.

 

첫째는, 구내식당 문제이다.

 

청사 주위에는 공장들만 있을 뿐 민가가 없다. 그래서 직원들의 식사문제는 구내식당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 아줌마는 구내식당이 장사가 안된다고 하여 그의 아들과 둘이서 살림집으로만 활용하고 있는지가 꽤 오래된 모양이었다.

 

직원들의 불평이 대단했다.

 

계약기간은 이미 몇년이 지났는데 나가라 해도 막무가내다.

 

그들을 내보내는데 6개월이나 걸렸다.

 

식당을 개·보수하고 난 후에 운영방법을 찾아야 한다.

 

둘째는, 민원실이다.

 

'93년 그 당시에는 민원실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나는 청사 빈 공간이 이렇게 많은데 좀 더 넓고 확 트인 민원실을 만들어 보기로 작정을 했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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