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현금수입 업종들이었다. 나는 이들 업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기로 작정을 했다.
천안 온양지역에 있는 음식점, 다방, 노래방 등등 대상자들이 2천500명이 넘었다.
나는 장소를 약 3천명이 앉을 수 있다는 천안 시민회관 대강당을 빌렸다. 그리고 천안 납세자들은 간담회 등 모임에는 잘 참석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였다.
각 담당직원에게 담당구역의 현금수입업자 명단을 작성하게 하고 '참석증'을 만들어 납세자에게 전달하고 간담회 당일날 제출받도록 했다. 그리고 동별 출석률에 따라 이번 인사에 과 배치를 다시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경찰서 정보계 이 형사가 와서 왜 그런 무모한 일을 하느냐고 한다.
그 넓은 시민회관 강당에 100여명 모이면 대성공인데 창피를 볼 수도 있다고 염려를 해줬다.
자기도 참석을 독려하겠다고 했다.
간담회 당일날.
3천여석의 좌석이 모자랄 정도로 꽉 찼다. 강당을 짓고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고 했다.
나는 여기가 느릿느릿 매사에 여유가 있는 충청도 맞지요 하고 운을 뗀 뒤, 그래서 내년에 오실 줄 알았는데 오늘 이렇게 많이 참석한 데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천안에 온지 6개월동안 내가 느낀 점을 세무서 측면과 납세자 측면으로 나눠 문제점과 협조사항을 말씀드렸다.
2층까지 꽉찬 청중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려니 마치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자가 연설하는 것 같았다.
나는 교육원에서 하던 대로 심각한 얘기를 하는가 하면 가끔씩 우스운 얘기를 섞어가며 청중을 사로잡아 나갔다.
대내적(對內的)으로 부임때의 세무서 첫 인상, 직원 기숙사 실태, 관사 도둑, 숙직 직원과 국기 게양, 교호감찰 실태와 사표받은 사실, 출근 지참과 결근 실태, 대전과 청주 출신간의 반목, 주차장 정비와 수위 제복 등등을 웃겨가면서 말씀드렸다.
"천안에도 세금도둑이라는 신문을 보셨을 겁니다. 사실은 검찰에서 잡은 것이 아니라 제가 와서 고발한 것입니다."
"자기 직원을 이렇게 고발한 기관장을 보셨습니까?"
"이제 천안세무서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보고 느끼셨던 그런 느슨하고 축 처진 세무서가 아닙니다."
"서장이하 모든 직원들이 여러분들을 위한 세무행정을 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언제든지 세무서에 오실 때 차를 갖고 오십시오. 주차장이 정비돼 있으며 파란정복을 입은 수위님이 거수경례로 반가히 맞을 겁니다."
이렇게 우리 서의 문제와 조치 내용을 설명하니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을 해 주신다. 저쪽에서는 박수소리도 들렸다.
이제 납세자에게 당부할 차례다.
"여러분! 우리 직원 좀 살려주십시오!"
"이제 진정 투서하지 말고 직접 제게 오십시오. 제가 즉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수입금액 신고내용을 분석한 자료를 설명하고 성실신고를 촉구하는 한편, 세무조사를 나간 우리 직원들을 마치 적군 취급하며 무엇이든 꼬투리를 잡아 적출된 사항을 모면하려는 의식 등 그동안 느낀 납세자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특히, 왜 그렇게 진정하고 투서합니까?"
"우리 서에는 그런 건수가 너무 많습니다."
"다른 세무서는 일년에 한두건 있을까말까 한데 여기서는 거의 매일 한건씩 접수됩니다."
"그런 거 책상 앞에 앉아 고생하시며 쓰기보다는 직접 오셔서 말로 해주십시오"
"천안서 직원의 30∼40%는 처음 들어온 신병입니다. 나머지 60% 직원 중에서 행정요원 반(半)을 빼고 나면 불과 30명이 남습니다."
"30명 직원들이 여러분의 진정서나 투서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민원은 처리기한이 있기 때문에 그 일에만 매달리고 다른 업무는 거의 못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직원 좀 살려주십시오!"
"이제 진정 투서하지 말고 직접 제게 오십시오. 제가 즉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서장이 맘에 안들면 저를 때려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의 매를 맞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
그날 간담회에 오신 모든 분들은 격려를 해주셨고 이런 모임이 있으면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하며 즐거운 맘으로 돌아가시는 것 같았다. '휴∼ 좀 후련해졌다.'
70. 이백만원만 주이소
지금까지는 흐트러져 있던 천안세무서의 기강을 잡고 업무분위기를 다지는 재미없는 일밖에 없었다. 이제는 밝은 얘기 한번 해보자.
구미 상공인들 25명이 버스를 대절해 오늘 천안을 방문했다.
불쑥 발령이 나서 아무런 연락도 못 드리고 쫓기듯 여기 와버려서 못내 아쉬웠다고 하면서….
어떤 이는 한창 여름휴가철이라서 구미를 떠날 때 뵙지도 못하고 전별금도 못줘서 미안했다고 했다.
사실 국세청에서 지금까지 전(前) 근무지의 상공인들이 버스를 대절해 떠나간 서장을 찾아 집단적으로 방문한 사례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그분들이 박 서장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생각되며 나 또한 열심히 사업을 하시던 그분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섬유공장 이 사장님, 철근 파는 김 사장님, 약국하는 정 사장님, 전자부속 생산하는 신 사장님….
내가 그분들에게 별 도움을 드린 것도 없는데 그분들은 나를 각별하게 평가하시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송구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구미에 있을 당시 공단지역에는 노조 결성 바람이 불어 여기저기서 쟁의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상공회의소나 기업체에 세무특강을 가끔 나갔었는데 각 회사의 종업원인 수강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금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할 것 없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될 일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면서 실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금 안 내는 일 여러분들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께 효도 많이 한다고 해서 세금 내지 않습니다."
"처자식 아무리 사랑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동료, 상하간에 아무리 화목해도 세금 없습니다."
"노사관계 아무리 원만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이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일 좀 많이 해보십시다."
기업체 사장님들은 내가 한 말을 듣고 제일 좋아하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