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했던 주역이었고 또한 최근 충주에 시각장애인 전용축구장을 건설해 기부하는 등 우리나라에 좋은 일을 많이 한 히딩크 감독이 올해초 탈세사건으로 네덜란드 법정에 선 일이 있었다. 기소된 내용은 여러 가지 세무회계의 기술적인 문제도 있지만 가장 주된 핵심은 네덜란드보다 세율이 낮고 여러 가지 공제 혜택이 많은 벨기에로 주소를 옮긴 행위가 탈세냐 아니냐 하는 점이었다.
히딩크의 주장은 네덜란드에서 벨기에로 주소를 옮긴 것은 '유럽헌법'과 '네덜란드 헌법'에 규정된 거주이전의 자유를 누린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이와 같은 자유는 납세의무보다는 앞선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이었다. 반면 네덜란드 과세관청은 주소를 옮긴 뒤에도 히딩크와 그의 애인이 주로 거주하는 국가는 벨기에가 아니라 네덜란드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 고의로 조세를 포탈하기 위해 주소를 옮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 검찰은 히딩크에게 10개월의 실형을 구형하면서 동시에 히딩크의 세무자문을 한 자에게는 징역 13개월을 구형했었다. 재판부는 히딩크에 대해 탈세혐의는 인정해 세금은 추징하되 징역 6월의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검찰은 재판소의 형량이 너무 낮아서 항소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점은 히딩크의 세무자문을 맡았던 자에게 히딩크보다 더 많은 형량이 구형된 점이다. 히딩크가 축구보다도 더 어려운(?) 세금에 대해 주소를 옮겨가면서까지 절약할 정도의 '식견'이 있다고 보기 보다는, 세무자문을 한 자의 머리에서 이와 같은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지 않겠는가.
요즘처럼 납세자의 지능적이고 공격적인 조세회피행위 및 탈세가 있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특히 최근 탈세 여부로 논란이 있는 외국계 자본의 국내 부동산 또는 은행주식의 양도와 관련된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이 세율이 낮은 국가에 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국가가 막을 수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외국 자본이 벨기에에 회사를 세운 것을 비난만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나라 기업과 자본이 벨기에의 세금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한, '검은머리 외국인'이든 '노랑머리 상투'이든 돈 많이 벌고 세금은 여러가지 제도를 이용해 가능한 적게 부담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 이른바 납세자의 절세권이 당연 보장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반면 과세관청에서는 기업의 자유는 인정한다고 해도, 그와 같은 행위가 지나쳐서(?) 조세공평부담의 원칙이 훼손될 정도라면 실질과세원칙에 터를 잡아 이를 시정하려고 하는 것도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OECD는 납세자의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간 조세정보의 교환은 물론 해당기업의 CEO, 이사회, 탈세를 조장하는 로펌 또는 회계법인에 대해 민사 또는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얼마나 납세자의 공세적인 탈세행위에 '시달렸으면' 탈세자 이외에 이들을 도와준 자에게도 처벌을 하여 탈세의도를 줄여 볼까 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탈세를 도운 자에게 대한 처벌규정이 있기는 하다. 조세범처벌법 제14조를 살펴보면 '납세의무자로 하여금 허위로 신고를 하게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탈세라고 확정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탈세자를 도와준 자에게 이 조항을 근거로 하여 고발되고 처벌을 받은 자는 거의 없다. 국제조세분야 등 대형 탈세사건 뒤에는 조세전문가의 뒷받침이 있었다는 게 상식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문이 '사실상' 사문화된 것은 분명 과세관청의 직무유기이다.
이제는 과세관청이나 납세자나 조세전문가 집단 모두 이 조항을 새롭게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근 OECD의 경향이 탈세자뿐만 아니라 이들을 도와준 자에게도 처벌을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우리나라도 그와 같은 흐름을 분명 주시하고 있을 것이며, 히딩크 탈세사건은 그 좋은 예인 것이다.
그러나 위 조항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보완할 점이 있다. 첫째, 절세, 조세회피, 공격적인 조세회피, 탈세에 대한 명확한 정의 규정의 신설이 필요하다. 둘째, '허위의 신고를 하게 한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하고도 구체적인 내용이 보완돼야 한다. 셋째, 국제간 거래의 경우에는 외국의 조세전문가 집단과도 관련될 수 있어서, 이에 대한 국제적인 정보 교환이나 처벌절차규정의 보완이 필요하다.
좋은 세상이란 성실한 사람이 대접받는 것이다. 성실한 납세자와 불성실한 납세자, 정도를 지킨 조세전문가와 정도를 벗어난 조세전문가는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가려서 차별대우를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조세공평주의가 실현되는 지름길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