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흔들릴 때 나를 다시 세우는 힘, 자존감

2025.12.19 08:00:00

우리는 일상에서 ‘자존감(Self-esteem)’과 ‘자존심’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하지만, 이 두 단어를 정확히 구분해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우리는 자존감과 자신감까지도 뒤섞어 사용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이 세 가지를 분명히 구분해 보고, 궁극적으로 자존감이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 개념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존감이란, 내가 나를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지에 대한 마음속 기준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생겼다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나에 대한 평가’에 가깝다. 1965년 자존감 척도(Rosenberg Self-Esteem Scale, RSES)를 개발한 심리학자 모리스 로젠버그(Morris Rosenberg)는 자존감을 ‘자기 자신에 대한 전반적 가치 판단’으로 정의했다.

 

쉽게 말해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삶의 바닥에 단단히 깔려 있는 상태다. 이 바닥이 단단할수록 우리는 작은 실패나 타인의 평가 앞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감은 자존감과 다르다. 자신감은 심리학에서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특정 과제, 역할, 상황에 대한 평가이기에 성공과 실패에 따라 오르내린다. 발표를 잘 마쳤을 때는 자신감이 높아지고, 연이은 실패를 겪으면 자신감은 쉽게 떨어진다. 하지만 자신감이 흔들린다고 해서 반드시 자존감까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은 자신감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번에는 잘 안됐지만, 그렇다고 내가 부족한 사람은 아니다.”

 

반면 자존심은 또 다르다. 자존심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작동한다. 체면, 인정, 비교, 우열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고, 쉽게 상하며, 때로는 오기나 과시로 나타나기도 한다.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정인 만큼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의외로 상처를 잘 받는다. 자존심은 종종 상처받기 쉬운 감정의 방어선이다.

 

정리하면 자존감은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확신이고, 자신감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이며, 자존심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마음이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에 반응하는 감정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한 발짝 떨어져 관조(觀照)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느끼는 불편함이 자존심의 문제인지, 자신감이 흔들린 것인지, 아니면 자존감의 문제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마다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 단어는 나에게 “이건 해도 된다”, “이건 하지 말자”를 가르는 기준선이 되어주었다. 상황은 어렵고 자신감은 흔들릴 수 있다. 어떤 일에서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기준선만큼은 넘지 말자는 다짐이 삶을 단단하게 붙잡아 주었다.

 

비교는 인간의 본능이다. 살아가며 비교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요한 것은 비교 자체가 아니라, 비교 이후의 태도다. 어떤 사람은 비교의 감정에 오래 머물며 질투와 불안 속에 산다. 반면 어떤 사람은 그 마음을 알아차린 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자신감은 비교 속에서 흔들릴 수 있지만, 자존감은 그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힘이다.

 

필자가 마음에 새기고 살아온 또 하나의 기준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남의 눈치를 보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없이 많은 시선과 암묵적인 규범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러나 그 시선이 나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우리 부부는 거의 매년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명동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크리스마스 머리띠를 하나씩 사서 쓰고 거리를 걷는다. 처음에는 꽤 쑥스러웠다. “이 나이에 이런 행동을 해도 되나” 하는 생각에 중간에 벗어버릴까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이 작은 행동 하나로 계절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고, 아내와 추억을 쌓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사람 중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외국인 관광객 중에는 엄지척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눈치를 보지 않는 삶’이 생각보다 훨씬 자유롭고 편안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필자가 살아오며 자존감 있는 태도라고 느끼고 실천하려 애써온 기준들이 있다. 앞서 말했듯,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지 않는다. 비교하더라도 금방 알아차리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불필요하게 자신을 움츠리지 않는다. 강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약자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 태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자존감은 혼자서도 잘 즐기게 해주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도 평안하게 해준다.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나를 정리하는 시간이 된다. 혼자 있어도 불안하지 않기에 자신이 하던 일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고, 함께 있어도 그 시간이 피곤하지 않다. 웬만한 일로 쉽게 화를 내지 않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화를 덜 낸다는 것은 나약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일 만큼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의미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소위슬로와 오르트(Sowislo & Orth, 2013)의 메타분석은 낮은 자존감이 이후의 우울 및 불안 증상을 예측한다는 일관된 종단적 증거를 제시하고 있어, 자존감이 불안·우울 등의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완충 역할(buffering effect)을 할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어려운 순간을 안겨준다. 그때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성취나 일시적인 자신감이 아니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게 해주는 자존감이다. 삶이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우리를 지탱해 주는 힘이다.

 

삶이 흔들릴 때, 성취가 무너질 때, 자신감이 떨어지고 비교로 마음이 작아질 때에도 “나는 나대로 괜찮다”는 최소한의 기준을 지켜주는 힘이 바로 자존감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이 오랜 시간 자존감을 중요한 연구 주제로 다뤄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정신문 기자 webmaster@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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