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인생에서 쇼당을 부를 때(2)(끝)

2006.02.20 00:00:00

방선아(서울청)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는 뭐, 그간 반상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에 거의 참여를 안했으니 뭐라 의견을 내놓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만, 제 생각엔 전임반장인 다연엄마가 이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며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 다연엄마의 의견을 따르고 싶습니다."

물론 직업은 못 속인다고 세법과 회계를 접하는 나로서는 견적금액이 확정되었다고 차익이 실현되는 게 아니라 공사가 완전히 끝나야, 그러니까 직업용어로 말한다면 '용역제공이 완료된 후에야 수익이 실현되는 것'이기에 '끝장파'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고도 생각을 했지만, 그보다는 위에서 말한대로, 고생한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 주자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러나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가 않았다. '당장파'의 언니가 나를 보고 화를 내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게 어딨냐는 것이다. 알고보니 그건 이미 '당장파'의 언니가 좀 전에 내 남편한테 전화를 해 의견을 물어봤는데 남편도 '당장' 돈을 나누는 게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야 '당장파' 언니의 전화를 받았으니 당연히 '당장파' 의견에 동조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런 상황을 몰랐던 나는 졸지에 '당장파'에서 '끝장파'로 배신한 셈이 된 것이다.

그러나 '끝장파'의 다연엄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비공식적으로 마루아빠하고 통화한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건 반칙이다. 마루엄마가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의견을 밝혀라'라며 다시 한번 나에게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다시 한번 비장한 각오로 입을 열었다.

"저희 남편이 의견을 미리 밝힌 걸 모르고 제가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우리집에서 제가 결정합니다. 저는 아까처럼 다연엄마(끝장파)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이후 상황은 다연엄마를 포함한 '끝장파'의 멤버 세명이 골목에서 나를 만나면 유독 친근하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종료됐다.

내가 다섯살때 할머니로부터 배운 고스톱에 의하면 이런 경우 난 쇼당을 불러야 했다. 내가 가진 패를 보여주고 나는 '당장파'가 이기게 할 패도 갖고 있고 '끝장파'가 이기게 할 패도 있으니 누가 내 패를 받을지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적어도 나는 이기지는 못하되 지지도 않는, 그러니까 승자의 뒤에 붙어 내 일신의 안위를 꾀하는 처세를 택해야 하는 것이다.(이번 일의 경우, 내가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있었던 '가구주로서의 권리'가 바로 나만의 패였다고 할 수 있다)

살다보면 누구나 인생에서 쇼당을 불러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영악한 처세일 수도,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그것이 처세건 현명한 선택이건 간에 그러기 위해선 어찌됐든지 확실한 나만의 패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종일 기자 page@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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