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혈세와 공돈

2005.07.21 00:00:00

곽태원 서강대 교수


 

얼마전 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유럽인들은 선조들이 남겨 놓은 엄청난 유산 덕에 우리처럼 힘들여 일하지 않으면서도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를 안내하던 현지 유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생각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의 이야기는 간단한 것이었다. 자신은 등록금이 싼 국공립대학에 다니고 싶지만 국공립 대학은 공부를 안하면 견디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비싼 사립대학에 다닌다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재정적 지원을 받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마땅히 세금 값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럭저럭 넘어가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도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그 학생의 입장에서는 좀 등록금이 비싸더라도 자신의 페이스대로 공부를 하게 내버려 두는 사립학교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공립 대학 학생들이나 관계자들이 들으면 양심에 깊은 찔림을 받을만한 이야기였다. 대학뿐만 아니라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는 우리나라 모든 기관의 종사자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껴야 할 사례라고 생각됐다.

대학이 국민의 혈세를 쓰면서 이 정도의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면 다른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의식도 미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같은 책임성 때문에 이 나라들은 비대한 공공부문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높은 국민부담률에도 불구하고 건실한 경제성장을 유지하며, 국민들은 국가를 신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나 국민부담률은 OECD국가에서 최하위권에 있다. 단순히 이 지표만을 갖고 보면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부담을 더 늘릴 여지가 상당히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급속하게 늘어난 국가채무를 줄여가고 연금재정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며 저소득 및 소외계층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들어가야 할 돈은 엄청나게 많다. 군사대국화돼 가는 일본과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그리고 핵 보유를 공언하고 있는 북한과 대치한 상태에서 국방력의 강화와 전략화를 위해서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야 한다. 나아가서 통일이 어느 때엔가 갑자기 이뤄지면 또 얼마나 큰  돈이 들어갈 것인가? 이런 필요들때문에 국민의 부담을 늘려가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다른 OECD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사정은 국민의 부담을 더 올릴 여지가 있다는 주장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더 거두자거나 사회보험료율을 인상하자는 주장에 대해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부담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단순한 반발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공공부문이 전반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앞에서 국공립 대학교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전적으로 세금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 의무교육과정과 일반고등학교 과정의 교육은 어떠한가? 왜 서민들이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를 불문하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려고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가?  학부모들의 잘못된 인식의 탓이 아니다. 학교보다 학원이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잘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근한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건강보험이나 연금에 대한 불신, 지방자치단체들의 여러 사업집행에 대한 주민들의 의혹, 중앙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불신과 냉소적 반응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잘 감시하라고 선출한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신 등 공공부문에 대한 불신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개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말은 어느 때보다도 풍성하게 쏟아지고 있지만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개선되는 기미를 보이는 것 같지 않다. 거창한 구호나 수많은 위원회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납세자들이 자신들이 내는 세금이 정직하게 그리고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더 적극적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국민의 세금으로 직접적인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보다 책임있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제도를 고쳐나가고 의식을 바꿔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아직도 정부의 각종 지원을 눈먼돈, 공짜돈 등으로 인식하는 수많은 지원프로그램들은 과감히 정비되거나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공짜란 원래 없는 것인 데도 있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여러가지 제도와 관행들이 첫번째 개혁대상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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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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