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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이 발표한 지난 2년간의 성과는 화물통관에 당초 9.6일 걸리던 것이 5.2일로 단축돼 싱가폴·네덜란드 등 선진국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수출신고는 2분, 수입신고는 1시간30분밖에 걸리지 아니하며, 특히 수출신고의 95%는 세관 직원이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산시스템이 자동 수리하고, 수입신고는 75%가 서류제출없이, 물품검사없이 전산화면으로 처리하는 등 통관체계를 개선한 결과로서 수출입 물류분야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됐다고 한다.
올해는 초일류세관 계획의 마지막 해이므로 우리나라가 물류선진국에 도달하도록 통관·물류체계의 혁신에 가일층 노력해 수입화물처리 시간을 4.5일로 단축하고 아울러 인터넷 통관포탈시스템을 개통해 통관과 각 특별법에 의한 검사·검역을 단일창구(single-window)로 구축함과 동시에 수출입신고 및 관세환급 신청의 5%이상을 인터넷으로 수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초일류세관 계획은 관세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생략하며 빠르게 처리하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지, 관세행정의 임무와 책임에 관한 사항이 빠져 있다. 관세행정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과 책임의 중요성을 규정하고 이것을 어떻게 철저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수행하겠다는 약속은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다.
초일류세관 추진계획은 전임 관세청장때 참여정부의 동북아물류 중심이라는 코드에 맞춰 수립한 계획이다. 공·항만을 통한 인적·물적 이동의 접점에 관세행정이 위치해 있으므로 물류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관세행정의 획기적인 개선, 특히 통관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당시 계획 추진의 명분이었다.
관세행정이 물류비용 절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91년도부터이다. 청와대 경제수석 밑에 SOC기획단이 설치되고 물류비용 절감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자 관세행정은 신속통관이라는 용어 대신에 물류비용의 절감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EDI방식의 통관시스템 도입도 통관의 신속화가 아니라 물류비용의 절감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세계관세기구(WCO)에서도, 그리고 도하개발아젠다(DDA)에서도 무역의 원활화(Trade facilitation)를 논의할 뿐이지 물류를 논의하지 않는다. 세관의 임무와 기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투명하게 집행할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무역의 원활화를 기하자는 것이 논제이다. 따라서 논의의 핵심은 관세행정의 목적과 기능을 훼손하지 아니하고 여하히 효율적으로 관세행정을 수행하느냐이다.
관세청은 '70년도 8월에 개청됐다. 국세청은 '66년도 3월 개청됐으므로 국세청이 관세청보다 4년5개월 먼저 개통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임 국세청장은 15대 청장이지만 관세청장은 22대 청장이다. 22명의 청장 중 관세청 차장에서 승진된 청장은 현임 청장을 포함해 다섯분에 불과하다. 대부분 청장이 재정경제부에서 오셔서 일년 남짓 근무하시다가 차관으로 영전돼 돌아가셨다.
정부가 앞으로 FTA체결 국가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작년에 관세청이 수입물품으로부터 징수한 세금이 31조9천570억원 정도였는데 이중 관세액이 6조7천483억원이고 나머지 25조2천87억원이 내국세로, 이름이 관세청이지 실제로 관세보다 내국세가 3.7배 더 많다. FTA체결 국가가 늘어나면 그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물품에 대한 관세 부과는 면제되므로 관세청의 관세 징수액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된다. FTA 체결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관계도 그간 많이 달라졌다.
이러한 점에서 관세행정의 목표와 기능이 달라져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하겠다.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호주 등은 국가안보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영국은 국세청과 통합했다. 세계관세기구(WCO)는 관세행정의 변화에 대해 표준모델을 제시하지 않고 각 국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모델을 선택하더라도 관세행정은 국경행정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며 따라서 관세행정의 상대는 국경을 넘나드는 물품이거나 사람이거나 또는 선박, 항공기 등 운수기관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관세행정이 상대하는 고객은 일반 국민이 아니고 일부 한정된 사람이다.
물품을 수출입하거나 외국을 왕래하기 위해 관세행정의 앞마당을 지나가야 할 사람은 관세행정의 수요자이지, 고객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초일류세관 계획에는 이들을 관세행정의 고객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고객감동을 실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관세행정이 궁극적으로 봉사하는 상대는 국민이고 국가이다. 이러한 점에서 관세행정의 진정한 고객은 국민과 국가라 하겠다. 따라서 일부 한정된 관세행정의 수요자를 상대로 고객감동을 실현하려는 것은 국민과 국가에 봉사해야 할 관세행정의 임무와 기능에 비춰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에게 고객감동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행여 관세행정의 기능과 임무를 소홀히 되는 일이 생긴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일반 국민과 국가가 입게 된다. 예를 들어 수입통관절차를 간소화하고 검사를 면제함으로써 짝퉁물품, 보건·환경위해물품이 반입돼 국내에서 유통된다면 무역업자는 횡재를 하겠지만 국내 생산업자와 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관세행정의 수요자를 고객으로 잘못 인식하고 관세행정의 정체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물류체계의 개선을 과제로 삼고 있는 초일류세관 계획은 설사 올해가 완성의 해라고 하더라도 끝까지 가야 할 일이 아니라 생각된다. 오히려 그간 소홀히 해왔던 국민과 국가에 기여하는 관세행정을 구현한다는 관점에서 지금은 새로운 관세행정의 발전모델과 비젼이 제시돼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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