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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이후 소득분배 격차가 확대되면서 빈곤문제와 소득재분배 문제가 가장 중요한 정부정책 중 하나로 부상했다. 소득재분배라고 할때 일반인들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소득세이다. 왜냐하면 소득세는 소득이 일정수준에 미달하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대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높은 세율로 과세해 고소득층일수록 더 높은 세부담을 지우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서 소득세는 세후 소득분배구조를 보다 균등해지는 방향으로 바꿔준다.
소득세의 소득재분배 효과의 크기는 소득세 1원당 얼마만큼씩 소득재분배 효과를 나타내느냐는 소득재분배 효과의 단위당 밀도와 소득재분배 효과를 지닌 소득세의 총 세수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의 두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이 가운데 전자는 소득세의 누진도와 관련이 깊다.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높은 비율로 소득세를 부담하는 것을 두고 소득세 부담이 누진적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는 소득세 부담이 더 많이 누진적일수록 소득재분배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소득세의 누진구조는 세율수준, 세율구간, 소득공제체계 등에 의해 결정된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최고세율이 높을수록, 세율구간이 좁을수록, 소득공제수준이 높을수록 소득세의 누진도가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가상적으로 소득세가 십일조와 마찬가지로 단일세율 구조를 가지고 있고 어떠한 소득공제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이 소득 중 동일한 비율만큼 세금을 부담하게 돼 누진도가 0이 된다.(경우 1) 이와 반대의 경우로서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사람 혼자만 소득세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세부담이 면제되는 경우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소득세가 최고소득자 1인에게만 100% 집중되기 때문에 세부담의 누진도가 최고수준이 된다. 그런데 이 때 최고소득자의 소득세 부담규모가 1원이든 또는 1억원이든지간에 세부담의 누진도가 최고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세부담의 누진도는 소득자간의 상대 세부담 비율만을 논할 뿐, 세부담의 절대 수준과는 관계없이 정의되기 때문이다.
모든 소득자의 소득세 부담이 비례적인 경우(경우 1)에서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0이다. 반대로 경우 2에서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조금 있지만 최고소득자 1인을 제외하면 나머지 소득자들 간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0이다. 세부담의 누진도가 0인 경우에도 소득재분배 효과가 0이지만 세부담의 누진도가 최고인 경우에도 소득재분배 효과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세부담의 누진도만으로는 소득세의 소득재분배 효과의 크기를 논할 수 없다. 비록 소득세 부담 1원당 평균적인 누진도가 조금 낮더라도 세수규모가 크다면 오히려 소득재분배 효과가 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세의 누진도는 선진국보다 높지만 세수비중은 선진국보다 크게 낮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소득세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다소 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세가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은 기본적으로 세제의 누진도와 세수규모에 의존하지만 세전 소득분배상태가 어떠한지에 따라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극단적으로 모든 사람의 소득수준과 인적 특성 등이 동일하다면 아무리 소득세 구조가 누진적이더라도 소득재분배 효과는 0이다. 왜냐하면 모든 소득자의 세부담이 동일하므로 소득세를 과세하기 전후의 상대 소득분배구조가 아무런 차이를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전 소득분배격차가 클수록 조그만 누진과세체계에도 세부담의 누진도는 크게 나타난다. 따라서 동일한 소득세제를 갖고 있더라도 본래의 소득분포에 따라 세부담의 누진도와 소득재분배 효과가 달라진다. 이는 현재의 소득분배 구조가 어떠냐에 따라 조세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소득세제 개편시에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소득재분배 효과이다. 현실에서는 소득세의 제도적 누진도를 강화하는 것이 마치 소득재분배 효과의 강화를 위한 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빈곤문제 및 소득격차 확대문제에 대응해 소득세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하고자 한다면,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득세 자체의 누진도(즉 세율 및 각종 공제체계)와 세수규모에 대한 사전적인 검토뿐만 아니라 현재의 소득분배 상태에 대한 현황 파악이 우선돼야 한다. 소득세제의 개편은 최소한 이들 세가지 요소에 대한 개별적 효과분석과 함께 이를 종합했을 때 예상되는 총 효과를 검토한 연후에 각종 대안에 대한 모의실험을 거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밖에 우리나라에서는 소득분배 상태나 세제측면에서의 분배차이 외에도 사업소득과 근로소득간에 소득포착률 격차가 크다. 소득수준이 같더라도 소득종류가 다르다면 세후 소득분배구조를 왜곡해 분배격차를 크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세전 소득분배구조를 고려해 적정수준의 누진도를 도출하고, 세제상의 누진도와 세수규모 사이의 불일치를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사업소득에 대한 과세 양성화를 통해 소득 종류별 과세형평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으로 소득세는 누진적이어야 하고 누진도는 높을수록 좋다는 식의 주장은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수 있으므로 그런 태도는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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