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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세 인상에 반대하는 논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가지로 나눠지는 것 같다. 첫째로 소주는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호식품이므로 소주에 대한 세율을 높이는 것은 소득분배를 악화시키는 불공평한 처사라는 것이다. 특히 이것은 서민가계의 부담을 크게 하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운 현 상황에서 서민들의 생활고를 더 심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보강하기 위해서 소주세율의 인상으로 주세의 출고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업소에서 받는 소주가격은 훨씬 더 올라간다는 주장을 덧붙인다. 예를 들어 소주의 병당 출고가격이 100원 정도 오르면 업소에서 받는 가격은 천원 정도 오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반론은 소주가격이 높아져 봐야 소주의 소비는 줄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술의 수요 탄력성을 측정한 연구들은 한결같이 그 값이 1보다 훨씬 작은 값을 보인다는 것이다.
첫번째로 공평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선 주류에 대한 세금은 소득재분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술 소비자들이 사회에 끼치는 여러가지 폐해에 대한 비용을 부분적으로 부담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소위 원인자 부담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공평성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런 비용은 부자가 많이 부담하고 가난한 사람이 적게 부담하게 하는 것이 공평한 것이 아니다. 문제를 많이 일으킨 사람이 많이 부담하고 문제를 적게 일으킨 사람이 적게 부담하는 것이 공평한 것이다. 술의 소비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인 비용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나타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음주운전 사고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다른 교통사고는 현저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유독 음주사고만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종종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고 평생을 불구자로 지내게 만들기도 한다. 또 음주가 원인이 돼 발생하는 각종 질병의 치료비는 발병자나 그 가족이 다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료의 상승을 통해 전 국민에게 그 비용의 상당부분이 전가되는 것이다. 이밖에 청소년 범죄, 가정폭력 등 많은 사회적인 문제들이 음주와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이 술 소비는 이른바 부정적인 외부성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주지하는 것처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부성에 상응하는 조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두번째로 소주세를 올리는 것이 서민가계에 부담이 된다는 주장이다. 정말로 부담이 될 정도로 주세를 올려야 한다. 그래야 술 소비가 가시적으로 줄어들어 국민 모두가 더 건강해지고 가정도 화목해질 것이다. 그런데 소주 한 병에 100원도 오르지 않는 정도의 주세 인상을 가지고 서민가계 운운하는 것은 정말 낯 간지러운 일이다. 그래서 개발된 논리가 소주세가 병당 100원 정도 오를 때 업소에서 받는 가격은 천원 정도 더 오를 것이라는 이상한 주장이다. 업소가 소주를 제공하면서 받는 가격은 소주의 구입가격에 업소의 서비스 비용 및 이윤을 더 한 것이다. 100원 더 비싼 소주를 제공하려면 서비스 비용이 900원씩 더 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업소가 독점적이거나 과점적인 위치에 있으면 소주세율 인상을 빙자해서 그동안 명분이 없어 못 올리던 가격을 올리는 것은 가능하다. 그럴 경우 100원보다 상당히 더 가격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소주를 서민들에게 파는 업소들은 독과점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다. 실제로는 소주 출고가격이 100원 정도 올라도 업소에서 제공하는 가격은 전혀 오르지 않거나 100원보다 적게 오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소비세는 수요자와 공급자간에 나눠 부담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수요 탄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소주 등의 수요가 비탄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주류는 특히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주세를 올리는 정책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직 중독되지 않은 청소년층에게는 가격이 소비의사 결정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탄력성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주류의 가격이 높아지면 청소년층의 음주가 현저히 줄어들고 그래서 음주와 관련된 청소년층의 사고도 현저히 줄어든다는 사실이 선진국의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청소년층의 음주시작 연령이 몇달이라도 더 늦어질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앞날을 위해서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이것을 위해서 어른들이 소주 값을 조금 더 내야 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보람있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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