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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정부에서는 납세협력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으로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의 세무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현행 복식회계보다 간결한 형태의 전자장부를 통해 사업자 스스로 간편하게 신고·납부할 수 있으며, 또한 매출·매입 등을 투명하게 처리하는 사업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면제해 줄 방침이 그 골자인 것 같다.
'간단하고 편리한 납세제도' 얼핏 보기에 겉모양은 굉장히 좋은 제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조세원칙의 축을 뒤흔드는 위험한 요소가 내포돼 있다. 효율성의 측면에서 기대효과가 크면 클수록 조세부담의 불균형은 점점 더 심해지기 마련인데 바로 이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공평의 원칙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소득계산을 통해 수직적 공평뿐만 아니라 수평적 공평, 즉 동일한 소득계층간 세부담의 균형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자영업자의 과표 양성화를 통한 세원 투명성 확보로 분배와 형평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참여정부의 조세정책 방향인데 반해 간편납세제도는 이를 역행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근거과세 및 실질과세의 기반마저 붕괴될 우려가 있다.
표준소득률, 과세특례제도, 기준시가제도 등 납세협력비용을 감소시키기 위한 그간의 노력이 형평성 및 근거과세의 벽에 부딪혀 대부분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간편납세제도의 도입으로 기장능력이 있는 중소기업 및 법인사업자에게도 감가상각, 접대비, 퇴직급여충당금 등을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고도 세금을 낼 수 있다면 근거과세가 완전히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와 근로소득자간의 세부담 형평성 문제는 여전히 제기되고 있으며, 자영업자의 수입금액 양성화가 확보돼 있지 않는 상황에서 간편납세제도의 도입은 이들간의 불공평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또한 납세성실도가 낮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간편납세제도를 시행한다면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이 더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일부사업자의 경우 본의 아니게 탈세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근거과세가 상당부분 배제됨으로 인해 성실하게 기장을 해 세금을 내는 사업자간에도 형평성 문제는 야기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간편납세제도로 납세자 스스로 전자장부를 통해 입력하고 간편하게 납부한다 하더라도 납세자의 무지로 전산입력 오류, 고의적인 허위 입력 등으로 성실한 사업자를 선정하는 선별기준을 합리적으로 마련하기가 어려운 반면, 세무행정인력은 증가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전자장부의 개발, 보급, 홍보비용을 감안하면 납세협력비용을 감소시킨다는 취지에 부합되는지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대목이다.
공평과 효율은 단순한 저울질 대상이 아니다. 납세자를 담보로 한번 시험삼아 저울질하려 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제도는 만들기는 쉽지만 그 부작용만큼이나 폐지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실리(實利)가 없는 명분만 앞세우는 전시행정의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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